향수 (鄕愁)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든 곳
-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의와
아무러치도 않고 여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안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줏던 곳
-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어 도란도란거리는 곳
-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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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시 중의 명시...

 

도회지에서의 어린 시절의
낡은 기억들은
뜨겁거나 혹은 아주 차갑거나
답답하거나 또는 칙칙한
회색빛 시멘트 담벼락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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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湖水) 1


                     정지용


얼굴하나야
손바닥둘로
폭가리지만,


보고픈마음
호수만하니
눈감을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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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눈빛은 감추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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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


                    정지용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린거린다.
열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다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치고,
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백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은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새처럼 날러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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