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만 사랑노래


                                  황동규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늘 그대 뒤를 따르던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여기저기서 어린 날
우리와 놀아주던 돌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추위 가득한 저녁 하늘에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성긴 눈 날린다
땅 어디에 내려앉지 못하고
눈 뜨고 떨며 한없이 떠다니는
몇송이 눈
.................................................................

봄이 지척인가 싶었는데
아침부터 묵직하게 내려앉은
허공 따라
팔랑팔랑
가볍디 가볍게
봄 눈이 날린다.


하늘과 땅 사이를 맴돌며
언제까지나
바닥에
내려앉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이제 이별하자는가?
바닥에 내려앉은
흔적조차 말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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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편지


                              황동규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

오후 내내 눈이 내렸다.
창밖으로 보이는 장면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똑같았다.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공간을 가득 메운
하얀 눈가루 눈가루...


눈은 내리는 것이 아니라
공간 가득 뿌려져 있는 듯 했다.
이러다 눈 앞이 모두 하얗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었고,
아무 일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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