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있어 행복한 날

 

                                    용혜원

 

푸른 하늘만 바라보아도

행복한 날이 있습니다.

 

그 하늘 아래서..

 

그대와 함께 있으면 

마냥 기뻐서 

그대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집니다.

 

그대가 나에게 와주지 않았다면 

내 마음은 아직도 

빈 들판을 떠돌고 있을 것입니다.

 

늘 나를 챙겨주고 

늘 나를 걱정해 주는 

그대 마음이 

너무나 따뜻합니다.

 

그대의 사랑을 

내 마음에 담을 수 있어서 

참으로 행복합니다.

 

이 행복한 날에... 

그대도 내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얼마나 그대를 사랑하는지 

그대와 함께 하는 날은 

마음이 한결 더 가벼워지고 

꿈만 같아 행복합니다.

.............................................................................. 

 

용혜원님의 가슴 따뜻해지는 시 한 편입니다.

 

언제였던가요... 저렇게 따뜻한 마음 전해지고 행복하기만 하던 때가

정말 꿈만 같던 시간이 있었던가 싶은데...

 

몇 천마리의 학을 접고 또 접고, 수백편의 사랑의 시를 매일 전하며 '사랑해' 라고

일만번 적어내려간 편지를 건내주며 얼마나 가슴 뜨거웠던지...

그녀 앞에서 '행복을 주는 사람' 을 목청껏 불러대던 일이 새삼스럽네요...

 

지금도 행복하냐고 물으면 물론 너무나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가슴 터질 것 같던 그 젊은 날의 시 한 편을 다시 보니 반갑기도 하고,

두근거리기도 하네요 ^^v..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백석


어느 사이 아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木手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굿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라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디두 않구 자리에 누어서,
머리에 손깍지벼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턴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 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

싸르락 싸르락 지창(紙窓)을 쓸어가는 싸리눈 소리,

휘어이 휘어이 창문 틈새로 들이닥치는 바람소리,

눅눅하고 써늘한 구들장 베고 길게 누운 한 남정네의 깊은 한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사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참으로 만만치 않은 일이다.

............................................................................................................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 '신의주 남쪽 버드나무골에 사는 박시봉이라는 사람 집에서'라는 의미
시적화자가 현재 처해 있는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 주면서 동시에 이 작품이 편지의 형식임을 알 수 있다.
*삿 : 삿자리의 준말. 갈대를 엮어서 만든 자리.
*딜옹배기 : 둥글넙적하고 아가리가 넓게 벌어진 질그릇. 질옹자배기
*북덕불 : 짚이나 풀 따위를 태워 담은 화톳불. 북더기불
*쌔김질 : 새김질
*갈매나무 : 갈매나뭇과에 속한 좀나무. 키는 2 m쯤 되고 가지에 가시가 나며, 잎은 넓은 바소꼴이며 톱니가 있다.
열매는 '갈매' 또는 '서리자'라 하여 약재나 물감으로 쓴다.

 비오는 날은 모든 것을 용서한다

 
                                                      손수진

 

누군가 말했다
비오는 날은 모든 것을 용서한다
 

겨울비 주룩주룩 내리는 날
용서받고 싶어라
 

사랑한 죄
사랑하지 않은 죄


..........................................................

무언들 아쉽지 않은 것이 있었던가?
언제인들 후회하지 않았던 날이 있었던가?


새벽부터 겨울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우린 어제 또 하나의 상처를 남기고...


사는 것이 죄인가,
사랑하는 것이 죄인가?


우리의 삶에 대한 최소한의 감사와 복종,
사랑하는 이에 대한 작은 관심과 노력,


그래, 바로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죄인 것을...

혀 짧은 그리움. 아니, 그, 디, 움,


                                                          유용선


그는 언제나 그리움을 그,디,움, 이라 발음한다
그런 그에게 그, 리, 움, 을 강요하면 그, 디, 움, 한다
사람 좋은 그와의 술자리에서
나는 희미하게 바랜 옛사랑의 그림자를,
그는 언눅으로 남았을 옛사당의 그딤자를,
유부남인 나는 웃으며
친정에 가 있는 아내가 아쉽다고,
노총각인 그는 훌쩍거리며
다든 사내의 아내가 된 그 여자가 그딥다고,
마주앉아 주절거리며 술잔을 비워댔다.
내 말은 꽃같이 피었다가 시들고
그의 말은 불길이 되어 내 가슴을 데이게 했다
그의 천부적인 어눌함을 부러워하며,
매끄러운 나의 혀를 부끄러워하며,
마침내 내 중얼거림 속에서 사랑이 사당이 되었을 때,
그는 시, 나는 말이 되고,
그는 예술, 나는 현실이 되어,
시와 예술은 자취방으로, 말과 현실은 자기 집으로 향했다
그디운 사담 옆에 누워있지 않은 외도운 밤을 향하여

..................................................................................
다 지난 이야기이기에
우리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지.
술 한잔에 그리움도 달래고
추억이라고 예쁘게 포장도 하고
알코올로 채운 풍선도 불어 띄워보내지
모두 다 가질 수는 없어도
그 순수한 마음만은 간직하여라
시리고, 아프고,
사무치게 그리울진데...
시가 되고, 노래가 되고,
춤이 되고, 그림이 되어
허무의 공간을 채우라.

홀로서기 3


                      서정윤

 
1
보고 싶은 마음을
오래 참으면
별이 된다고
작은 창으로 바라보는 하늘이
유난히 맑다.

 
늘상 시행착오 속에 살면서
나를 있게 해 준 신이
나에게 원하는 게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
숱한 밤을 밝혀도
아직도 나는
나의 얼굴을 모르고 있다.
 
 
2
훌쩍 떠나버리고 싶은 역에서


그냥 그렇게
자신을 속이고 있다.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라지만
발길을 막고 서 있는 건
내 속에
나 혼자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인가
새로운 자리를 찾아나서는
풀씨들만큼 충실한
씨앗이 되지 못했다.

 
그리움이 익으면
별이 된다고
내 속에서 빛나는 건 미처 못 지운
절망의 아픔들만
아직도 눈을 뜨고 있다.
 
 
3
노래가 질펀한 거리를
그대는 걷고 있다.
시간은 내 속에 정지해 있고
어쩌면 눈물만이 아프다.

 
혼자 불끄고 누울 수 있는
용기가
언제쯤이면 생겨날 수 있나
모든걸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을 때가
나에게 있을까.

 
잊음조차 평온함으로 와 닿을 때
아,나의 흔들림은
이제야 끝났는가.
 
 
4
내가 준 고통들이
지금 내가 안고 궁그는 아픔보다
더 크고,그럴지라도
그 맑은 미소가
다시 피어나길 기도하는 것조차


알량한 자기 위한일 뿐
나에게 손 내밀어줄 신이
정말 있을까.

 
흔들리지 말아야겠다는
숱한 다짐들이
어떤 바람에도 놀라게 한다.
굳건히 설 수 있을 때까진
잊어야지
내 속에 흐르는 강물이
결국은 바다로 간다는 걸
깨닫기 까지.
 
 
5
나는 여기 있는데
내 마음은 어디를 다니고 있는 지
아직 알 수가 없다.
 

아프게 살아온 날들이
모두 돌아볼 수 없도록 참담하고
흔들리는 인간이
흔들리는 나무보다 약하다.
지하도를 빠져나오는 느낌이
모두 같을지라도
바람부는 날
홀로 굳건할 수 있다면
내 속에 자라는 별을 이제는
하늘로 보내 줄 수 있을텐데
 

아직도 쓰러져 있는
그를 위해 
나는 꽃을 들고 있다.
 
 
6
술잔 속에서 그대가
웃고 있을때,나는
노래를 부른다,사랑의 노래를,
보고 싶은 마음들은
언젠가 별이 되겠지


그사랑을 위해
목숨 걸 때가 있다면
내 아픔들은 모두 보여 주며
눈물의 삶을 얘기 해야지
연기처럼 사라지는 인생을 위해
썩어지는 육신을 위해
우리는 너무 노력하고 있다.
 

노을의 붉은 빛을 닮은
사랑의 얼굴로
이제는 사랑을 위해
내가 서야 한다.
서 있어야 한다.
 
 
7
안다.너의 아픔을 말하지 않아도
나만은 그 아픔을
느낄 수 있기에 말하지 않는다.
절망조차 다정할 수 있을 때
그대는 나의 별이 되어라.
흔들리는 억새풀이 애처롭고
그냥 보이지 않는 곳에서
피었다 지는 들꽃이
더욱 정겹다.
 

그냥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
사랑하기 위해 애쓰자.
사랑없는 삶으로
우리는 자신을 속일 수 없다
내 꿈으로 띄운 별이
이제는
누구의 가슴에 가 닿을지를
고민하지 말아야지.

......................................

홀로서기 2

 

                    서정윤


1
추억을
인정하자
애써 지우려던
내 발자국의 무너진 부분을
이제는 지켜보며
노을을 맞자.
바람이 흔들린다고
모두가 흔들리도록
버려 둘 수 없다는 걸
깨닫기까지
얼마나 많은 것을 또
잊어야 했나?


아름다움을 잃어버리는 순간은
육신의 어떤 일도
중요하지 않다.
내 가슴에 쓰러지는
노을의 마지막에 놀라며
남은 자도 결국은
떠나야 한다.


2
아무도
객관적인 생각으로
남의 삶을
판단해선 안 된다
그 상황에 젖어보지 않고서
그의 고민과 번뇌를
이해할 수 있을까
그가 가졌던
그 숱한 고통의 시간을
느껴보지 않고서, 그 누구도
비난해선 안 된다
너무 자기 합리화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지만
그래도 가슴 아득한 곳에서
울려나오는 절망은 어쩔 수 없고
네 개의 가시로 자신은
완전한 방비를 했다면
그것은
가장 완전한 방비인 것이다


3
나로 인해
고통 받는 자
더욱 철저히 고통하게
해 주라.
고통으로 자신이
구원 받을 수 있을 때까지


남이 받을 고통 때문에
자신을 희생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아닌 것은 아닌 것일 뿐
그의 고통은
그의 것이다.
그로 인해 일어난 내 속의 감정은
그를 더욱 나약하게 만들 뿐
아닌 것은 언제나
아닌 것이다
그로 인한 고통이 아무리 클지라도
결국은
옳은 길을 걸은 것이다.


4
나의 신을 볼
얼굴이 없다
매일 만나지도 못하면서
늘 내 뒤에 서 있어
나의 긴 인생길을 따라다니며
내 좁은 이기심과 기회주의를
보고 웃으시는 그를, 내
무슨 낯을 들고 대할 수 있으리.


부끄러움으로 인해
자신을 돌아보지만
자랑스레 내어놓을 것이라곤
하나도 없기에
좀더 살아
자랑스러운 것 하나쯤
내어 보일 수 있을 때가 되면
자신있게 신을 바라보리라
하지만,
언제가 되어질지는, 아니
영원히 없을지도 모르겠기에
<나>가 더욱 작게 느껴지는 오늘
나를 사랑해야 할 것인가, 나는


5
나 인간이기에 일어나는
시행착오에 대한 질책으로
어두운 지하 심연에
영원히 홀로 있게 된대도
그 모두
나로 인함이기에
누구도 원망할 수 없으리
내 사랑하는 내 삶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으니
나, 유황불에 타더라도
웃으려고 노력해야지.


내가 있는 그
어디에도 내가 견디기에는
너무 벅찬데
나를 이토록 나약하게 만든
신의 또 다른 뜻은 무엇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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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서기
 - 둘이 만나 서는 게 아니라 홀로 선 둘이가 만나는 것이다


                                    서정윤


1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가슴이 아프면
아픈 채로,
바람이 불면
고개를 높이 쳐들면서, 날리는
아득한 미소.

어디엔가 있을
나의 한 쪽을 위해
헤매이던 숱한 방황의 날들.
태어나면서 이미
누군가가 정해졌었다면,
이제는 그를
만나고 싶다.


2
홀로 선다는 건
가슴을 치며 우는 것보다
더 어렵지만
자신을 옭아맨 동아줄,
그 아득한 끝에서 대롱이며
그래도 멀리,
멀리 하늘을 우러르는
이 작은 가슴.
누군가를 열심히 갈구해도
아무도
나의 가슴을 채워줄 수 없고
결국은
홀로 살아간다는 걸
한겨울의 눈발처럼 만났을 때
나는
또다시 쓰러져 있었다.


3
지우고 싶다
이 표정 없는 얼굴을
버리고 싶다
아무도
나의 아픔을 돌아보지 않고
오히려 수렁 속으로
깊은 수렁 속으로
밀어 넣고 있는데
내 손엔 아무것도 없으니
미소를 지으며
체념할 수밖에.....
위태위태하게 부여잡고 있던 것들이
산산이 부서져 버린 어느날, 나는
허전한 뒷모습을 보이며
돌아서고 있었다.


4
누군가가
나를 향해 다가오면
나는<움찔>뒤로 물러난다.
그러다가 그가
나에게서 멀어져 갈 땐
발을 동동 구르며 손짓을 한다.

만날 때 이미
헤어질 준비를 하는 우리는,
아주 냉담하게 돌아설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아파오는 가슴 한 구석의 나무는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떠나는 사람은 잡을 수 없고
떠날 사람을 잡는 것만큼
자신이 초라할 수 없다.
떠날 사람은 보내어야 한다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일지라도.


5
나를 지켜야 한다
누군가가 나를 차지하려 해도
그 허전한 아픔을
또 다시 느끼지 않기 위해
마음의 창을 꼭꼭 닫아야 한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얻은 이 절실한 결론을
<이번에는>
<이번에는>하며 어겨보아도
결국 인간에게서는
더이상 바랄 수 없음을 깨달은 날
나는 비록 공허한 웃음이지만
웃음을 웃을 수 있었다.

아무도 대신 죽어주지 않는
나의 삶,
좀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6
나의 전부를 벗고
알몸뚱이로 모두를 대하고 싶다.
그것조차
가면이라고 말할지라도
변명하지 않으며 살고 싶다.
말로써 행동을 만들지 않고
행동으로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나는 혼자가 되리라.
그 끝없는 고독과의 투쟁을
혼자의 힘으로 견디어야 한다.
부리에,
발톱에 피가 맺혀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숱한 불면의 밤을 새우며
<홀로 서기>를 익혀야 한다.


7
죽음이 인생의 종말이 아니기에
이 추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살아 있다.
나의 얼굴에 대해
내가
책임질 수 있을 때까지
홀로임을 느껴야 한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홀로 서고 있을, 그 누군가를 위해
촛불을 들자.
허전한 가슴을 메울 수는 없지만
<이것이다>하며
살아가고 싶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사랑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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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한 연애


                                   윤성택


백사장 입구 철 지난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아직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듯
얽매여 군데군데 찢겨진 채였다
기어이 그녀는 바다에 와서 울었다
버려진 슬리퍼 한 짝과 라면봉지,
둥근 병 조각조차 추억의 이정표였을까
해질 녘 바위에 앉아 캔맥주 마개를 뜯을 때
들리는 파도소리, 벌겋게 취한 것은
서쪽으로 난 모든 창들이어서
그 인력권 안으로 포말이 일었다
유효기간 지난 플래카드처럼
매여 있는 것이 얼마나 치욕이냐고,
상처의 끈을 풀어준다면 금방이라도
막다른 곳으로 사라질 것 같은 그녀
왜 한줌 알약 같은 조가비를 모아
민박집 창문에 놓았을까, 창 모서리까지
밀물 드는 방에서 우리는 알몸을 기댔다
낡은 홑이불의 꽃들이 저녁내
파도 위를 밀려왔다가 밀려갔다
그녀가 잠든 사이, 밖은
오랫동안 기다려온 것처럼 바람이 불었다
꺼질 듯한 모닥불에 마지막으로
찢겨진 플래카드를 던져 넣었다

.................................................................

 

언젠간 끝날 거라는 걸 알아.
우리 사랑은 잘못된 것이라는 것도
하지만 난 믿을 수가 없었어.
우리 헤어져야 하는 것.


사랑이 이런 아픔이란 걸 왜 내게 말해주지 않았니
우린 지금껏 무엇을 기다리고 있었니
끝이 보이는 이별 앞에서...


간밤에 꿈처럼 짧은 만남이었지
이제는 돌이킬 수도 없는 시간.
소중히 간직하고 있을게 그 시간들...
너를 정말 사랑해...

 

('지독한 사랑'  - 목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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