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사랑


              유안진

 
나 혼자서 정리하고
나 혼자서 용서하며


얼었다가 풀렸다가
한겨울도 깊어 갑니다


비바람이건 눈보라이건
나 혼자의 미친 짓입니다
.......................................................

 

가수 바비 킴의 '사랑.. 그 놈'
완전 꽂혔다...
되지도 않는 피아노로 반주도 된다.


'사랑..그 놈' 을 들으면 이 시가 생각난다.

돌아오는 길

                                           

                        김강태

 

…춥지만, 우리
이제
절망을 희망으로 색칠하기
한참을 돌아오는 길에는
채소 파는 아줌마에게
이렇게 물어보기


희망 한 단에 얼마예요?
..............................................................................

 

입춘이 되어서도 절정을 치닫던 추위가

겨울비가 부슬부슬 내릴만큼 가라앉았다.
우리 어깨를 어지간히 움츠러들게 만들던 추위도 한풀 꺾인게다.


'돌아오는 길'을 읽다보면
한 줌 미소 흘리게 된다.


그럼 미소 한 자락에 얼마나 될까?

사평역(沙平驛)에서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 두고
모두들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 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 가는 지
그리웠던 순간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

서슬 퍼런 새벽 서녘 하늘 한 가운데에
반쯤 남은 조각달이 콱 박혀있다.


매서운 겨울바람 닥칠게 두려워 창문을 열어보지도 못하고
멍하니 하늘 한 가운데를 뚫어지게 보다가
어제 떠나간 이와, 지난 달 어느 날 헤어지게 된 사람과
작년 이맘때 쯤 돌아가신 할머니가 떠올랐다.


문득, 우리 삶에서 시간의 의미가 과연 있을까 생각해 본다.


그 중요하다는 시간의 사용법과 활용의 이야기는 얼마나 많은지...
하지만 우리의 헤아림은 얼마나 되는지...


아직 잠이 덜 깬 아내의 뒤척임에 퍼뜩 정신이 든다.
동녘 하늘도 곧 밝아 올 것이다.

손가락 한 마디


                              한하운


간밤에 얼어서
손가락이 한 마디
머리를 긁다가 땅 위에 떨어진다.


이 뼈 한 마디 살 한점
옷깃을 찢어서 아깝게 싼다
하얀 붕대로 덧싸서 주머니에 넣어둔다.


날이 따스해지면
남산 어느 양지 터를 가려서
깊이 깊이 땅 파고 묻어야겠다.

............................................................


보리 피리


                           한하운


보리 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꽃 청산(靑山)
어린 때 그리워
피--ㄹ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인환(인환)의 거리
인간사(人間事) 그리워
피--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幾山河)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ㄹ 닐니리.


* 인환 : 인간의 세계
* 기산하 : 산하가 그 몇 해인가?

.........................................................................

오랜만에 반가운 이의 이름이 적힌 메일이 도착했다.

짧막한 두 줄의 글...

 

'잘 계시냐고, 그저 버티고 있다고...'

 코 끝이 찡해온다.

 답장을 썼다.

 

'삶이란 늘 그러한 것. 별 것 아니니...'

'잘 지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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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의 강설(降雪)

    

                                     김종목

 

1.
어둡고 질긴 밤이
연탄 난로 위에서 지글거릴 즈음,
우리는 술잔을 앞에 놓고
한 시대의 비밀을 꺼집어내고 있었다.
녹쓴 젓가락 끝에 집히는
이 시대의 아픔을 나누어 들고
확실하게 다가오는 절망이라든가
혁명적인 우리의 피도 이야기하고
서로의 눈 속에 숨은 비밀도
손바닥을 뒤집듯 탁자 위에 올려 놓았다.
미리 준비된 약간의 눈물을 보이기도 하고
그저 목이라도 조르고 싶은 우리의 가난을
탁탁 소리내어 떨어내기도 하면서
한 시대의 울음을 어루만지듯
뻘꺽뻘걱 취하도룩 술을 마셨다.


2 .
약한 바람 앞에서도
자주 삐꺽거리는 싸구려 대포집에서
가장 고귀한 우리의 대화는
때로는 위험한 어둠을 동반하기도 하였다.
애국자가 어떻고 독재자가 어떻고
그저 주먹을 쾅쾅 내리치던
그해 겨울 밤,
우리는 추위 속에서 떨고 있는 自由를 보았다.
연탄 난로 곁에서 피에 젖은 눈물을 흘리며
사람들의 귀를 피하고
저 순하디 순한 눈발의 귀를 피하면서
우리의 대화는 날카롭게 움직였다.


3 .
잠시 침묵이 흐르고,
우리는 몸에 흐르는 애국심을 정돈하였다.
지껄이고 또 지껄여도
술집을 나오면 변함없이 눈이 내리고
한 겨울 내내 눈이 내리고,
우리의 가슴은 늘 비어 있었다.
순결한 눈은 우리의 가슴을 적시며
신음하는 우리의 한 세대를
內面 깊숙이 잠재우고 있었다.
우리가 찾는 부끄러운 단어들이
눈의 나라에 천천히 묻혀가고 있음을 보면서
歸家길에 날리는 내 슬픈 영혼은
그해 겨울 내내 잠들지 못했다.
...................................................................................

 

 

작금의 우리 상황이 50년전과 크게 다르지 않음이 안타깝다.
오늘도 그때처럼 눈이 내릴 듯하다.

대관령 옛길


                        김선우


폭설주의보 내린 정초에
대관령 옛길을 오른다
기억의 단층들이 피워올리는
각양각색의 얼음꽃


소나무 가지에서 꽃숭어리 뭉텅 베어
입 속에 털어넣는다, 火酒―


싸아하게 김이 오르고
허파꽈리 익어가는지 숨 멎는다 천천히
뜨거워지는 목구멍 위장 쓸개
십이지장에 고여 있던 눈물이 울컹 올라온다
지독히 뜨거워진다는 건
빙점에 도달하고 있다는 것
붉게 언 산수유 열매 하나
발등에 툭, 떨어진다


때로 환장할 무언가 그리워져
정말 사랑했는지 의심스러워질 적이면
빙화의 대관령 옛길, 아무도
오르려 하지 않는 나의 길을 걷는다
겨울 자작나무 뜨거운 줄기에
맨 처음인 것처럼 가만 입술을 대고
속삭인다, 너도 갈 거니?

....................................................................

두 볼이 날카로운 그 무엇으로 긁어내듯 따갑고 쓰라리다.
숨을 들이마시기가 무섭게 콧 속을 지나 목줄을 타고
서리발이 쫙 서는 느낌...


순간, 목줄이 어는 듯 아프고 목이 탄다.
뒷머리를 무엇인가가 콱 찌르고,
뜨끔하는 순간, 눈이 번쩍 뜨인다.


칠흑같은 어둠과 찬 공기 무겁게 내려앉은 새벽,
그보다 더 무거워진 발길을 옮기며
칼날같은 세찬 바람을 가르고,
영영 끝날 것 같지않은 아득한 시간을 제껴가며,
눈길을 터벅터벅 걸어 

산을 오른다.


시간은 흐르고,
길도 지나가고,
새벽을 지나 아침이 밝아오고,
언젠가는 산마루에 오른다.


다시 내려가야 하는 길,
죽어도 못 오를 것 같았던 길을 따라 여기까지 왔는데...

또 내려 간다.
다시는 못 오를 것 같던 길을 따라
이제 다시는 오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그런데...
지금, 가고 싶다.

 늦은 답장


                        길상호


이사를 하고 나서야 답장을 씁니다
늦은 새벽 어두운 골목을 돌아 닿곤 하던 집
내 발자국 소리에 설핏 잠에서 깨어
바람 소리로 뒤척이던 나이 많은 감나무,
지난 가을 당신 계절에 붉게 물든 편지를
하루에도 몇 통씩 마루에 올려 놓곤 했지요
그 편지 봉하기 위해 버려야 했던 잎들은
모아 태워도 마당 가득 또 쌓여 있었습니다
나 그 마음도 모르고 편지 받아 읽는 밤이면
점점 눈멀어 점자를 읽듯 무딘 손끝으로
잎맥을 따라가곤 했지요 그러면 거기
내가 걸었던 길보다 더 많은 길 숨겨져 있어
무거운 생각을 지고 헤매기도 하였습니다
당신, 끝자리마다 환한 등불을 매달기 위해
답답한 마음으로 손을 뻗던 가지와
암벽에 막혀 울던 뿌리의 길도 보였습니다
외풍과 함께 잠들기 시작한 늦가을 그 편지는
제 속의 불길을 꺼내 언 몸을 녹이고
아침마다 빛이 바래 있었습니다 덕분에 나
폭설이 많았던 겨울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집에 돌아오는 길가 마늘밭에서
지푸라기 사이로 고개 내민 싹들을 보았습니다
올해는 누가 당신의 편지 받아 볼는지
나는 이제 또 다른 가지를 타고 이곳에 와서
당신이 보냈던 편지 다시 떠올립니다
.........................................................................................


든든히 버텨줄 믿을만한 기둥도 못 되고,
곤한 다리 잠깐 쉴 의자도 못 되고,
잠시 서서 기대어 볼 전봇대만도 못한,
남편...


언제나 곁에 있어주는 네게
그 흔한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산다.


이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네게
따뜻한 말 한마디, 정다운 편지 한 줄 전하지 못하고 산다.


그래도, 네가 있어 내가 산다.

 

 

누가 사는 것일까


                                    김경미


1.
약속시간 삼십 분을 지나서 연락된 모두가 모였다
우리는 국화꽃잎처럼 둥그렇게 둘러앉아서 웃었다
불참한 이도, 더 와야 할 이도 없었다
식사와 담소가 달그락대고 마음들 더욱 당겨앉는데

문득 고개가 들린다 아무래도 누가 안 온 것 같다
잠깐씩 말 끊길 때마다 꼭 와야 할 사람 안 온 듯
출입문을 본다 나만이 아니다 다들 한 번씩 아무래도
누가 덜 온 것 같아 다 모인 친형제들 같은 데 왜
자꾸 누군가가 빠진 것 같지? 한 번씩들 말하며

두 시간쯤 지났다 여전히 제비꽃들 처럼 즐거운데
웃다가 또 문득 입들을 다문다 아무래도 누가 먼저
일어나 간 것 같아 꼭 있어야 할 누가 서운케도 먼저
가버려 맥이 조금씩 빠지는 것 같아 자꾸 둘러본다


2
누굴까 누가 사는 것일까 늘 안 오고 있다가 먼저 간
빈자리 사람과 사람들 사이의 저 기척은 기척뿐
아무리 해도 볼 수 없는 그들에겐 또 기척뿐일까 우리도
생은 그렇게 접시의 빠진 이 아무리 다 모여도
상실의 기척 더 큰 생은

.....................................................................................

연초가 되고 보니, 또 이런 저런 계획들을 준비하느라 바쁘다.
호주머니를 뒤적거리다가 찾아낸 영수증 몇 장과
이제는 책장 구석 한 켠으로 가게 될 다이어리에
띄엄띄엄 적힌 글씨들이 눈에 띈다.
정신없이 지나갔던 연말 모임들을 떠올렸다.
그래도 무사한 얼굴 한 번씩은 봤구나하는 생각에 슬며시 미소가 번진다.


유난히 이별이 많았던 2009년을 이제 접는다.
그리곤 새 다이어리에 가족들과 모임 친구들의 생일을 옮겨 적는다.


그래, 올 때는 이렇게 순서가 있었는데...
그래도 언제 태어났는지는 다 알 수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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