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한 마디


                              한하운


간밤에 얼어서
손가락이 한 마디
머리를 긁다가 땅 위에 떨어진다.


이 뼈 한 마디 살 한점
옷깃을 찢어서 아깝게 싼다
하얀 붕대로 덧싸서 주머니에 넣어둔다.


날이 따스해지면
남산 어느 양지 터를 가려서
깊이 깊이 땅 파고 묻어야겠다.

............................................................


보리 피리


                           한하운


보리 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꽃 청산(靑山)
어린 때 그리워
피--ㄹ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인환(인환)의 거리
인간사(人間事) 그리워
피--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幾山河)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ㄹ 닐니리.


* 인환 : 인간의 세계
* 기산하 : 산하가 그 몇 해인가?

.........................................................................

오랜만에 반가운 이의 이름이 적힌 메일이 도착했다.

짧막한 두 줄의 글...

 

'잘 계시냐고, 그저 버티고 있다고...'

 코 끝이 찡해온다.

 답장을 썼다.

 

'삶이란 늘 그러한 것. 별 것 아니니...'

'잘 지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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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퀴즈-호랑이와 곶감.pdf

 

    호랑이와 곶감 / 위기철 글 / 김환영 그림 / 국민서관

 

국민서관 옛날옛적에 시리즈 두 번째 그림책이다.

'아홉살 인생' 의 작가 위기철 선생이 들려주는 '호랑이와 곶감'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운 요소를 담고 있다.

막판, 토끼 꼬리가 잘리면서 극적인 상황의 크기가 두 배가 되는데 아주 즐겁고 신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참고로, 국민독서문화진흥회에서 개최하는 대통령상타기 전국 고전읽기 백일장 대회에서

이 책을 읽고 호랑이와 도둑, 토끼에게 편지를 썼던 초등학생이 최우수상인 대통령상을 받았다.

(2007년 아니면 2008년이다.)

 

더구나 김환영 선생의 해학적이고 토속적인 목판화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그림책의 명품으로 손색이 없다. 

 

 

 

독서퀴즈-호랑이와 곶감.pdf
2.53MB

 

독서퀴즈-도깨비으히히.pdf

 

 대만 그림책입니다. 한 아이와 거인 도깨비가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서 친해지는데...

 아이는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무진장 많은 책을 읽으라 권합니다.

 그 때부터 책읽기에 빠진 거인 도깨비가 도서관 지기가 된다는 재미있는 이야기 입니다.

 아이에게 책읽는 취미를 갖게 하기엔 썩 좋은 책입니다.....^.^....

 

 

 

 

 

 

 

 

독서퀴즈-도깨비으히히.pdf
1.95MB

 

독서퀴즈-나 정말아프단말이야.pdf

 

 

     난 토마토 절대 안 먹어 / 로렌 차일드 지음 / 조은수 옮김 / 8,500원 / 국민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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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잘 아시는 캐릭터죠? 

친절한 오빠 찰리와 귀엽고 톡톡튀는 깜찍한 롤라가 등장했던 첫 그림책입니다.

 

이 책으로 로렌 차일드는 가장 권위있는 그림책 작가상인 케이트 그린어웨이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이 책에서 작가는 놀라운 구성력과 감각적인 문장으로 아이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살짝 일깨워준답니다.

 

억지로 뭔가를 먹이려고 하는 어른이나, 맛없는 걸 강제로 꾸역꾸역 먹어야 하는 아이,

둘 다 재미없는 건 마찬가지죠...^.^...

 

하지만 먹는 것을 즐거움을 가르쳐 주고, 아이와 공감하며,

음식을 먹는 것이 하나의 재미있고 신나는 놀이가 되면,

아마도, 아이가 음식을 가리거나, 음식을 먹이려고 실랑이를 해야하는 문제는 단숨에 해결이 될 겁니다.

 

독서퀴즈-나 정말아프단말이야.pdf
0.87MB

1961년의 강설(降雪)

    

                                     김종목

 

1.
어둡고 질긴 밤이
연탄 난로 위에서 지글거릴 즈음,
우리는 술잔을 앞에 놓고
한 시대의 비밀을 꺼집어내고 있었다.
녹쓴 젓가락 끝에 집히는
이 시대의 아픔을 나누어 들고
확실하게 다가오는 절망이라든가
혁명적인 우리의 피도 이야기하고
서로의 눈 속에 숨은 비밀도
손바닥을 뒤집듯 탁자 위에 올려 놓았다.
미리 준비된 약간의 눈물을 보이기도 하고
그저 목이라도 조르고 싶은 우리의 가난을
탁탁 소리내어 떨어내기도 하면서
한 시대의 울음을 어루만지듯
뻘꺽뻘걱 취하도룩 술을 마셨다.


2 .
약한 바람 앞에서도
자주 삐꺽거리는 싸구려 대포집에서
가장 고귀한 우리의 대화는
때로는 위험한 어둠을 동반하기도 하였다.
애국자가 어떻고 독재자가 어떻고
그저 주먹을 쾅쾅 내리치던
그해 겨울 밤,
우리는 추위 속에서 떨고 있는 自由를 보았다.
연탄 난로 곁에서 피에 젖은 눈물을 흘리며
사람들의 귀를 피하고
저 순하디 순한 눈발의 귀를 피하면서
우리의 대화는 날카롭게 움직였다.


3 .
잠시 침묵이 흐르고,
우리는 몸에 흐르는 애국심을 정돈하였다.
지껄이고 또 지껄여도
술집을 나오면 변함없이 눈이 내리고
한 겨울 내내 눈이 내리고,
우리의 가슴은 늘 비어 있었다.
순결한 눈은 우리의 가슴을 적시며
신음하는 우리의 한 세대를
內面 깊숙이 잠재우고 있었다.
우리가 찾는 부끄러운 단어들이
눈의 나라에 천천히 묻혀가고 있음을 보면서
歸家길에 날리는 내 슬픈 영혼은
그해 겨울 내내 잠들지 못했다.
...................................................................................

 

 

작금의 우리 상황이 50년전과 크게 다르지 않음이 안타깝다.
오늘도 그때처럼 눈이 내릴 듯하다.

 공옥진 선생님...


이제 선생님을 부를 때의 호칭이 되어버린 '여사'를 붙이기가 부끄럽다.


여사의 뜻을 보니,

1 결혼한 여자를 높여 이르는 말
2 사회적으로 이름 있는 여자를 높여 이르는 말. 주로 성명 아래 붙여 쓴다.


그 말이 틀리지는 않겠지만, 선생님의 요즘 근황을 보고 있자니
우리의 전통문화에 대한 기본 인식이 부끄럽기만 하다.


일인창무극의 대가이신 선생의 말년의 삶을 보면, 이미 유명을 달리한 수많은 전통 문화인들의

삶의 질곡을 들여다 보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고 송구하다.

 

 

선생의 창무극은 참으로 귀한 것이었다.
수많은 이들의 애환을 쓰다듬어주었고,
수많은 이들의 아픔을 감싸주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선생의 소리에 눈시울 붉혔으며,
얼마나 많은 이들이 선생의 선생의 춤사위에 위로받고,
얼마나 많은 이들이 선생의 연기에 해원했던가?

 

  

 

20년전쯤, 한여름 뙤악볕 아래서 광주 도청 정문 앞에서
두터운 진압복 껴입고 헬멧까지 눌러 쓰고는
땀을 비오듯 흘리고 꼼짝하지 못하고 방패를 짚고 서 있던 내게
하얀 한복 입은 한 노인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바로 공옥진 선생님이셨다.


선생님은 손에 들고 계시던 손수건으로 내 얼굴에 흐르는 땀을 훔쳐내주셨다.
그 따스한 손길과 눈물이 그렁그렁 고이신 선생님의 눈을 마주치는 순간,
엉겁결에 선생님께 '선생님, 안녕하세요.' 꾸벅 인사를 했다.


하기사 그 때, 선생을 모르는 사람이 있었으랴마는
자신을 알아보는 젊은이가 대견해서였는지, 아니면 그 모양새가 처량해서 였는지,
선생님은 나를 꼭 끌어안고 다독여 주셨다.


덕분에 근무가 끝나기도 전에 교대해서 뒷마당에서 가혹한 얼차려를 받아야 했지만,
선생님의 그 따스한 손길과 눈물을 떠올릴 때면,
지금도 눈물이 앞을 가린다.
 

 

광주... 그 슬픈 한 장면, 한 장면을 나는 가슴으로 기억하고 있다.
무대 위에서의 선생님의 소리 한마디, 동작 하나, 눈짓 한 번...
모두 가슴으로 기억하고 있다.


우리 곁에 오래오래 남아주셔야 할텐데...

건강하시고 행복하셔야 할텐데...
지금도 마음 한구석이 너무 아프다.

 

대관령 옛길


                        김선우


폭설주의보 내린 정초에
대관령 옛길을 오른다
기억의 단층들이 피워올리는
각양각색의 얼음꽃


소나무 가지에서 꽃숭어리 뭉텅 베어
입 속에 털어넣는다, 火酒―


싸아하게 김이 오르고
허파꽈리 익어가는지 숨 멎는다 천천히
뜨거워지는 목구멍 위장 쓸개
십이지장에 고여 있던 눈물이 울컹 올라온다
지독히 뜨거워진다는 건
빙점에 도달하고 있다는 것
붉게 언 산수유 열매 하나
발등에 툭, 떨어진다


때로 환장할 무언가 그리워져
정말 사랑했는지 의심스러워질 적이면
빙화의 대관령 옛길, 아무도
오르려 하지 않는 나의 길을 걷는다
겨울 자작나무 뜨거운 줄기에
맨 처음인 것처럼 가만 입술을 대고
속삭인다, 너도 갈 거니?

....................................................................

두 볼이 날카로운 그 무엇으로 긁어내듯 따갑고 쓰라리다.
숨을 들이마시기가 무섭게 콧 속을 지나 목줄을 타고
서리발이 쫙 서는 느낌...


순간, 목줄이 어는 듯 아프고 목이 탄다.
뒷머리를 무엇인가가 콱 찌르고,
뜨끔하는 순간, 눈이 번쩍 뜨인다.


칠흑같은 어둠과 찬 공기 무겁게 내려앉은 새벽,
그보다 더 무거워진 발길을 옮기며
칼날같은 세찬 바람을 가르고,
영영 끝날 것 같지않은 아득한 시간을 제껴가며,
눈길을 터벅터벅 걸어 

산을 오른다.


시간은 흐르고,
길도 지나가고,
새벽을 지나 아침이 밝아오고,
언젠가는 산마루에 오른다.


다시 내려가야 하는 길,
죽어도 못 오를 것 같았던 길을 따라 여기까지 왔는데...

또 내려 간다.
다시는 못 오를 것 같던 길을 따라
이제 다시는 오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그런데...
지금, 가고 싶다.

 


 

빈곤이 어떤 것인가?

불과 30여년 전의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풍요로움을 후손들에게 물려주신 옛날 어린이들♠ 
누더기 옷에 헐벗고 굶주림에 살았어도 
따스한 온정이 흐르던 시절 이었습니다. 
 

추운겨울 냉기가 감도는 방에서 나와 따듯한 햇볕에서 
늘 언몸을 녹이곤 했지요. 헤진 옷을 입고 살아도 다들 
그렇게 사니 부끄러움이 뭔지도 모르고 자랐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어머니~ 추운겨울 양말이 없어 맨발이 
시려도 어머니 등에 업히면 엄마 품에서 나는 젖내음과 따 
듯하고 포금함은 지금도 잊을 수 가 없었습니다. 
투방집=나무로 얼기 설기 쌓아서 흙으로 빈 공간을 막아서 
지은 집입니다. 
 
 
소 외양간에 창을 만들어 소 여물을 먹이는 모습이 정겹습니다. 
소가 재산목록 1호였으며 사람은 굶어도 소는 늘 따근하게 쇠 
죽을 끓여서 주곤했지요. 물론 소없는 집이 대다수였지만.... 
 
두메산골 추운 겨울을 나기위해 월동 준비를 해놓은 장작더미 
앞의 세모자입니다. 초라한 모습과 천진 난만한 표정이 가슴을 
찡하게 만듭니다. 
 
 
굴피나무 껍질로 지붕을 덮어놓은 너와라는 지붕이지요. 
 
 
겨우살이를 위해 준비해둔 옥수수와 산골의 가정의 풍경입니다. 
옥수수 죽이나 감자등으로 연명하며 겨울 나기를 했지요. 
 
 
아이를 업고 김을 메는 우리들 어머님 
 
 
신문팔이, 신문배달 참으로 어렵게들 사셨습니다. 
 
 
추수가 끝난 동구밖 들판은 아이들의 놀이터로서 최고였지요. 
 
 
어촌의 아이들이 부모님의 일손을 도와 어포를 말리는 중입니다. 
 
 
생활은 어려워도 꿈과 희망이 넘첬던 시절이었습니다. 
텃밭의 짚더미는 추위도 녹여주고 놀이터로 활용되고.... 
 
 
학교 다녀오면 의례 부모님 일손을 돕고 밤이돼야 숙제를 
할 수 있었습니다. 가물 가물한 호롱불 밑에서 꾸벅 꾸벅 
졸면서 숙제하다 머리카락 많이들 태웠었지요. 연필심 
마져도 품질이 좋지 않아 <침을 발라 두어자 쓰고 또 침 바르고... 
 
암닭이 알을 놓기가 바쁘게 책보허리에 메고 따듯한 계란을 
들고 학교로 내달렸지요. 문방구에 가서 계란으로 공책이나 
연필등 학용품으로 물물 교환했답니다.뛰어가다 엎어져 
계란은 깨지고 눈물 콧물 울기도 많이 울었지요, 
금방 낳은 계란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 
 
학교 다녀와선 어김없이 지게지고 밭으로, 
산으로 땔감을 구하러 가곤 했지요 
 
가축들도 거두고, 한겨울에 고무신 신고 신발이 꽁꽁 얼서서 
발에 붙어 떨어지지도 않았답니다. 그때는 동상 안 걸린 
아이들이 이상했지요 
 
설걷이를 하기 위해 빈그릇 솥가마등을 안고 동네 우물가로 
설걷이를 하러 가는 모습입니다. 가마솥 뚜겅을 머리에 쓰고 
가는 모습이 설걷이를 많이 해본 솜씨 같습니다. 
 
지게를 못지는 여자아이들은 나무를 묶어서 머리에 이고 
산에서 내려오다 많이도 굴르고 다치고...... 
 
먹고 살기위해 학교 다녀오면 길거리로 구두딱이, 껌팔이, 
신문팔이 무엇이든 했답니다. 
 
구두를 닦는 아이의 표정이 무척이나 고달퍼 보입니다. 
 
어머니의 바쁜 일손을 돕고 있읍니다. 요즘 머리에 물건 이고 
다닐 수 있는 어린이들은 아마 없겠지요. 
 
부모님들은 공사장이나 들에 나가고 어린들은 학교 다녀와서 
동네의 잔 일거리들은 다 하였지요. 
 
곡괭이나 삽질도 잘했지요. 
 
당시 정부에서 덩그러니 학교 교실 하나 지어주면 나머지 
모든 공사는 학생들 차지 였습니다. 돌을 이고 지고 학교 
축대 쌓는 작업을 하고 있네요. 머리에 돌을이고 있는 
어린이 모습.. 돌을 어깨에 맨 아이... 
 
배타고 나가 부모님 일손도 돕고..... 
 
소먹이러 가고...비록 힘들게 살았어도 국경일이면, 
산골마을 독가에서도 꼭꼭 태극기 게양 했지요... 
 
초가집 앞 텃밭에서 농사일을 돕고 있네요. 
 
한겨울 강아지를 안고 따라로운 햇볕을 쬐고있습니다... 
강아지 안으면 온몸이 따듯했지요...돌아가면서 안고, 
순서를 기다리는 두어린이 표정이...*^^* 
 
엄마가 세수시켜 줄 때면 제인 먼저 코풀어! 하시고 ... 
따듯하게 물데워서 어린 동생들을 돌아가며 세수를 
시키셨지요. 
 
아파도 병원이 없어서, 너무 멀어서, 늘 집에는 아까징끼 
(머큐롬)을 비치해두고 발라주시곤 했지요. 자식의 아픈 
고통을 대신하듯 어머니의 표정이 너무도 안타깝게 보입니다. 
 
이발관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동네 한 두곳 이발기계 있는 
집에가서 머리를 깎고 했지요. 부실한 기계로 머리털 뽑혀서 
눈물은 줄줄... 
 
간혹 사회 복지가들이 학교 찾아오시어 사탕이나 먹을것을 전해주시고... 
 
아이를 등에 업고 갯벌에서 하루 종일 일하시곤 밤이면 아고고 
허리야! 고통으로 잠못 이루시던 우리 어머님들 이셨습니다. 
 
수안보 어는 산골마을 학교입니다. 
 
부모님들 일손이 모자라 등교길 이린이들은 스스로 조그만 
나룻배를 타고 도강하는 모습입니다. 안전 사고도 많았었지요. 
 
학교 교실에서 공부하는 모습입니다. 
 
책상 걸상 무척 정겹습니다. 특별 활동시간 주산부(수판) 어린이들 입니다. 
 
추억어린 풍금입니다. 선생님이면 누구나 풍금을 다룰 수 있어야 했지요. 
 
양말도 신지 않은 어린이, 무척 진지해 보입니다... 
 
비가 조금만와도 중간에 수업포기 잽싸게 개울을 건너 집으로 내 달렸지요. 
물이 불으면 건너지 못했고, 빨리 집에가서 집안 비 설거지 해야지요. 
모든게 공부보다 집안 일이 우선이었지요... 
 
여자는 코고무신 남자는 검정 고무신, 한겨울 양말이 없어 발이 시린 
아이들은 신발에 짚을 넣고 신었었답니다. 
 
학교 안가는 날이면 어린이 애향단(동호회)이 골목도 쓸고 
마을 어귀에 꽃길도 만들고 자기 마을 가꾸기를 했답니다. 
 
빗자루는 요즘 보기 힘든 싸리나무로 만든 빗자루 입니다. 
 
학교주변 수목원도 만들고...참으로 꿈과 희망이 많았던 시절이었습니다. 
< 
널뛰기하는 여자 아이들 모습입니다. 가운데 한 아이가 올라가 앉아 
중심을 잡고 누가 누가 높이뛰어 상대를 떨어뜨리나 껑충 껑충~ 
요즘 보기 힘든답니다. 
 
운동회가 열리는 날이면 온동네 어른 아이 할것 없이 모두의 대 잔치 
였습니다... 부모님들과 함께 뭉쳐서 힘 겨루기를 했지요. 
 
뛰어가면서 사다리 통과하기 무릅이 벗겨저서 피가 줄줄 흐르고... 
 
기마전으로 힘 겨루기도 하고... 
 
누가 누가 멀리 뛰나 훨훨...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목청것 소리치고 나면 
다음날은 모두가 목이쉬어 ㅎㅎㅎ 
지금의 운동회는 점심시간 지나면 
끝이지만 당시는 하루종일 온마을 
잔치로 해가 질때까지 했지요. 
 
학교마다 보통 공 두개정도(배구공,축구공) 최고의 놀이감 이었습니다. 
눈을 감고 블로킹하는 어린이 모습이^^* 
 
이렇게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차범근, 이회택과 같은 세계적인 
스타들이 탄생 하셨습니다. 
 
한창 태권도 붐이 일어 학교마다 가르키는 모습입니다... 
기마자세 태극1장이던가요..? 
 
무용연습 중인 여자 아이들입니다... 특별활동 시간이면 언제나 
책 걸상 뒤로 밀어 붙여놓고... 
 
길거리 포장마차 비슷한 곳에서 아이들 간식 많이 팔았지요. 
불량 식품이 너무 많아 늘 배앓이하고..... 
불과 3,40년전의 우리 모두의 모습입니다.
언제부터 배 부르다고 이젠 음식 쓰레기가......
예전엔 고기 한점 죽 한사발도 얼마나 고맙고 소중햇엇는데..
언제부터 물자가 이리도 풍부한지......
양말이며 옷가지 몇번이고 뀌메어 입고 신엇는데 
이젠 멀쩡한 옷들도 단지 유행지낫다고 버리니....
호롱불에 기름 아까워 심지 나추엇고
벽사이에 구멍내어 전구하나로 양쪽방 조명하여
 흐린 불빛에도 어머님은 바늘질하셧고 
나무궤짝이나 밥상에서도 책읽고 글쓰고 햇엇는데
이젠 방마다에 거실엔 몇개의 전구가 불 밣이니 지푸라기에서 바늘 찻을일 있는지....
아주 조금씩만 아끼고 절약해요.
그래서 남은것 있다면 이웃과 함께 나누는 마음이 항상 가슴에 샘물처럼 흘럿으면...... 
남이야 어찌하든 우리 님들만이라도........
우리님들도 다 격엇을 시절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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