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김남조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그대만큼 나를 외롭게 한 이도 없었다

이 생각을 하면 내가 꼭 울게 된다

 

그대만큼 나를 정직하게 해준 이가 없었다

내 안을 비추는 그대는 제일로 영롱한 거울

그대의 깊이를 다 지나가면 글썽이는 눈매의 내가 있다

나의 시작이다

 

그대에게 매일 편지를 쓴다

한 구절 쓰면 한 구절을 와서 읽는 그대
그래서 이 편지는 한번도 부치지 않는다

........................................................


오랜만에 편지를 쓰려니,

하고 싶은 말 너무 많은데

차마 다 잇지 못하고,

결국 할 말 조차 모두 잊고는

또 접게 된다...

그리움을 적어 보내기에는

아직 내 마음이 너무 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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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시

 

                                 김남조

 

어쩌면 미소짓는 물여울처럼
부는 바람일까
보리가 익어가는 보리밭 언저리에
고마운 햇빛은 기름인양 하고

 

깊은 화평의 숨 쉬면서
저만치 트인 청청한 하늘이
성그런 물줄기 되어
마음에 빗발쳐 온다

 

보리가 익어가는 보리밭 또 보리밭은
미움이 서로 없는 사랑의 고을이라
바람도 미소하며 부는 것일까

 

잔 물결 큰 물결의
출렁이는 바단가도 싶고
은 물결 금 물결의
강물인가도 싶어

 

보리가 익어가는 푸른 밭 밭머리에서
유월과 바람과 풋보리의 시를 쓰자
맑고 푸르른 노래를 적자

......................................................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의 6월 어느날,
푸릇푸릇 누렇게 익어가는 좁다란 보리밭길의

 

화려한 미소,
아찔한 손길,
일렁이는 정염

 

가슴 시리도록 그리운 6월의 어느날,
흐릿한 기억너머로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는 그때의 감흥.

 

취하고 싶어라
춤추고 싶어라
노래하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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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있음에

                                    김남조

 

그대의 근심 있는 곳에
나를 불러 손잡게 하라  
큰 기쁨과 조용한  갈망이
그대 있음에
내 맘에 자라거늘
오- 그리움이여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
나를 불러 손잡게 해

그대의 사랑 문을 열 때
내가 있어 그 빛에 살게 해
사는 것의 외롭고 고단함
그대 있음에
사람의 뜻을 배우니
오- 그리움이여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
나를 불러 그 빛에 살게 해

.....................................................
너를 위하여

                        김남조

 

나의 밤기도는
길고
한 가지 말만 되풀이한다.


가만히 눈을 뜨는 건
믿을 수 없을 만치의
축원(祝願).


갓 피어난 빛으로만
속속들이 채워 넘친 환한 영혼의
내 사람아.


쓸쓸히
검은 머리 풀고 누워도
이적지 못 가져 본
너그러운 사랑.


너를 위하여
나 살거니
소중한 건 무엇이나 너에게 주마.
이미 준 것은
잊어버리고
못다 준 사랑만을 기억하리라.
나의 사람아.


눈이 내리는
먼 하늘에
달무리 보듯 너를 본다.


오직
너를 위하여
모든 것에 이름이 있고
기쁨이 있단다.
나의 사람아.

....................................................................................

이보다 더 감동적이고 극적인 사랑의 노래가 있을까 싶다가도
혼자서 웅얼거리며 뒤돌아 고개를 떨군 모습을 떠올리게 되는...
화려하면서도 쓸쓸하고 열정적이면서도 싸늘한
시인의 사랑고백...

 

눈이 펑펑 쏟아지는 겨울밤...
밤이 새도록 눈물로 편지를 쓰고 또 지우고 했던
그 아픈 시간을 위로해 주던 시인의 한마디...

 

'너를 위하여 나 살거니...나의 사람아... '

 

'그대가 있어  내가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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