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앞에 봄이 있다


                                 김종해


우리 살아가는 일 속에
파도치는 날 바람부는 날이
어디 한두 번이랴
그런 날은 조용히 닻을 내리고
오늘 일을 잠시라도
낮은 곳에 묻어두어야 한다
우리 사랑하는 일 또한 그 같아서
파도치는 날 바람부는 날은
높은 파도를 타지 않고
낮게 낮게 밀물져야 한다
사랑하는 이여
상처받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추운 겨울 다 지내고
꽃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
................................................

고난 없는 생이 어디 있을까요?
안개 흩뿌리듯 우리를 흠뻑 젖게 하는 비
끊임없이 닥치는 삶의 시험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마저도 감사히 맞이하여
살아있음이 곧 복이라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삶을 대하는 옳은 태도겠지요.


비로소 꽃잔치 펼쳐질 봄을 맞아
맘껏 즐기고 양껏 누려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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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길

 

                      김종해 
   
한로 지난 바람이 홀로 희다
뒷모습을 보이며 사라지는 가을
서오릉 언덕 너머
희고 슬픈 것이 길 위에 가득하다
굴참나무에서 내려온 가을산도
모자를 털고 있다
안녕, 잘 있거라
길을 지우고 세상을 지우고 제 그림자를 지우며
혼자 가는 가을길
........................................................

모처럼 바람이라도 쐴까 싶어
뒷동산이라도 올라가려는데
자욱한 안개가 발목을 잡는다.


며칠 계속된 안개로 새벽 공기가 영 마뜩치 않다.
그동안 자질구레하게 벌어진 일상의 때
안개 부옇게 내린 길가에
텁텁하고 매케한 냄새 자욱하다.


마스크라도 챙겨쓰고 잠시 나섰던 길,
운동화와 옷, 모자를 툭툭 털며
얼른 제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안개 자욱한 새벽 공기
그 속에 가득한 분진은


또 바람이 불고
비가 쏟아져야 가라앉을게다.


우리네 삶이 늘 그렇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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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우산

   

                           김종해 
   
비를 가리기 위해 우산을 펴면
빗방울 같은 서정시 같은 우산 속으로
바람이 불고
하늘은 우리들 우산 안에 들어와 있다
잠시 접혀있는 우리들의 사랑 같은
우산을 펴면
우산 안에서 우리는 서로 젖지 않기
외로움으로부터 슬픔으로부터 서로 젖지 않기
물결 위로 혹은 꿈 위로 얕게 튀어오르는
빗방울 같은 우리 시대의 사랑법 같은
우산을 받쳐 들고
비오는 날 우산 안에서
서로를 향해 달려가기
비는 내려서 우리의 마음 속으로 스며들어
지하수로 흘러가지만
정작 젖는 것은 우리들의 여린 마음이다
우산 하나로 이 빗속에서
무엇을 가리랴
젖지 않는 꿈, 젖지 않는 희망을
누가 간직하랴
비를 가리기 위해 우산을 펴면
물방울 같은 서정시 같은 우산 속으로
바람이 불고
하늘은 우산만큼 작아져서 정답다
아직 우리에게 사랑이 남아 있는 한
한번도 꺼내 쓰지 않은
하늘 같은 우산 하나
누구에게나 있다

...........................................................

가을비 주룩주룩 내리는 9월 첫날 아침,
금세 가을이 다가서버려 괜히 마음 허전한 날,

 

김종해 님의 시를 읽고 나니
내리는 빗방울이 오히려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비에 젖은 우산 툴툴 털고 들어서면
나와 함께 따뜻한 차 한 잔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찻집 한 구석에 앉아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마음이 서둡니다.

 

우리 가슴속에 사랑이 남아 있는 한,
그 사랑을 기억하고 있는 한,
하늘같은 우산 하나 간직하고 있으니
더욱 마음 든든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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