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양희


벽에다 못 하나 박았다. 벽이 울렸다.
박힌 것은 못인데 벽이 다 울렸다.
그 소리 벽을 들어올렸다.
못 하나 받으려고 벽은 버텼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종일 못을 박았다.


벽에서 못 하나 뽑았다. 벽이 울렸다.
뽑힌 것은 못인데 벽이 다 울렸다.
그 소리 마음을 들어올렸다.
못 하나 보내려고 벽은 버텼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종일 못을 뽑았다.

..............................................

 

우연히 지하철 역 한켠에 붙은

천양희 시인의 시를 한 편 보게 되었습니다.

'바다' 라는 제목의 시였는데,

마음 한구석에 무언가 와 닿는 느낌이어서

천양희 시인의 시를 둘러 보았습니다.

이리 저리 둘러서 시인의 이야기를 듣다가

가슴 한켠이 시릿해졌습니다.

 

사람의 일이 다 못 박고 못 뽑는 일인가 봅니다.

들고 나는 자리는 없어지는데

그 느낌은 남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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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운 바다 성산포 4

 
                                                     이생진

 

         살아서 고독했던 사람 그 빈자리가 차갑다
         아무리 동백꽃이 불을 피워도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그 빈자리가 차갑다.
         난 떼어놓을 수 없는 고독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마자 방파제에 앉아 술을 마셨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 이 죽일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 나만 등대 밑에서 코를 골았다.
         술에 취한 섬 물을 베고 잔다.
         파도가 흔들어도 그대로 잔다.
         저 섬에서 한 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뜬눈으로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그리움이 없어질 때까지


         성산포에서는 바다를 그릇에 담을 수 없지만
         뚫어진 구멍마다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뚫어진 그 사람의 허구에도
         천연스럽게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은 슬픔을 만들고
         죽어서 취하라고 섬 꼭대기에 묻었다.
         살아서 그리웠던 사람 죽어서 찾아가라고
         짚신 두 짝 놓아 주었다.


         삼백육십오일 두고두고 보아도
         성산포 하나 다 보지 못하는 눈
         육십 평생 두고두고 사랑해도
         다 사랑하지 못하고 또 기다리는 사람

.................................................................................

 

성산포에서는
그리움이 바다가 되고
고독과 마주하여 술잔 기울이고
슬픔을 떠나 보낼 수 있답니다...

올해는 꼭 가봐야겠네요... 근... 20년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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