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꽃


                     박성우


옹알옹알 붙은 감꽃들 좀 봐라
니가 태어난 기념으로 이 감나무를 심었단다
그새, 가을이 기다려지지 않니?
저도 그래요, 아빠

 
웬, 약주를 하셨어요? 아버지
비켜라 이놈아, 너 같은 자식 둔 적 없다!
담장 위로 톱질당한 감나무, 이파리엔 햇살이
파리떼처럼 덕지덕지 붙어 흔들렸다
몸에 베인 뒤에야 제 나이 드러낸 감나무
나이테 또박또박 세고 또 세어도
더 이상의 열매는 맺을 수 없었다


아버지 안에서
나는 그렇게 베어졌다

 
그해, 장마는 길었다
톱으로 자를 수 없는 것은 뿌리였을까
밑동 잘린 감나무처럼 나도
주먹비에 헛가지를 마구 키웠다
연하디연한 어머니의 말씀에
나는 쉽게 몸살을 앓는 자식이 되기도 했지만
끝내 중심은 서지 않았다
이듬해 우리는 도시로 터를 옮겼다

 
아버지는 지난 겨울에 흙집으로 들어가셨다
사람들은 가장 큰 안식을 얻었다고 했다

 
왜 찾아왔을까
상추밭이 되어버린 집터
검게 그을린 구들장 몇 개만 햇볕에 데워져 있다
세상 겉돌던 나무 한그루
잘려진 밑동으로
감꽃이 피려는지 곁가지가 간지럽다
.....................................................................

하늘로 이어진 끈이 있대
아니라고 해도 싫다고 해도
아무 소용없는...


내 아비가 되고
내 자식이 되는
흔히 천륜이라고 부르는
차마 어쩔 수 없는...


얼마든 잘 살 수 있대
하늘로 이어진 끈이 없어도
이 세상에 내가 올 수는 없었겠지만
한 때는 차라리 그게 좋다고 생각했던...


모래성마냥 자꾸만 무너져 내리던
끈이라도 붙들고 싶던
하루 하루가 유난히 아프던...


어지간히 뜨겁고 푸르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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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학년

 

                       박성우

 

미숫가루를 실컷 먹고 싶었다
부엌 찬장에서 미숫가루통 훔쳐다가
동네 우물에 부었다
사카린이랑 슈거도 몽땅 털어넣었다
두레박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미숫가루 저었다

 

뺨따귀를 첨으로 맞았다.

................................

 

어지간히도 어렵던 시절,
참으로 배포 큰 아이가

간 큰 행동을 했다.

 

엇비슷한 기억 언저리가 간질간질하다.

그것도 한 두마리가 아니라 스물스물 수십마리다.

 

배포라도 컸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어린 뺨이 아프긴 했겠지만,

아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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