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사랑으로 살다 가고 싶다


                                                김종목


깊은 강물이 아니라
얕은 강가를 흐르는 맑은 물처럼
그렇게 가난하게 살면서도


눈도 맑게 마음도 깨끗하게
얕은 강물처럼 흐르고 싶다


흐르는 강물을 거스르지 않듯
흐르는 세월에 몸을 맡겨 둔 채


하루의 노동만큼 먹고 마시고
주어진 시간만큼 평안을 누리고
그러다 오라하면 가면 그만인 인생


굳이 깊은
강물처럼 많은 것을 거느리고
많은 것을 품어야 할 이유가 없다


그저 졸졸졸
흐르는 얕은 강가에서
누구든 손발을 씻을 수 있고


새와 짐승들도
마음 놓고 목을 축일 수 있는
그런 사랑으로 살다 가고 싶다
.............................................................................

요즘 '비우기', '내려 놓기' 등의 단어를 이곳 저곳에서 자주 볼 수 있다.
'힐링(healing)'이 큰 화두다.
그만큼 요즘 세상 사는 모양새가 복잡하고 힘이 든다는 얘기다.


오늘 우연히 길을 지나가다가 지인에게 책을 한 권 받았다.

가만히 책을 훑어보는데

내가 요즘 매일같이 생각하고 기도하는 내용이 고스란히 적혀있다.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이나 마음이,

내 행동과 삶의 방향이

정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음을 다시금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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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불빛

                                   김진경

 

산 아래 펼쳐진 불빛 자욱하다
언젠가
저 불 켜진 골목 어딘가에
너와 함께 서있었다
낮은 처마 밑으로 새나오는 불빛
오래 바라보며
간절하게
그 작은 불빛 하나 이루고 싶었다
그 때 첫 키스를 나누었던가
기억이 멀어 생각나지 않는데
그 오래 남은 간절함으로 따뜻한
세상의 불빛

 


빈 집 
                                  김진경

 

무너진 토담 한 귀퉁이, 햇빛이 빈 뜨락을 엿보는 사이 작고 흰 꽃을 흔들며 개망초떼가 온 집안을 점령한다.

썩은 지붕 한구석이 무너진 외양간, 비쳐드는 손바닥만한 햇빛 속에도 개망초는 송아지처럼 순한 눈을 뜨고 있다.

개망초떼들이 방심한 채 입 벌린 빈집을 상여처럼 떠메고 일어선다.

하얗게 개망초꽃 핀 묵정밭 쪽이 소란하다.
혹시 집 앞길로 사람들이 흘러가다가, 잠시 멈추어 내리기라도 한다면,

개망초들은 시치미를 떼고 서서, 햇빛 속에 흔들리리라.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 빈집은 숲에 묻히겠지.
문득 개망초꽃 하나가 내 어깨에 햇빛의 따뜻한 손을 얹으려 한다.

나는 완곡히 이 위안을 사양한다.

내가 지금 귀기울이는 건 다른 소리이다.

사람의 기운이 이제 아주 떠나려는 듯 사랑방에서 두런두런거리기도 하고, 쇠죽 끓이는 냄새를 풍기기도 하고,

외양간에 쇠방울이 딸랑거리기도 하고, 누군가 쟁기며 삽날이 흙과 사람과 개망초꽃더미 사이에 내쉬고 들이쉬던 숨결을 가만히 어루만져 거두어들인다.

언뜻 구름의 그림자가 빈 뜨락을 스치고, 그의 헛기침 소릴 들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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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망초 꽃 그득 핀 빈집 뜰안을
담밖에서 바라보고 돌아서는 한 사내의 뒷모습
그 자리에 남은 개망초 꽃의 위안을
완곡히 사양하는 그의 어깨짓


멀어지고, 지워지고, 잊혀지고, 사라지고 나면
거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지나쳐 가면 멀어지고,
눈 앞에서 지워지고,
그렇게 잊혀지고,
어느 순간 사라진다.

 
애틋함과 간절함과
아쉬움과 그리움
모두...


구름의 그림자가 빈 뜰을 스치듯
바람이 옷깃을 스쳐 지나가듯
잠시
그 자리에 머물다 사라질 것이다.


짧은 첫 키스의 짜릿한 추억으로
오늘 밤 소주 한 잔을 기울이고
가녀린 촛불 하나를 밝힐까?
 

그렇게 깨끗이 비워내고, 흔들리다
흔들리다 잠이 들고
잠이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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