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로

 

                이동순


동지 섣달 짧은 해는 기울고
서쪽 창문마저 어두워지니
방안 공기가 이마에 차다
화로에 참숯불을 듬뿍 담아
방에 들여놓으니
작은 방안은 삽시에 훈훈하다
그대와 나는 화로를 끼고 앉아
서로 마주 보며 웃는다
우리 둘은 숯불처럼 점점 달아오른다
화로의 영롱한 불빛이
그대 얼굴에 비치어 황홀하다
....................................................................

함께 한다는 것, 동반하는 것은
어쨌든 서로에게 발전적으로 변화해 가는 게 올바른 방향이겠지.
하지만 함께 발전하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다.
생각의 레벨도 맞아야 하고,
속도도 맞춰야 하고,
방향도 같아야 한다.


누군가의 무엇을 좋아할 수는 있다.
하지만 무엇이든 다 좋아하기란 쉽지 않다.
서로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진정한 동반이 되려면 누군가의 무엇이든 좋아하려 애써 볼 일이다.

그럴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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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흥 김씨 내간

                            

                         이동순
 

그해 피난 가서 내가 너를 낳앗고나
먹을 것도 없어 날감자나 깍아먹고
산후구완을 못해 부황이 들었단다
산지기집 봉당에 멍석 깔고
너는 내 옆에 누워 죽어라고 울었다
그해 여름 삼복의 산골
너의 형들은 난리의 뜻도 모르고
밤나무 그늘에 모여 공깃돌을 만지다가
공중을 날아가는 포성에 놀라
움막으로 쫓겨와서 나를 부를 때
우리 출이 어린 너의 두 귀를 부여안고
숨죽이며 울던 일이 생각이 난다
어느 날 네 아비는 빈 마을로 내려가서
인민군이 쏘아 죽인 누렁이를 메고 왔다
언제나 사립문에서 꼬릴 내젓던
이제는 피에 젖어 늘어진 누렁이
우리 식구는 눈물로 그것을 끓여 먹고
끝까지 살아서 좋은 세상 보고 가자며
말끝을 흐리던 늙은 네 아비
일본 구주로 돈 벌러 가서
남의 땅 부두에서 등짐 지고 모은 품삯
돌아와 한밭보에 논마지기 장만하고
하루 종일 축대쌓기를 낙으로 삼던 네 아비
아직도 근력 좋게 잘 계시느냐
우리가 살던 지동댁 그 빈 집터에
앵두꽃은 피어서 흐드러지고
네가 태어난 산골에 봄이 왔구나
아이구 피난 피난 말도 말아라
대포소리 기관포소리 말도 말아라
우리 모자가 함께 흘린 그해의 땀방울들이
지금 이 나라의 산수유꽃으로 피어나서
그 향내 바람에 실려와 잠든 나를 깨우니
출아 출아 내 늬가 보고접어 못 견디겠다
행여나 자란 너를 만난다 한들
네가 이 어미를 몰라보면 어떻게 할꼬
무덤 속에서 어미 쓰노라
.....................................................................

아, 우리네 삶

차라리 눈물 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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