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김기림


나의 소년시절은 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 빛에 호져 때없이 그 길을 넘어
강가로 내려갔다가도 노을에 함북 자주빛으로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


그 강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 번 댕겨갔다.
가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과 그러고 어두운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난지를 모른다는 동구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애 멍하니 기다려 본다.
그러면 어느새 어둠이 기어와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 준다.

...............................................................

 

삶도 죽음도 자연의 한조각일뿐인 것...

만남도 그리고 헤어짐도 그저

집어들었다 놓은 조약돌 같은 것...

흐르는 시간도, 흘러간 옛 이야기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고

마냥 흘러가버려서 매양 잊혀지는 것...

잠시도 서서 쉴 곳 없는 삶의 길을 하염없이 걷다가

저 모퉁이를 돌면 멈춰질까 싶어

또 걷다보면 이어지고 또 그렇게 흘러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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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1    
  
                   김용택


바람이 붑니다
가는 빗줄기들이 옥색 실처럼 날려오고
나무들이 춤을 춥니다


그대에게
갈까요 말까요
내 맘은 절반이지만
날아 온 가랑비에
내 손은 젖고
내 맘도 벌써 다 젖었답니다


봄비 2    
  
                  김용택


어제는 하루종일 쉬지도 않고
고운 봄비가 내리는
아름다운 봄날이었습니다


막 돋아나는 풀잎 끝에 가 닿는 빗방울들,
풀잎들은 하루종일 쉬지 않고 가만가만
파랗게 자라고


나는 당신의 살결같이 고운 빗줄기 곁을
조용조용 지나다녔습니다


이 세상에 맺힌 것들이 다 풀어지고
이 세상에 메마른 것들이 다 젖어서


보이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는
내 마음이 환한 하루였습니다. 어제는 정말


당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고운 당신이 하얀 맨발로
하루종일 지구 위를
가만가만 돌아다니고


내 마음에도 하루 종일
풀잎들이 소리도 없이 자랐답니다. 정말이지


어제는
옥색 실같이 가는 봄비가 하루 종일 가만가만 내린
아름다운 봄날이었습니다.
...............................................

화려하고 현란한 봄 꽃의 향연이 막을 내릴 즈음,
이젠 그 열기를 식히려는 듯
가만가만 종일토록 봄비가 내립니다.


빗방울이 지글지글 우산에 듣는 소리를 들으며
문득 어디선가 아름다운 사랑노래가 흘러나올 것 같아
주위를 두리번 거립니다.


다시 우산 아래의
지글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나의 지난 시간들에 대한 생각에 젖어봅니다.


이미
우산도
길도 다 젖었습니다.


내 옷소매도
바짓가랑이도 다 젖었습니다.


혹시
내 마음이 젖을까봐
얼른 옷깃을 여밉니다.

마지막 섹스의 추억

 

                                  최영미


아침상 오른 굴비 한 마리
발르다 나는 보았네
마침내 드러난 육신의 비밀
파헤쳐진 오장육부, 산산이 부서진 살점들
진실이란 이런 것인가
한꺼풀 벗기면 뼈와 살로만 수습돼
그날 밤 음부처럼 무섭도록 단순해지는 사연
죽은 살 찢으며 나는 알았네
상처도 산 자만이 걸치는 옷
더이상 아프지 않겠다는 약속


그런 사랑 여러번 했네
찬란한 비늘, 겹겹이 구름 걷히자
우수수 쏟아지던 아침햇살
그 투명함에 놀라 껍질째 오그라들던 너와 나
누가 먼저 없이, 주섬주섬 온몸에
차가운 비늘을 꽂았지


살아서 팔딱이던 말들
살아서 고프던 몸짓
모두 잃고 나는 씹었네
입안 가득 고여오는
마지막 섹스의 추억

.....................................................

언제였던가요?

최영미 시인의 감각적이고 예리한 자극에

욕망이, 열정이 꿈틀거리던 시절이...

그녀의 시 한 줄 한 줄을 다시 또 다시 읽어 내려가며

그녀의 혀끝에서 좌지우지되던 내 신경의 끄트머리...

그리곤 다시 오그라드는 내 허기...

그녀를 한 번은 만나보고 싶다는 내 허망한 바램이

어쩌면 잠시나마 이루어지기를......

비는 소리없이 내린다


                                이외수


흐린 세월 속으로 시간이 매몰된다.
매몰되는 시간 속에서 누군가 나지막히 울고 있다
잠결에도 들린다


비가 내리면 불면증이 재발한다
오래도록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었던 이름일수록
종국에는 더욱 선명한 상처로 남게 된다
비는 서랍 속의 해묵은 일기장을 적신다.


지나간 시간들을 적신다.
지나간 시간들은
아무리 간절한 그리움으로 되돌아 보아도 소급되지 않는다.
시간의 맹점이다
일체의 교신이 두절되고 재회는 무산된다
나는 일기장을 태운다. 그러나
일기장을 태워도 그리움까지 소각되지는 않는다


비는 뼈 속을 적신다.
뼈저린 그리움 때문에 죽어간 영혼들은 새가 된다
비가 내리는 날은 새들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날 새들은 어디에서 날개를 접고
뼈저린 그리움을 달래고 있을까...


비 속에서는 시간이 정체된다.
나는 도시를 방황한다.
어디에도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도시는 범람하는 통곡 속에서 해체된다.
폐점시간이 임박한 목로주점
홀로 마시는 술은 독약처럼 내 영혼을 질식시킨다.


집으로 돌아와 바하의 우울한 첼로를 듣는다.
몇 번을 반복해서 들어도 날이 새지 않는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목이 메인다.


우리가 못다한 말들이 비가 되어 내린다.
결별 끝에는 언제나 침묵이 남는다
아무리 간절하게 소망해도 돌아갈 수 없는 전생
나는 누구를 사랑했던가
유배당한 영혼으로 떠도는 세속의 거리에는
예술이 암장되고 신화가 은폐된다.


물안개 자욱한 윤회의 강변 어디쯤에서 아직도
그대는 나를 기다리고 있는가
나는 쓰라린 기억의 편린들을 간직한 채
그대로부터 더욱 멀리 떠나야 한다
세속의 시간은 언제나 사랑의
반대방향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에

...............................................................

 

'세속의 시간이 언제나 사랑의 반대방향으로 흐른다' 는
가슴이 서늘해 지는 말...
이외수 님의 냉철한 사고가 묻어납니다....


윤회의 강변 어디쯤에선가는 다시 만나겠지요.
우리가 못다한 말들이 아직 남아서...

 어머님 은혜 (어버이날 노래)

 

                                  윤춘병 작사/ 박재훈 작곡


1.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하지만
   나는 나는 높은 게 또 하나 있지
   낳으시고 기르시는 어머님은혜
   푸른 하늘 그보다도 높은 것 같애


2. 넓고 넓은 바다라고 말들하지만
   나는 나는 넓은 게 또 하나 있지
   사람되라 이르시는 어머님은혜
   푸른 바다 그보다도 넓은 것 같애

 

 

 어머니 마음


                                 양주동 작사/ 이홍렬 작곡


1.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때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고
   손 발이 다 닳도록 고생 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높다 하리오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 없어라


2. 어려선 안고 업고 얼러주시고
   자라선 문 기대어 기다리는 맘
   앓을사 그릇될사 자식 생각에
   고우시던 이마 위에 주름이 가득
   땅 위에 그 무엇이 높다 하리오
   어머님의 정성은 지극하여라


3. 사람의 마음속엔 온가지 소원
   어머님의 마음속엔 오직 한가지
   아낌없이 일생을 자식 위하여
   살과 뼈를 깍아서 바치는 마음
   인간의 그 무엇이 거룩하리오

.................................................................

 

어버이날 대표적으로 불리는 두 곡의 노래입니다.

너무나 잘 알려진 시와 곡이지만

부모님 생각하면서 한 줄 한 줄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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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에 
  
                     오세영 
 

겨울이 가면
봄이 온다는 것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봄이 오면
잎새 피어난다는 것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잎새 피면
그늘을 드리운다는 것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나, 너를 만남으로써
슬픔을 알았노라.
전신에 번지는 이 초록의 그리움을
눈이 부시게 푸르른 봄날의 그
꽃 그늘을,

............................................

 

눈부시게 빛나는 봄날의 화려함,

그 축제의 계절을 노래한 시는 많다.

이 시를 읽으면...

역시...

오세영 시인을 봄의 시인이라고 불러도 될 만하다...

잠지

                       오탁번


할머니 산소 가는 길에
밤나무 아래서 아빠와 쉬를 했다
아빠가 누는 오줌은 멀리 나가는데
내 오줌은 멀리 안 나간다


내 잠지가 아빠 잠지보다 더 커져서
내 오줌이 멀리멀리 나갔으면 좋겠다
옆집에 불 나면 삐용삐용 불도 꺼주고
황사 뒤덮인 아빠 차 세차도 해주고


내 이야기를 들은 엄마가 호호호 웃는다
- 네 색시한테 매일 따스운 밥 얻어먹겠네

.........................................................

 

아버지와 목욕탕 갔던 일이 문득 생각났다.
아버지 고추는 크고 내 고추는 작고...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부끄러움으로 몸을 움츠렸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작동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와의 목욕에 대한 기억이 그리 많지는 않다.
오히려 그때가 그리워질 때도 있다.

오늘은 아들과 목욕을 해야겠다.

4월의 노래  

                        박목월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
멀리 떠나와 이름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목련꽃 그늘 아래서
긴 사연의 편질 쓰노라

클로버 피는
언덕에서 휘파람 부노라

아 !
멀리 떠나와 깊은 산골
나무 아래서 별을 보노라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
....................................................................

 

가곡으로 너무나 유명한 박목월 님의 '4월의 노래'.....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드는

빛나고,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아!!!

어느새 보내고 나니 너무 아쉽기만 하다.  

그래서인지 오늘은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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