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듣는 소리

 

                         최승범

 

호박잎 비 듣는 소리

휘몰이 장단이다.

 

어 시원하다

어 시원하다

 

목이 탄

푸성귀들은

신바람에

자지러진다.

.............................................................

우중충한 도심에서 맞는 빗소리와

자연 속에서 듣는 비 듣는 소리는 

그 느낌부터가 사뭇 다르겠지요.

 

연이어 슬픈 일을 겪었습니다.

우리 어른들은 하나 둘 세상을 떠나고

의지할 곳 없는 우리만 덩그러니 남게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어차피 한 세대가 지나가고 있음인데,

너무도 자연스런 일일텐데 말입니다...

 

마른 땅에 단 비 내리듯

우리에게도 기쁜 소식이 들려오면 좋겠습니다.

신바람에 자지러질만한 일이 있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명시 감상 2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도현... 바닷가 우체국  (0) 2009.09.02
김재진... 사랑할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0) 2009.08.30
김영태... 과꽃  (0) 2009.08.26
공광규... 사랑  (0) 2009.08.21
이상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0) 2009.08.16

과꽃

 

                        김영태

 

과꽃이 무슨 기억처럼 피어있지

누구나 기억처럼

세상에 왔다가 가지

 

조금 울다 가버리지

옛날같이 언제나 옛날에는

빈 하늘 한 장이 높이 걸려있었지

.........................................................................

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 ~ 꽃밭 가득 예쁘게 피었습니다....

누나는 과꽃을 좋아했지요. ~ 꽃이 피면 꽃밭에서 아주 살았죠....

 

참, 예쁜 노랫말로 기억되는 노래다.

 

들녘 밭둑에 핀 봉숭아, 하늘 하늘 흔들리는 코스모스

담장 밑에 오골오골 피어난 채송화 무리

담장 너머 늘어진 능소화...

 

기억속에 남은 시간은 모두 옛날인데

막상 옛날에 어땠는지 생각해 보니, 도무지 제대로 기억이 나는 것이 없다.

그저 느낌만 막연히 남아서, 파란 하늘 흩어진 하얀 구름 사이로

슬프도록 아름답게 널려있다.

사랑


                     공광규

         
새를 사랑하기 위하여
조롱에 가두지만
새는 하늘을 빼앗긴다 


꽃을 사랑하기 위하여
꺾어 화병에 꽂지만
꽃은 이내 시든다 


그대를 사랑하기 위하여
그대 마음에 그물 쳤지만
그 그물 안에 내가 걸렸다 


사랑은 빼앗기기
시들기
투망 속에 갇히기.
....................................................

가둬놓고 사랑하려니까 힘이 들다.
소유하려 하니까 사랑이 쉽지 않은게다.
누군가를 위해 사랑한다는 건
말짱 거짓말이다.


자신의 욕심만을 채우려 하는 것은 아닌지.
내가 이 만큼 주었으니 하면서
상대에게 적어도 이 만큼을 요구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이켜 생각해 볼 일이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곰곰히 생각해 볼 일이다.

'명시 감상 2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승범... 비 듣는 소리  (0) 2009.08.27
김영태... 과꽃  (0) 2009.08.26
이상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0) 2009.08.16
피천득... 고백(告白)  (0) 2009.08.12
김지하... 타는 목마름으로  (0) 2009.08.05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국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

 

일본으로부터 나라를 되찾은 지 64년!
해방둥이이신 내 어머니의 생과 같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세월이 흘렀다.
이젠 그 뼈아픈 역사가 여러모로 많이 퇴색되고 우리의 기억속에서 잊혀졌구나 싶다.


하지만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여전히 아무것도 청산되지 못하고 고스란히 남아있는 일제의 잔재들과
여전히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는 매국노의 후손들,
반면에 비극의 역사와 함께 세월속에 영원히 묻혀버린 애국선열들과 버려진 그의 후손들


게다가 광복 이후 모든 것이 제대로 정리되지 못하고, 제자리를 찾지 못하여

결국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게 된 우리...그리고 이 땅...


여전히 빨갱이 이데올로기가 잔존하고, 일부 정치세력에 이용되는 현실을 보며,


이렇게 정신을 빼앗긴 이 땅에 참된 봄이 오는 그날은 언제가 될 지...
광복절 아침, 진정한 나라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안타까운 심정으로, 83년전 씌여진 이 뜨거운 시를 한 줄 한 줄 다시 읽어본다.

'명시 감상 2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영태... 과꽃  (0) 2009.08.26
공광규... 사랑  (0) 2009.08.21
피천득... 고백(告白)  (0) 2009.08.12
김지하... 타는 목마름으로  (0) 2009.08.05
유치환... 행복 (幸福)  (0) 2009.08.02

고백(告白)


                  피천득


정열
투쟁
크라이맥스
그런 말들이 멀어져 가고


풍경화
아베 마리아
스피노자
이런 말들이 가까이 오다


해탈 기다려지는
어느날 오후
걸어가는 젊은 몸매를
바라다본다.

................................................

 

늘 우리 곁에 계실 것 같던 어른들이
한 분, 두 분 우리 곁을 떠납니다.
사실 어찌보면 너무나 자연스런 일이지만...
한 세대가 지나가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짧막한 한 줄의 글로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전하는
시인의 촌철살인(寸鐵殺人)


달콤한 한 마디의 고백(告白)
쌉싸름한 한 마디의 고백(告白)

'명시 감상 2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광규... 사랑  (0) 2009.08.21
이상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0) 2009.08.16
김지하... 타는 목마름으로  (0) 2009.08.05
유치환... 행복 (幸福)  (0) 2009.08.02
조병화... 공존(共存)의 이유  (0) 2009.08.02

타는 목마름으로

 

김지하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가닥 있어
타는 가슴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욱소리 호르락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소리
신음소리 통곡소리 탄식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의 독재에 맞서 민주화 투쟁의 표상이었던 시인 김지하의 대표시입니다.

우리 역시 한 시절, 목에 핏대를 세우며 가슴이 터져라 불렀던 노래이기도 했습니다.

재벌, 언론, 정치세력들이 함께 여론을 몰아가던 그 시절의 아픔이 고스란히 기억속에 되살아 납니다.

 

오늘은 문득 이 시를 적어보고 싶었습니다.

 

최근 잇달은 촛불시위 현장에서의 공권력 투입, 끝내는 끔찍한 희생을 불러 온 용산 참사,
그리고 오늘 군사작전을 방불케 한 쌍용자동차 공장에서의 진압작전 등 일련의 사건들을 지켜보면서

참으로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제각기 다른 사안이어서 이유는 차지하고서라도 계속되는 무리한 공권력에 의한 참상을 지켜보는 것은

국민의 한사람으로써 참으로 안타깝고, 자꾸만 분노하게 만듭니다.


과연 저들에게 국민은 무엇이며, 저들이 지켜야 하는 국민은 누구인가요?

지금도 모 포털사이트 대부분의 메인뉴스는 미국 여기자 석방과 잡다한 연예계 소식으로 도배되어 있군요.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명시 감상 2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상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0) 2009.08.16
피천득... 고백(告白)  (0) 2009.08.12
유치환... 행복 (幸福)  (0) 2009.08.02
조병화... 공존(共存)의 이유  (0) 2009.08.02
박이도... 첫편지  (0) 2009.07.30

행복 (幸福)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방울 연련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

요즘, 시(詩)에 푹 빠져 사는 나에게 누군가 물었다.

'당신은 나를 보면 어떤 시가 생각이 나느냐고...'

 

짧은 순간, 많은 시와 사람과 사건과 시간들이 생각나고 사라졌다.


누군가에게 적어 보냈던 시(詩)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읽었던 시(詩)

누군가를 보내며 읽었던 시(詩)
누군가를 위하여 썼던 시(詩)

그래, 우리는 늘 서로 마음을 전하지 못하고 산다.
어쩌면 우리는 마음을 나눌 여유를 갖지 못하고 산다.


시(詩) 한 편으로 마음을 전하고 나눌 수 있다면
사랑을 전하고 나눌 수 있다면 좋겠다.


오늘, 진정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 시(詩)를 전해주어야겠다.

공존(共存)의 이유


                               조병화


깊이 사랑하지 않도록 합시다.
우리의 인생이 그러하듯이
헤어짐이 잦은 우리들의 세대
가벼운 눈웃음을
나눌 정도로
지내기로 합시다.
우리의 웃음마저 짐이 된다면
그때 헤어집시다.
어려운 말로 이야기하지
않도록 합시다.
당신을 생각하는 나를
얘기할 수 없음으로 인해
내가 어디쯤에 간다는 것을 보일 수 없으며
언젠가 우리가  헤어져야 할 날이 오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 사랑합시다
우리 앞에 서글픈  그날이 오면
가벼운 눈 웃음과 잊어도 좋을 악수를 합시다.

...................................................................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마음 내키는 대로 되지 않아서
그 무게를 덜려고 덜어지지도 않고
더하려 해도 더해지지 못한다.


젊은 날, 소나기처럼 지나간
열정이 조금 가라앉을 때쯤
이 시를 읽으며 얼마나 마음아팠던지...


둘만의 추억이 창틀 먼지만큼이나 겨우 쌓인
길모퉁이 어느 카페에서
잘 살라는 인사를 어설프게 던져두고
돌아서면서 얼마나 가슴시렸던지...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