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류

 

                  이가림


언제부터
이 잉걸불 같은 그리움이
텅 빈 가슴속에 이글거리기 시작했을까


지난 여름 내내 앓던 몸살
더 이상 견딜 수 없구나
영혼의 가마솥에 들끓던 사랑의 힘
캄캄한 골방 안에
가둘 수 없구나


나 혼자 부둥켜안고
뒹굴고 또 뒹굴어도
자꾸만 익어가는 어둠을
이젠 알알이 쏟아놓아야 하리


무한히 새파란 심연의 하늘이 두려워
나는 땅을 향해 고개 숙인다


온몸을 휩싸고 도는
어지러운 충만 이기지 못해
나 스스로 껍질을 부순다


아아, 사랑하는 이여
지구가 쪼개지는 소리보다
더 아프게
내가 깨뜨리는 이 홍보석의 슬픔을
그대의 뜰에
받아주소서
.......................................................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
참 쉽고도 어려운 일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
참 쉽고도 어려운 일


오늘을 감사하는 일
참 쉽고도 어려운 일


가슴에 희망을 품고 사는 일
참 쉽고도 어려운 일


오직 너를 사랑하고
너만을 기다리며
오늘 너와의 하루에 감사하며
혹시 너와 함께 할
내일에 대한 희망을 품는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일
참 쉽고도 안타까운 일


하지만...
참 행복할지도 모르는 일

'명시 감상 4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재종... 강변 연가  (0) 2012.09.03
이문재... 낙타의 꿈  (0) 2012.09.03
김지유... 마라토너  (0) 2012.08.07
김선우... 애무의 저편  (0) 2012.08.02
김선굉... 저것이 완성일까  (0) 2012.07.23

마라토너


                   김지유


거꾸로 누워 킁킁 불러들이는
그의 발 냄새


종일 바닥과 입맞춤한 발가락 사이에
얼굴을 묻고 벌렁벌렁 콧구멍으로
웃는 일


굳은 살 박히지 않은 바닥의 급소를 찾아
있는 힘껏 숨구멍을 꽂아 넣는 일
그렇게 쌕쌕 잠드는 일


죽음의 체위까지 바꿔가며
사랑하는 일
.........................................................................

시간은 늘 꿈 꾼 듯 지난다.


함께 머물렀던 공간은 사라지고
오직 시간만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시간도
찰라의 명료한 기억만을 남긴 채
아스라이 사라진다.


금세
그 기억조차 아슥하다.

'명시 감상 4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문재... 낙타의 꿈  (0) 2012.09.03
이가림... 석류  (0) 2012.08.17
김선우... 애무의 저편  (0) 2012.08.02
김선굉... 저것이 완성일까  (0) 2012.07.23
안도현... 개망초꽃  (0) 2012.06.20

애무의 저편


                    김선우


웃통 벗고 수박을 먹는데
발가락에 앉았다 젖무덤을 파고드는
파리 한마리
손사래도 귀찮아 노려보는데


흡, 부패의 증거인지도 몰라


눈치 챈 걸까 이제 아무도 못 믿게 돼버린 걸
구겨진 발톱, 숱하게 생발을 앓아온 희망에게
내밀 수 있는 건 소화제 몇 알
비굴하지 않게 예스라고
말할 줄 알게 된 것도 다 들통나버린 걸까


질기고 안전한 아랫배 속에서
냄새를 피우는 영혼의 끌탕
(왜, 노출된 내장만이 추한 것일까)


섹스하고 싶어,라는 말 대신
미치도록 사랑해 널,
그의 내부도 부패중인 걸까
어지러워, 나의 절정에
왕성하게 생식하는 저 황홀한 잡균들!

.................................................................

문득 내 젊은 날의 오만과 편견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 시절 내 판단과 사고의 틀은 과연 어땠던가?


불과 10여년 전 이 시를 읽었을 때,
그녀의 관능적인 언어와 감각적인 상징에 열광했었는데,
오늘은 왜 이리 값싼 유희처럼 느껴지는지...


그녀의 시가 단 한 글자도 변하지 않았을텐데,
내 태도는 어딘가 변해있다.
자칫...
마음이 닫히고 있을지도 모른다.

'명시 감상 4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가림... 석류  (0) 2012.08.17
김지유... 마라토너  (0) 2012.08.07
김선굉... 저것이 완성일까  (0) 2012.07.23
안도현... 개망초꽃  (0) 2012.06.20
마종기... 꽃의 이유  (0) 2012.06.15

저것이 완성일까


                              김선굉


지는 후박나무의 잎을 바라본다
아주 느리게 시간이 개입하고 있었다
잎은 천천히 떨어졌으며,
무슨 표정과도 같이,
마치 무슨 순교와도 같이,
몇 차례 의젓이 몸 뒤집으며
툭, 하고 떨어졌다
저것은 그러면 완성일까
어떤 완성일까
아니면 또 다른 완성으로 가고 있는 걸까
툭, 툭, 떨어져 쌓여 몸 뒤척이는
저 마른 잎들의 근심은
..................................................

산 날을 대충 계산해보려
40여년에 삼백예순날을 곱하니
일만오천일이 훌쩍 넘는다.


일일이 세기에도 버거운 깨알같이 많은 날 동안
온전히 무엇 하나 이룬 것이 없다.


다시 한 번 헤아려 봐야겠다.
무엇 하나 손에 쥐고 있는지.
무엇 하나 가슴에 남아 있는지.

'명시 감상 4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지유... 마라토너  (0) 2012.08.07
김선우... 애무의 저편  (0) 2012.08.02
안도현... 개망초꽃  (0) 2012.06.20
마종기... 꽃의 이유  (0) 2012.06.15
문태준... 짧은 낮잠  (0) 2012.06.13

http://afbbs.afreeca.com:8080/player.swf?uid=ilsankilim&nTitleNo=2354514

'잡동사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2016 송년정모 - OPPB  (0) 2016.11.30
2014년 브라질월드컵 조편성 결과  (0) 2013.12.09
EURO 2012 스페인 우승  (0) 2012.07.02
EURO 2012 이제는 8강 토너먼트  (0) 2012.06.20
EURO 2012 (2012. 6.9 ~7.2.)  (0) 2012.05.18

 (사진은 다음 페이지에서 옮김)

 

스페인이 유로 2008, 2010 독일 월드컵에 이어 UEFA EURO 2012에서도 우승하면서 

축구 메이져 대회 3회 연속 우승이라는 전대미문의 금자탑을 쌓았다.

이로써 스페인 축구는 '무적함대' 라는 수식이 명불허전임을 입증했다.

 

그들은 공격과 수비의 힘, 게임을 읽고 조율하고 새로운 플레이를 창조해내는 능력까지

모든 면에서 모든 상대팀을 능가했다.

주장이면서 스페인의 정신적 지주인 수문장 카시야스를 비롯해 최다골로 등점왕에 등극한 토레스,

중원을 지키는 환상의 조함 사비 와 이번 대회 MVP 수상자 이니에스타 등

셀 수 없이 많은 세계 최고의 기량을 보유한 선수들로 구성된 그들의 질주를 막을 팀은 당분간 없어 보인다.

그들의 힘을 하나로 융합하여 어마어마한 폭발력을 일으킨 장본인 델 보스케 감독의 능력 또한 눈부셨다.

유로 2012 대장정을 마치고 우승 트로피를 거머쥔 스페인 축구 대표팀에 박수를 보낸다.

'잡동사니'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4년 브라질월드컵 조편성 결과  (0) 2013.12.09
버스커 버스커 벚꽃엔딩...  (0) 2012.07.18
EURO 2012 이제는 8강 토너먼트  (0) 2012.06.20
EURO 2012 (2012. 6.9 ~7.2.)  (0) 2012.05.18
365일 탄생화와 꽃말  (0) 2010.12.02

'잡동사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버스커 버스커 벚꽃엔딩...  (0) 2012.07.18
EURO 2012 스페인 우승  (0) 2012.07.02
EURO 2012 (2012. 6.9 ~7.2.)  (0) 2012.05.18
365일 탄생화와 꽃말  (0) 2010.12.02
[스크랩] 정말 신기해서 퍼 왔습니다  (0) 2010.11.18

개망초꽃


                      안도현


눈치코치 없이 아무 데서나 피는 게 아니라
개망초꽃은
사람의 눈길이 닿아야 핀다.
이곳 저곳 널린 밥풀 같은 꽃이라고 하지만
개망초꽃을 개망초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 땅에 사는 동안
개망초꽃은 핀다.


더러는 바람에 누우리라
햇빛 받아 줄기가 시들기도 하리라
그 모습을 늦여름 한때
눈물 지으며 바라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이 세상 한쪽이 얼마나 쓸쓸하겠는가
훗날 그 보잘것없이 자잘하고 하얀 것이
어느 들길에 무더기 무더기로 돋아난다 한들
누가 그것을 개망초꽃이라 부르겠는가
.............................................................

몇 달째 가뭄이 계속되고 있다.
이제 더는 버티지 못한 이곳 저곳에서 가뭄의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사실, 어리석은 우리는 가까이 있는 것의 고마움을 늘상 잊고 산다.
물도 그러하고, 공기도 그러하며, 햇빛도 그러하고, 음식도 그러하다.
만약 이것들이 없다면 불과 며칠도 버티지 못할 게 뻔한데...


우리는 사랑 없이 살 수 있다.
하지만 사랑 없는 세상에선 살 수 없다.
세상 만물이
누구에게나 다 필요한 것은 아닐지 모르나
필요없는 것은 세상에 하나도 없다.

'명시 감상 4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선우... 애무의 저편  (0) 2012.08.02
김선굉... 저것이 완성일까  (0) 2012.07.23
마종기... 꽃의 이유  (0) 2012.06.15
문태준... 짧은 낮잠  (0) 2012.06.13
김남조... 빗물같은 정을 주리라  (0) 2012.05.3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