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것이 완성일까


                              김선굉


지는 후박나무의 잎을 바라본다
아주 느리게 시간이 개입하고 있었다
잎은 천천히 떨어졌으며,
무슨 표정과도 같이,
마치 무슨 순교와도 같이,
몇 차례 의젓이 몸 뒤집으며
툭, 하고 떨어졌다
저것은 그러면 완성일까
어떤 완성일까
아니면 또 다른 완성으로 가고 있는 걸까
툭, 툭, 떨어져 쌓여 몸 뒤척이는
저 마른 잎들의 근심은
..................................................

산 날을 대충 계산해보려
40여년에 삼백예순날을 곱하니
일만오천일이 훌쩍 넘는다.


일일이 세기에도 버거운 깨알같이 많은 날 동안
온전히 무엇 하나 이룬 것이 없다.


다시 한 번 헤아려 봐야겠다.
무엇 하나 손에 쥐고 있는지.
무엇 하나 가슴에 남아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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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독

 

                김선굉


바람이 나를 스쳐만 간다

내 가슴은 불어주지 않고

건드려도 아프지 않은

머리칼이나 여름옷 따위

내 가슴은 불어주지 않고

푸른 들판을 구비구비

어루만지듯 불고 있다.

...............................................

오늘 유난히 바람이 많이 부는 날

이런 날이면 이 시가

그리고, 바람이 생각납니다.

 

고독한 것이 나일까

아니면 부는 바람일까...

시리디 시린 내 가슴을

혹시 불까봐

덜컥 겁이 납니다...

그리움의 시 

                                    

                             김선굉   

 

널 위하여 한 채의 섬을 사고 싶었다.
파도에 흰 발목을 묻을 수 있는
해안이 낮은 섬을 사고 싶었다.
널 위하여 오늘은 눈이 내리고,
그 속을 내가 걷고 있다.

옛날엔 내 어깨가 아름다워서
흰 달빛을 무겁게 얹을 수 있었고,
머리채에 푸른 바람을 잉잉 머물게 할 수도 있었다.
온 몸으로 눈을 받으며 눈길을 걷는 것은
참 쉬운 일이었다.

마른 풀잎과 잔 가지에 내리는 눈발을 보며,
나는 지금 서툴게 걷고 있다.
흰 눈 속에서 홀로 붉고 붉어서,
부끄러워라,
천천히 멈추어 서서 천천히 눈을 감는다.

잠시 후, 눈이 그치면 금오산은
한 채의 희디 흰 섬으로 떠오를 것이고,
내 눈은 아름다운 섬을 아름답게 볼 수 있으리라.
그걸 네게 주겠다.
아아, 너무 작은 내가
너무 큰 그리움을 너에게 주리라.


아리랑

 

                                       김선굉

 

이건 너무 큰 그리움이다.
우리의 가슴엔 무시로 장고 소리가
설장고 소리가 둥두둥 울려오고 있는 게 아니냐.
참 많은 고개를 넘어 또 아득한 세상.
하늘은 너무 푸르러 슬펐고
때로는 낮은 땅으로 내려와 저만치
강물이 구비구비
흘러가고 있었다.
끝이 없겠구나 이렇게 자꾸 흐르다 보면
무궁하겠구나. 그렇겠구나.
흰 옷에 붉게 배이던 소리없는 아픔을 어루만지며
바람은 넘실 끝이 없고
끝이 없겠구나. 그렇겠구나
참 많은 그리움과 참 많은 안타까움과 참 많은 설레임과 참 많은 아픔과 흰 몸과 붉은 마음이
아! 작은 가슴에 너무 많이
흐르고 있다.
걸어가자. 고개 마루나 강가에서
이 뜨거운 흙에 앉아 잠시 쉬기도 하며.
몸보다 먼저 마음이
어느날은 어쩌면 마음보다 먼저 몸이
푸르게 흐를 수도 있으리라.
은통 우리 몸이 귀가 되어 귀 기울이면 들려오리라.
이건 참 너무 큰 그리움이다
우리의 가슴엔 무시로 장고 소리가
설장고 소리가 둥두둥
울려오고 있는 게 아니냐.

.......................................................................................

정신을 차릴 겨를도 없이 4월이 다 지나갔습니다.
꽃잔치 구경도 제대로 못하고 아쉽게 4월이 갑니다.
남녘에는 배꽃이 한창이더군요.
이곳도 5월 초순이면 흰 배꽃이 배밭 가득 펼쳐질겝니다.


배 꽃밭을 떠올리니 벌써 두근거리네요^.^
넘실넘실한 그리움의 시인 김선굉 시인의 시입니다.
'굉' 자가 무척 낯설지만 한자(漢字)는 간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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