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김재진


남아 있는 시간은 얼마일까
아프지 않고
마음 졸이지도 않고
슬프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온다던 소식 오지 않고 고지서만 쌓이는 날
배고픈 우체통이
온종일 입 벌리고 빨갛게 서 있는 날
길에 나가 벌 받는 사람처럼 그대를 기다리네
미워하지 않고 성내지 않고
외롭지 않고 지치지 않고
웃을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까닭 없이 자꾸자꾸 눈물만 흐르는 밤
길에 서서 허염없이 하늘만 쳐다보네
걸을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 따뜻한
사랑할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

불과 며칠 새, 밤 기온이 뚝 떨어졌습니다.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는 느낌...


어젯밤에 친구와 늦은 새벽까지 술잔을 기울였지요.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바로 지금 이 순간 - 무엇보다 편안하고 즐거워야할 -
조차 즐기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별 것도 아닌 주변 잡다한 이야기들과
아무 것도 아닌 쓸데없는 세상 걱정에...
이제 내 생에 다시 없을지도 모르는 이 소중한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우리에게
마주 앉아 이렇게 술잔 기울이며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날이,
지난 일 얘기 하며 웃을 수 있는 날이,
바라만봐도 좋은 사랑을 할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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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김재진


믿었던 사람의 등을 보거나
사랑하는 이의 무관심에 다친 마음 펴지지 않을 때
섭섭함 버리고 이 말을 생각해보라.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두번이나 세 번, 아니 그 이상으로 몇 번쯤 더 그렇게
마음속으로 중얼거려 보라.
실제로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지금 사랑에 빠져 있거나 설령
심지 굳은 누군가 함께 있다 해도 다 허상일뿐
완전한 반려란 없다.
겨울을 뚫고 핀 개나리의 샛노랑이 우리 눈을 끌듯
한때의 초록이 들판을 물들이듯
그렇듯 순간일뿐
청춘이 영원하지 않은 것처럼
그 무엇도 완전히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이란 없다.


함께 한다는 건 이해한다는 말
그러나 누가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
얼마쯤 쓸쓸하거나 아니면 서러운 마음이
짠 소금물처럼 내밀한 가슴 속살을 저며 놓는다 해도
수긍해야 할 일.
어차피 수긍할 수 밖에 없는 일.
상투적으로 말해 삶이란 그런 것.
인생이란 다 그런것.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러나 혼자가 주는 텅 빔,
텅 빈 것의 그 가득한 여운
그것을 사랑하라.
숭숭 구멍 뚫린 천장을 통해 바라뵈는 밤하늘 같은
투명한 슬픔 같은
혼자만의 시간에 길들라.
별들은
멀고 먼 거리, 시간이라 할 수 없는 수많은 세월 넘어
저 홀로 반짝이고 있지 않은 가.
반짝이는 것은 그렇듯 혼자다.


가을날 길을 묻는 나그네처럼, 텅 빈 수숫대처럼
온몸에 바람소릴 챙겨 넣고
떠나라.
..........................................................................

언제 어디서나 항상 변함없이 위안이 되고 위로가 되는
마음 따뜻한 이가 곁에 있으면 좋겠지요.
그런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은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늘 혼자여야만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의 본질이기에
우리가 느끼는 고독, 외로움은 언제나 자신의 몫이됩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 겠지요.

시인의 말처럼 찻잔처럼 따뜻하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그런 그리움, 외로움이면 좋겠습니다.

 

너를 만나고 싶다

 

                                   김재진


나를 이해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사소한 습관이나 잦은 실수
쉬 다치기 쉬운 내 자존심을 용납하는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직설적으로 내뱉고선 이내 후회하는
내 급한 성격을 받아들이는
그런 사람과 만나고 싶다.

스스로 그어 둔 금 속에서 고정된 채
시멘트처럼 굳었거나 대리석처럼 반들거리며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사람들 헤치고
너를 만나고 싶다

입꼬리 말려 올라가는 미소 하나로
모든 걸 녹여버리는
그런 사람.

가뭇한 기억 더듬어 너를 찾는다
스치던 손가락의 감촉은 어디 갔나
다친 시간을 어루만지는
밝고 따사롭던 그 햇살.
이제 너를 만나고 싶다

막무가내의 고집과 시퍼런 질투
때로 타오르는 증오에 불길처럼 이글거리는
내 못된 인간을 용납하는 사람

덫에 치여 비틀거리거나
어린아이처럼 꺼이꺼이 울기도 하는
내 어리석음 그윽하게 바라보는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내 살아가는 방식을 송두리째 이해하는
너를 만나고 싶다.

.....................................................................

사람을 만난다는 것,
그것도 서로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
그것은 아마도 생의 행운일 것입니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지요.
그런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서로 마주치기 어려워서이고,

그런 사람이 드물어서가 아니라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게 어려워서일 것입니다.

욕심이겠지요? 그런 사람을 기다리는 것.
거짓이겠지요? 송두리째 이해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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