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병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 터에
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일 때에
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정감에 그득찬 계절,
슬픔과 기쁨의 주일,
알고 모르고 잊고

 

하는 사이에 새여 너는
낡은 목청을 뽑아라.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

대면도 못해 본 시아버지 제사 마흔 여덟 해,
살았을 적 차라리 없는 게 나았던 지아비 제사 스무해 남짓,

어느새
옛부터 드물다는 나이를 맞은 어머니,
이만하면 할만큼 했다고
제사상 물려 놓고 돌아앉아 울고 또 우셨다.


그날,

홍역 앓듯 고열로 밤새 시달리던 날

새벽녘 꿈 길에
지친 기색의 아버지가 안개를 털고 들어섰다.


'아들아, 볼 면목이 없어 돌아간데이.
다시 아비와 아들로 다시 만날수만 있다믄 좋겠구마. 부탁한데이...'


내키지 않는 손을 내밀려다 굴러 떨어지듯 잠을 깼다.
차마 할 수 없었던 대답이 계속 입안에서만 까끄럽게 맴돌았다.


살아서는 알지 못하던 일
살아서는 하지 못하던 일을
죽어서는 알 수 있고
죽어서는 할 수 있을까?


그 날따라 새벽안개가 자욱하게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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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복

 

잠든 잎새들을 가만히 흔들어봅니다 처음 당신이 나의 마음을 흔들었던 날처럼 깨어난 잎새들은 다시 잠들고 싶어합니다 나도 잎새들을 따라 잠들고 싶습니다 잎새들의 잠 속에서 지친 당신의 날개를 가려주고 싶습니다 그러다가 눈을 뜨면 깃을 치며 날아가는 당신의 모습이 보이겠지요 처음 당신이 나의 마음을 흔들었던 날처럼 잎새들은 몹시 떨리겠지요
..................................................................................................

잠시
시 한 편을 읽는 일이
네게 위안이 되길...


그리고 잠시
한 장의 사진을 보는 일이
네게 평안이 되길...


내 바라는 것
그것 뿐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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