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윤희상


화가는
바람을 그리기 위해
바람을 그리지 않고
바람에 뒤척거리는 수선화를 그렸다
바람에는 붓도 닿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어떤 사람들은
그곳에서 바람은 보지 않고
수선화만 보고 갔다
화가가 나서서
탓할 일이 아니었다

......................................................................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을 갖고 있다면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목소리로, 손가락으로, 몸으로, 붓으로...


노래를 못하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림을 못 그리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춤을 못 추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잘 하기가 어려운 게다.
정말 잘 하기란 어려운 게다.


더구나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는 것,
그것을 고스란히 누군가에게 전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게다.

'명시 감상 4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석진... 갈대꽃  (0) 2011.09.23
김춘수... 가을 저녁의 시  (0) 2011.09.16
김남조... 가고 오지 않는 사람   (0) 2011.09.01
류시화... 여행자을 위한 서시  (0) 2011.08.26
김지유... 좌욕  (0) 2011.08.22

마흔 살의 독서


                          윤희상


행과 행 사이에서
잠시, 스산한 마음을 놓쳤다
어쩌면 살아갈 날들이
살아온 날들보다 많지 않으리라


지금 읽는 책을
언제 또 다시 읽을 수 있을까


이제부터 읽는 책들은 이별이다

.........................................................

오늘, 한 권의 책을 보다가 문득

내가 이 책을 다시 볼까 싶었다.

이사를 하는데 책을 자그마치 일곱상자나 내다 버렸다.

다시는 볼 일이 없는 책이라서가 아니고

그동안 다시 본 일이 없는 책이었기 때문이었다.

 

친구와 이런 저런 수다를 주고 받다가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살자하기에

참 좋은 얘기인 것 같긴 했다.

삶을 대하는 자세로 보면 얼마나 훌륭한 일인가?


어쩌면 오늘을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는

내일이 올지 안올지를 몰라서 아니라

그동안 내일을 생각해보지 못해서 아닐까?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