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7080통기타라이브공간"스페이스"
글쓴이 : 공간지기 원글보기
메모 :



출처 : 7080통기타라이브공간"스페이스"
글쓴이 : 공간지기 원글보기
메모 :

효에게.2002.겨울


                                한강  

      
바다가 나한테 오지 않았어.
겁먹은 얼굴로
아이가 말했다
밀려오길래, 먼 데서부터
밀려오길래
우리를 덮고도 계속
차오르기만 한 줄 알았나보다


바다가 너한테 오지 않았니
하지만 다시 밀려들기 시작할 땐
다시 끝없을 것처럼 느껴지겠지
내 다리를 끌어안고 다시 뒤로 숨겠지
마치 내가
그 어떤 것,
바다로부터조차 널
지켜줄 수 있는 것처럼


기침이 깊어
먹은 것을 토해내며
눈물을 흘리며
엄마, 엄마를 부르던 것처럼
마치 나에게
그걸 멈춰줄 힘이 있는 듯이


하지만 곧
너도 알게 되겠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억하는 일뿐이란 걸
저 번쩍이는 거대한 흐름과
시간과
成長,
집요하게 사라지고
새로 태어나는 것들 앞에
우리가 함께 있었다는 걸


색색의 알 같은 순간들을
함께 품었던 시절의 은밀함을
처음부터 모래로 지은
이 몸에 새겨두는 일뿐인 걸

 
괜찮아
아직 바다는
우리에게 오지 않으니까
우리를 쓸어가기 전까지
우린 이렇게 나란히 서 있을 테니까
흰 돌과 조개껍질을 더 주울 테니까
파도에 젖은 신발을 말릴 테니까
까끌거리는 모래를 털며
때로는
주저앉아 더러운 손으로
눈을 훔치기도 하며
........................................................................

어느 해 겨울,
힘들었는데, 정말 힘들었는데...
이미 얼음장이 된 방은
추웠는데, 정말 추웠는데...


두개골 속이 아프도록 계속된 기침과
등골이 오싹하도록 식은 땀에 흠뻑 젖어버린 지난 밤의 잠자리
밤새 뒤척이던 시간 내내
떠오른 수많은 지난 시간의 기억이라는 게
겨우 기억해낸 지난 시간이라는 게
영하 16도의 한기가 가득한
한 겨울 동트기 전보다 춥고 메마르고 어둡다.


살짝 얼어붙은 눈두덩을 겨우 꿈적거리며
좀처럼 말을 듣지 않는 팔을 겨우 휘적여
서걱서걱 언 잠을 겨우 털어낸다.


그래,
그 겨울,
힘들었는데, 정말 힘들었는데...
추웠는데, 정말 추웠는데...

'명시 감상 6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이정... 어느 해거름  (0) 2016.04.06
길상호... 나무의 결을 더듬다  (0) 2016.02.04
함동선... 간이역 1   (0) 2015.12.09
강영은... 촛불  (0) 2015.10.07
공광규... 미안하다, 수캐   (0) 2015.07.20

 

 

출처 : 용산취미밴드
글쓴이 : 타공 원글보기
메모 :

 

 

출처 : 용산취미밴드
글쓴이 : 타공 원글보기
메모 :

 

 

출처 : 용산취미밴드
글쓴이 : 타공 원글보기
메모 :

 

 

출처 : 용산취미밴드
글쓴이 : 타공 원글보기
메모 : Heartache Tonight

간이역 1


                   함동선


산으로 겹겹이 싸인 간이역
하루에 몇 번 기차가 지나가면 그 뿐
밭둑의 민들레꽃도
산길의 딱정벌레도 그 자리에 잠이 든다
양지바른 절터엔
얼굴이 좀 얽은 돌부처가
서 있다
산그늘이 가로 긋는 오후 3시
막차 시간이 돼가는가
잠자리 한 마리가 날아온다
구름과 바람과 세월 속에
무게를 느낄 수 없는 시간이
이 산골엔
이미 정해진 것처럼
새가 날아가는 쪽으로 해가 진다
..........................................................

큰기러기 세마리 날아올랐다.
어미 둘에 새끼 하나.


각기 다른 날갯짓은 허공을 바삐 휘젓는다.
어수선하고 서툴게 보이는 그들의 날갯짓은
어느 순간 바람을 올라 타고는
하늘로 고요히 날아오른다.


물빛이 반짝 하늘에 비치고
그들의 교감은 비행의 거리와 고도를
자연스레 맞춘다.
눈물이 반짝 호수에 번지고
그들의 비행궤도에 주파수를 맞춰보려
눈을 감는다.


한 번도 날아 오른 적이 없었던 지난 시간에
반쯤 먹은 한쪽 귀를 기울인다.
이미 깊게 패인
미간의 주름을 찡긋...


멀어져 가는 큰기러기 세마리
허공을 가르는
어떤 소리도 자취도 없다.


순간 호숫가엔 소슬바람이 고요히
돌고
또 돌고...

'명시 감상 6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길상호... 나무의 결을 더듬다  (0) 2016.02.04
한강... 효에게.2002.겨울  (0) 2016.02.02
강영은... 촛불  (0) 2015.10.07
공광규... 미안하다, 수캐   (0) 2015.07.20
송수권... 여자(女子)  (0) 2015.06.1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