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에게.2002.겨울
한강
바다가 나한테 오지 않았어.
겁먹은 얼굴로
아이가 말했다
밀려오길래, 먼 데서부터
밀려오길래
우리를 덮고도 계속
차오르기만 한 줄 알았나보다
바다가 너한테 오지 않았니
하지만 다시 밀려들기 시작할 땐
다시 끝없을 것처럼 느껴지겠지
내 다리를 끌어안고 다시 뒤로 숨겠지
마치 내가
그 어떤 것,
바다로부터조차 널
지켜줄 수 있는 것처럼
기침이 깊어
먹은 것을 토해내며
눈물을 흘리며
엄마, 엄마를 부르던 것처럼
마치 나에게
그걸 멈춰줄 힘이 있는 듯이
하지만 곧
너도 알게 되겠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억하는 일뿐이란 걸
저 번쩍이는 거대한 흐름과
시간과
成長,
집요하게 사라지고
새로 태어나는 것들 앞에
우리가 함께 있었다는 걸
색색의 알 같은 순간들을
함께 품었던 시절의 은밀함을
처음부터 모래로 지은
이 몸에 새겨두는 일뿐인 걸
괜찮아
아직 바다는
우리에게 오지 않으니까
우리를 쓸어가기 전까지
우린 이렇게 나란히 서 있을 테니까
흰 돌과 조개껍질을 더 주울 테니까
파도에 젖은 신발을 말릴 테니까
까끌거리는 모래를 털며
때로는
주저앉아 더러운 손으로
눈을 훔치기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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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 겨울,
힘들었는데, 정말 힘들었는데...
이미 얼음장이 된 방은
추웠는데, 정말 추웠는데...
두개골 속이 아프도록 계속된 기침과
등골이 오싹하도록 식은 땀에 흠뻑 젖어버린 지난 밤의 잠자리
밤새 뒤척이던 시간 내내
떠오른 수많은 지난 시간의 기억이라는 게
겨우 기억해낸 지난 시간이라는 게
영하 16도의 한기가 가득한
한 겨울 동트기 전보다 춥고 메마르고 어둡다.
살짝 얼어붙은 눈두덩을 겨우 꿈적거리며
좀처럼 말을 듣지 않는 팔을 겨우 휘적여
서걱서걱 언 잠을 겨우 털어낸다.
그래,
그 겨울,
힘들었는데, 정말 힘들었는데...
추웠는데, 정말 추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