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가슴에도


                        이성자


축구를 하다가 넘어졌는데
의사 선생님이
오른쪽 엄지발가락에 금이 갔대.


무서워서 벌벌 떨고 있는데
-괜찮아, 괜찮아!
엄마가 위로해주었어.


한밤중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우리 딸, 얼마나 아팠을까?
엄마가 깁스 한 내 발가락에
입을 맞추며 눈물 그렁그렁


보이지 않지만
엄마의 가슴에도
천 갈래 만 갈래 금이 간 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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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우젓 사러 광천에 가서


                                        정희성


주일날 새우젓 사러 광천에 갔다가
미사 끝나고 신부님한테 인사를 하니
신부님이 먼저 알고, 예까지 젓 사러 왔냐고
우리 성당 자매님들 젓 좀 팔아주라고
우리가 기뻐 대답하기를, 그러마고
어느 자매님 젓이 제일 맛있냐고
신부님이 뒤통수를 긁으며
글쎄 내가 자매님들 젓을 다 먹어봤겠느냐고
우리가 공연히 얼굴을 붉히며
그도 그렇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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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져 본 사람은


                           이준관

 
넘어져 본 사람은 안다.
넘어져서 무릎에
빨갛게 피 맺혀 본 사람은 안다.
땅에는 돌이 박혀 있다고
마음에도 돌이 박혀 있다고
그 박힌 돌이 넘어지게 한다고.

 
그러나 넘어져 본 사람은 안다.
넘어져서 가슴에
푸른 멍이 들어 본 사람은 안다.
땅에 박힌 돌부리
가슴에 박힌 돌부리를
붙잡고 일어서야 한다고
그 박힌 돌부리가 일어서게 한다고
................................................
 

널 응원한다.

아무런 이해도,
이유도, 목적도 없다.
어떤 상황이든
무조건 네 편이 되는 것
그게 응원이더라.

난 언제나 네 편이고
늘 너를 응원할 게.

화이팅!!!

서서 자는 말


                     정진규
 
내 아들은 유도(柔道)를 배우고 있다
이태 동안 넘어지는 것만
배웠다고 했다
낙법(落法)만 배웠다고 했다
넘어지는 것을 배우다니!
네가 넘어지는 것을
배우는 이태 동안
나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살았다
한 번 넘어지면 그뿐
일어설 수 없다고
세상이 가르쳐주었기 때문이다
잠들어도 눕지 못했다
나는 서서 자는 말
아들아 아들아 부끄럽구나
흐르는 물은
벼랑에서도 뛰어내린다
밤마다 꿈을 꾸지만
애비는 서서 자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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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오는 날


                    곽재구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하늘의 별을
몇 섬이고 따올 수 있지


노래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새들이 꾸는 겨울꿈 같은 건
신비하지도 않아


첫눈 오는 날
당산 전철역 계단 위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들
가슴속에 촛불 하나씩 켜 들고
허공 속으로 지친 발걸음 옮기는 사람들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다닥다닥 뒤엉킨 이웃들의 슬픔 새로
순금빛 강물 하나 흐른다네


노래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이 세상 모든 고통의 알몸들이
사과꽃 향기를 날린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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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할아버지


                           곽해룡

 
성탄절 새벽에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들고 찾아왔다

산타 할아버지,
저는 운 적도 있고
거짓말을 한 적도 있는데
왜 선물을 주세요?

나도 거짓말을 하고
때로는 울기도 한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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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여뀌


                       이성자


맵기로 소문난 여뀌들중에
맵지않은 여뀌 하나 살아
친구들이 아무리 놀려도
바보처럼 웃기만 하는 걸
왕거미가 기웃거리고
소들은 살짝 입맞춤하고
바보라서 산 속 친구들이
다 좋아하는 꽃 되었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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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춤춘다


              김이듬


나는 춤춘다
춤추기 시작했어요
파도가 파고드는 검은 모래 위에서
아름다운 눈발은 전조였죠
폭우 속에서


우선 가슴을 옮깁니다. 마음이 아니라 말캉하고 뾰족한
바로 그 젖가슴 말입니다.
사람들은 항상 너무 일찍 감정을 가지죠. 다음으로
들린 발을 뒤로 보내는 겁니다.


뒷걸음질이 중요합니다 나는 아직 스텝을 다 알지 못하고
몸을 잘 가눌 줄도 몰라요
내 몸은 내가 지탱해야 합니다 허벅지와 허벅지가 스치도록
발꿈치와 발꿈치가 스치도록 이동할 겁니다
모래에 뒤꿈치를 묻은 채 서있지는 않을 거예요 멈춤과 정적을 좋아하지만
추종하지는 않아요 무한을 봐요 파도가 회오리 치는


수평선 너머에 시선을 두는 겁니다 눈을 내리깔지 마세요
당신이 오른쪽으로 움직일 때
나는 왼쪽으로 갑니다
당신이 당신 편에서 동쪽으로 갈 때 나는 나의 서편으로 심장을 밀고 가요


가슴 맞대고 춤추는 겁니다
마주보지만 얼굴을 살피지는 말자는 겁니다
바다 바깥으로 해변 밖으로 나가라는 방송이 거듭될수록
서로의 어깨 깊숙이 손바닥을 붙이는 겁니다


이곳에 살기 위하여
피하고 흥분하고 싸우기도 하듯이
나는 춤추겠다는 겁니다
눈 감고 리듬을 느껴봅니다


당신이라는 유령, 다가오는 죽음을 인정하고 포용하면서
매순간 나를 석방합니다
나는 춤을 춥니다
뒤로 가는 것처럼 보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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