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시를 쓰는 건


                            조병화


내가 시를 쓰는 건
나를 버리기 위해서다
나를 떠나기 위해서다
나와 작별을 하기 위해서다


하나를 쓰고 그만큼
둘을 쓰고 그만큼
셋을 쓰고 그만큼
나를 버리기 위해서다


너에게 편질 쓰는 건
언젠가 돌아올 너와 나의 이별
그것을 위해서
너를 버리기 위해서다
너를 떠나기 위해서다
너와 작별을 하기 위해서다


아무렇게나 버리기엔 너무나 공허한 세상
소리없이 떠나기엔 너무나 쓸쓸한 우리
그냥 작별하기엔 너무나 깊은 인연


내가 시를 쓰는 건
하나 하나 나를 버리기 위해서다
하나 하나 나를 떠나기 위해서다
하나 하나 나를 잊기 위해서다


그와 같이
내가 네게 편질 쓰는 건
머지않아 다가올 너와 나의 마지막
그 이별
그걸 위하여


하나 하나 너를 버리기 위해서다
하나 하나 너를 떠나기 위해서다
하나 하나 너를 잊기 위해서다.
..........................................................

시인은 사랑을 노래하는 이다.
시인은 마음을 노래하는 이다.
시인은 삶을 노래하는 이다.
시인은 세상을 노래하는 이다.


입하나 뻥끗 않고 노래하는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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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하다는 것은


                       조병화


고독하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소망이 남아 있다는 거다
소망이 남아있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삶이 남아 있다는 거다
삶이 남아 있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거다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 아직도
너를 가지고 있다는 거다


이렇게 저렇게 생각을 해보아도
어린 시절의 마당보다 좁은
이 세상
인간의 자리
부질 없는 자리


가리울 곳 없는
회오리 들판


아 고독하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소망이 남아 있다는 거다
소망이 남아 있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삶이 남아 있다는 거다
삶이 남아 있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거다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곳에
아직도 너를 가지고 있다는 거다
.......................................................................

 

곁에 없어도


                      조병화


길을 다하여 먼 날
우리 서로 같이 있지 못해도
그 눈 나를 찾으면
그 속에 내가 있으리


목숨 다하여 먼 날
우리 서로 같이 있지 못해도
그 생각 나를 찾으면
그 속에 내가 있으리

.............................................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어.
세월이 흘러가면 모두가 변하지.


그 사람의 모습이 그렇고
그 사람의 주변이 그렇고
그 사람의 모든 것이 그렇고
그 사람 또한 그러하지.


단 하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지.
아니, 어쩌면 제발 변하지 않았으면 하지.


내 진심으로 그 사람에게 전했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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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사람이 있다는 것은


                                   조병화


살아가면서 언제나
그리운 사람이 있다는 것은
내일이 어려서 기쁘리


살아가면서 언제나
그리운 사람이 있다는 것은
오늘이 지루하지 않아서 기쁘리


살아가면서, 언제나
그리운 사람이 있다는 것은
늙어가는 것을 늦춰서 기쁘리


이러다가 언젠가는 내가 먼저 떠나
이 세상에서는 만나지 못하더라도
그것으로 얼마나 행복하리


아, 그리운 사람이 있다는 것은
날이 가고 날이 오는 먼 세월이
그리움으로 곱게 나를 이끌어 가면서
다하지 못한 외로움이 훈훈한 바람이 되려니
얼마나 허전한 고마운 사랑이런가

...........................................................................

살아있으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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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海印寺)


                        조병화


큰 절에 사나
작은 절에 사나
믿음은 하나


큰 집에 사나
작은 집에 사나
사람은 하나
...................................................................

세상의 모든 생명들은 그 자체가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원본이면서 말 그대로 유일본이다.

그러기에 모든 생명들은 작든 크든, 천하든 귀하든 간에 생명이라는 점에서

서로 평등하며, 평등해야 마땅한 것이다.

- 김재홍 문학평론가, 경희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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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共存)의 이유


                               조병화


깊이 사랑하지 않도록 합시다.
우리의 인생이 그러하듯이
헤어짐이 잦은 우리들의 세대
가벼운 눈웃음을
나눌 정도로
지내기로 합시다.
우리의 웃음마저 짐이 된다면
그때 헤어집시다.
어려운 말로 이야기하지
않도록 합시다.
당신을 생각하는 나를
얘기할 수 없음으로 인해
내가 어디쯤에 간다는 것을 보일 수 없으며
언젠가 우리가  헤어져야 할 날이 오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 사랑합시다
우리 앞에 서글픈  그날이 오면
가벼운 눈 웃음과 잊어도 좋을 악수를 합시다.

...................................................................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마음 내키는 대로 되지 않아서
그 무게를 덜려고 덜어지지도 않고
더하려 해도 더해지지 못한다.


젊은 날, 소나기처럼 지나간
열정이 조금 가라앉을 때쯤
이 시를 읽으며 얼마나 마음아팠던지...


둘만의 추억이 창틀 먼지만큼이나 겨우 쌓인
길모퉁이 어느 카페에서
잘 살라는 인사를 어설프게 던져두고
돌아서면서 얼마나 가슴시렸던지...

 

작은 들꽃 34


                              조병화


사랑스러운 작은 들꽃아,
내가 지금 짊어지고 있는
이 이승의 짐 중에서
가장 무거운 짐이 사랑이로구나
가장 소중한 짐이 사랑이로구나
내려놓을 수 없는 것이 사랑이로구나.


사랑스러운 작은 들꽃아,
나는 지금 이곳, 이 자리까지
눈에 보이는 짐은 버리고 왔건만
내려놓을 수 없는 짐 하나가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이로구나.


사랑스러운 작은 들꽃아,
그런데 사랑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나누는 짐이란다
가장 외로운 사람들이 나누는 짐이란다
가장 쓸쓸한 사람들이 나누는 짐이란다
서로 소리 나지 않게 주며 받으며
서로 멀리 이어 가는 가벼우면서도
가장 무거운 짐이란다.


그런데 사랑스러운 작은 들꽃아,
사랑은 소유가 아니란다
사랑은 혼자 갖는 것이 아니란다
사랑은 강요해서는 안 되는 것이란다
사랑은 그저 사랑하는 것이란다.


사랑스러운 작은 들꽃아,
사랑은 영원히 갖고 싶어진단다
사랑은 혼자만이 갖고 싶어진단다.


그러나 사랑스러운 작은 들꽃아,
사랑은 사랑함으로써 행복해야 한단다
사랑은 사랑받음으로써 행복해야 한단다.


아, 사랑은 사랑으로 행복해야 한단다.

........................................................

 

사랑은 사랑으로 행복해야 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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