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꽃

 

                        김영태

 

과꽃이 무슨 기억처럼 피어있지

누구나 기억처럼

세상에 왔다가 가지

 

조금 울다 가버리지

옛날같이 언제나 옛날에는

빈 하늘 한 장이 높이 걸려있었지

.........................................................................

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 ~ 꽃밭 가득 예쁘게 피었습니다....

누나는 과꽃을 좋아했지요. ~ 꽃이 피면 꽃밭에서 아주 살았죠....

 

참, 예쁜 노랫말로 기억되는 노래다.

 

들녘 밭둑에 핀 봉숭아, 하늘 하늘 흔들리는 코스모스

담장 밑에 오골오골 피어난 채송화 무리

담장 너머 늘어진 능소화...

 

기억속에 남은 시간은 모두 옛날인데

막상 옛날에 어땠는지 생각해 보니, 도무지 제대로 기억이 나는 것이 없다.

그저 느낌만 막연히 남아서, 파란 하늘 흩어진 하얀 구름 사이로

슬프도록 아름답게 널려있다.

 길

 

                                김기림


나의 소년시절은 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 빛에 호져 때없이 그 길을 넘어
강가로 내려갔다가도 노을에 함북 자주빛으로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


그 강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 번 댕겨갔다.
가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과 그러고 어두운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난지를 모른다는 동구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애 멍하니 기다려 본다.
그러면 어느새 어둠이 기어와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 준다.

...............................................................

 

삶도 죽음도 자연의 한조각일뿐인 것...

만남도 그리고 헤어짐도 그저

집어들었다 놓은 조약돌 같은 것...

흐르는 시간도, 흘러간 옛 이야기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고

마냥 흘러가버려서 매양 잊혀지는 것...

잠시도 서서 쉴 곳 없는 삶의 길을 하염없이 걷다가

저 모퉁이를 돌면 멈춰질까 싶어

또 걷다보면 이어지고 또 그렇게 흘러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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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혼을 생각해보지 않은 부부가 어디 있으랴


하루라도 보지 않으면 못 살 것 같던 날들이 흘러가고
고민하던 사랑의 고백과 열정도 모두 식어가고
일상의 반복되는 습관에 의해 사랑을 말하면서 살아갑니다.


근사해 보이는 다른 부부들을 보면서
때로는 후회하고 때로는 옛사랑을 생각하면서
관습에 충실한 여자가 현모양처고
돈 많이 벌어오는 남자가 능력있는 남자라고
누가 정해 놓았는지
서로 그들에 맞춰지지 않는 상대방을 못마땅해하고
자신을 괴로워하면서 살아갑니다.


다른 사람을 만나 사랑하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 귀찮고 번거롭고
어느새 마음도 몸도 늙어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습니다.


헤어지자 작정하고 아이들에게
누구하고 살 거냐고 물어보면
열 번 모두 엄마 아빠랑 같이 살겠다는
아이들 때문에 눈물짓고


비싼 옷 입고 주렁주렁 보석 달고 나타나는 친구
비싼 차와 풍광 좋은 별장 갖고 명함 내미는 친구
그들을 생각하면 왠지 모를 허탈감에 살아갑니다.


앞으로 까마득한 날 흘러가도 융자받은 돈 갚기 바빠
내 집 마련 멀 것 같고 한숨 푹푹 쉬며 애고 내 팔자야 노래를 불러도
열감기라도 호되게 앓다보면 빗길에 달려가 약 사오는 사람은
그래도 지겨운 아내, 지겨운 남편인 걸....


가난해도 좋으니 저 사람 옆에 살게 해달라고 빌었던 날들이 있었기에...
하루를 살고 헤어져도 저 사람의 배필되게 해달라고 빌었던 날들이 있었기에...
시든 꽃 한송이 굳은 케잌 한 조각에 대한 추억이 있었기에...
첫 아이 낳던 날, 함께 흘리던 눈물이 있었기에...
부모 상 같이 치르고 무덤속에서도 같이 눕자고 말하던 날들이 있었기에...
헤어짐을 꿈꾸지 않아도 결국 죽음에 의해 헤어질 수밖에 없는 날이 있을 것이기에...
오늘도 이렇게 살아갑니다.


어느 햇살 좋은 날
드문드문 돋기 시작한 하얀 머리카락을 바라보다
다가가 살며시 말하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그래도 너밖에 없노라고...
그래도 너밖에 없노라고...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살아갑니다.

 

 - 엔도슈사쿠의 인생론 '회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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