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물


             나기철


세수를 했는데
잊고
또 세수물을 받았다


물을 내리며
두 손을 깍지 낀다


잘못했습니다
용서하세요
...........................................................................

무심코 별 것 아니라고 돌아섰던 일이
느티나뭇가지에 걸려버린 연처럼
내내 마음에 걸려 있어


돌아오는 길
발걸음도 무겁고


괜시리 쳐다 본 하늘
너무 맑고 푸르다.


그래...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는데...
그저 놓아 주면 그만이었는데...

'명시 감상 3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종목... 조약돌을 보며  (0) 2010.07.01
한용운... 나룻배와 행인  (0) 2010.06.29
오세영... 안개꽃  (0) 2010.06.21
신용선... 그대에게 가는 길 1   (0) 2010.06.18
나태주... 숲  (0) 2010.06.14

 

안개꽃


                                오세영


지상에서나 하늘에서나
멀리 있는 것은 별이 된다.
멀리 있으므로 기억이 흐린,
흐려서 윤곽이 선명치 않는 너의
이,
목,
구,
비,
강 건너 반짝이는 불빛, 혹은
대숲에 비끼는 노을 같은 것,
사랑은
멀리서 바라보아야만 아름다운
안개꽃이다.
지상에서 천상으로 흐르는 은하
한 줄기.
...................................................

 

멀리 있는 것은 별이 된다.
사랑은 안개꽃이다.
멀리서 바라보아야만 아름다운...


멋진 표현이지만 슬프다...
저 은하수처럼...

 

'명시 감상 3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용운... 나룻배와 행인  (0) 2010.06.29
나기철... 맑은 물  (0) 2010.06.25
신용선... 그대에게 가는 길 1   (0) 2010.06.18
나태주... 숲  (0) 2010.06.14
이종만... 별  (0) 2010.06.07

그대에게 가는 길 1


                        신용선


아무 탈 없이
그대에게 가기 위해
키가 넘는 곳은
들여다 보지도 않았네.


미끄러운 곳에서는 미끄러지면서
시간이 들어도 도는 길은
돌았네.


아무 다친 데 없이
그대에게
가기 위해


어느 누구와도
깊은 약속을
하지 않았네.

.....................................................................

 

며칠 전부터 왼손 집게 손가락이 아프다.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아무 이상이 없단다.

그런데 내 손가락은 아프다.

 

조금 움직여도 욱신거리고,

내가 좋아하는 기타를 치려고 해도 아프다.

그래서 마음도 좀 상한다.

 

그래, 세상엔 마음대로 되는 일이 그리 많치 않다.

'명시 감상 3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기철... 맑은 물  (0) 2010.06.25
오세영... 안개꽃  (0) 2010.06.21
나태주... 숲  (0) 2010.06.14
이종만... 별  (0) 2010.06.07
김남조... 6월의 시  (0) 2010.06.01

 숲


                  나태주


비 개인 아침 숲에 들면
가슴을 후벼내는
비의 살내음.
숲의 샅내음.


천 갈래 만 갈래 산새들은 비단 색실을 푸오.
햇빛보다 더 밝고 정겨운 그늘에
시냇물은 찌글찌글 벌레들인 양 소색이오.


비 개인 아침 숲 속에 들면
아, 눈물 비린내. 눈물 비린내.
나를 찾아오다가 어디만큼 너는
다리 아파 주저앉아 울고 있는가
.............................................................

 

이른 새벽 창밖 풍경이 희미하다.
오랜만에 참 오랜만에 비가 내린다.


이렇게 부옇게 창문 가득 적시며 비 흩뿌리는 날,
바깥 풍경은 그 나름대로 운치가 있다.


오랜만에 이 분위기에 어울리는 음악을 찾느라 잠시 분주하다.
메마른 땅위에 빗방울 톡톡 떨어지며 먼지내 솔솔 풍기는 음악,
가슴 한 켠 아련하게, 비릿하게 젖어드는 음악...

'명시 감상 3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세영... 안개꽃  (0) 2010.06.21
신용선... 그대에게 가는 길 1   (0) 2010.06.18
이종만... 별  (0) 2010.06.07
김남조... 6월의 시  (0) 2010.06.01
김초혜... 사랑  (0) 2010.05.19


               이종만


생각하기보다
기도하기로 한다

 
기도하기보다
미소짓기로 한다


미소짓기보다
손을 잡아주기로 한다
...........................................


가끔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 하는 것,
지나치면서라도 가벼운 눈인사 건내는 것,
만나면 손 마주잡고 따뜻한 말 한마디 건내는 것...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데...
더불어 산다는 건 이런 것인데...

'명시 감상 3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용선... 그대에게 가는 길 1   (0) 2010.06.18
나태주... 숲  (0) 2010.06.14
김남조... 6월의 시  (0) 2010.06.01
김초혜... 사랑  (0) 2010.05.19
김초혜... 사랑굿 9, 10  (0) 2010.05.18

6월의 시


                   김남조


어쩌면 미소짓는 물여울처럼
부는 바람일까
보리가 익어가는 보리밭 언저리에
고마운 햇빛은 기름인양 하고
 

깊은 화평의 숨 쉬면서
저만치 트인 청청한 하늘이
성그런 물줄기 되어
마음에 빗발쳐 온다

 
보리가 익어가는 보리밭 또 보리밭은
미움이 서로 없는 사랑의 고을이라
바람도 미소하며 부는 것일까
 

잔 물결 큰 물결의
출렁이는 바닷가도 싶고
은 물결 금 물결의
강물인가도 싶어
 

보리가 익어가는 푸른 밭 밭머리에서
유월과 바람과 풋보리의 시를 쓰자
맑고 푸르른 노래를 적자

...............................................................

'명시 감상 3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태주... 숲  (0) 2010.06.14
이종만... 별  (0) 2010.06.07
김초혜... 사랑  (0) 2010.05.19
김초혜... 사랑굿 9, 10  (0) 2010.05.18
김초혜... 사랑굿 7, 8   (0) 2010.05.18

 사 랑

 

                김초혜


소리를 내면 깊은 강이 될 수 없다

..........................................................................................................

1964년 등단한 후로 연작시 '사랑굿' '어머니' 등으로 너무나 유명한 시인이다.

 

'사랑굿' 이라는 연작시는 총 183편으로 일단락이 된다.

'감정의 수많은 단층으로 쌓인 체험을 한 편의 시로 끝낼 수 없어... ' 라는 시인의 말처럼

그녀의 수십년의 삶에 대한 말이 켜켜히 쌓여 길이길이 남을 연작시를 이루어냈다.

 

물론 시인의 노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진행중이다.

소설가 조정래씨의 아내이기도 한 그녀의 시는
사람과 삶과 사랑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로 샘솟고 있다.

'명시 감상 3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종만... 별  (0) 2010.06.07
김남조... 6월의 시  (0) 2010.06.01
김초혜... 사랑굿 9, 10  (0) 2010.05.18
김초혜... 사랑굿 7, 8   (0) 2010.05.18
김초혜... 사랑굿 5, 6 (두 편)  (0) 2010.05.18

사랑굿 9


                   김초혜


내가 먼저 사랑한 사람
먼저 잊게 해주오


목까지 자란 그리움을
거짓말처럼 잘라낸 후
이제 남루를 벗고 싶으오


그대 도리질의 이유는
헤아려도 추측할 길 없고
앉지도 서지도 못하리라면
없어져 그리움이고 싶으오


끝내 분할이 안 되어
내 몫이 없을
불꽃이라면
뼈가 운대도
비겨 잊으리다


그대여
기침과 심술은 그만
하나의 별만을 빛나게 할
꽃등(燈)을 켜들고
남몰래 숨어서
몇 천 겁(天劫)을

 

사랑굿 10


내 한숨 바람 되어
그대 목에 감기어들면
그게 난 줄 알아
모른 체 비켜 주요


살을 베어 살을
벌지 못하듯
물이 피가 될 리 없겠지마는
잊은 마음 전혀 없어
바람이려오


몇 천 년을 살려고
그대 나의
기쁨이어서는
아니 되오


허리 묶인
홍사(紅絲) 풀어내고
나도 그대의
꽃이 되고 싶으오


돌을 심어 싹이 나도
아니 오시겠오
바람 불면
멀어 있는
달로 오시게.
......................................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던

사랑의 열정도 사그라들어
이젠 자취도 없다.


그저 그 아련한 느낌만 남아

가슴 한켠 공허를 휘젓는다.

'명시 감상 3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남조... 6월의 시  (0) 2010.06.01
김초혜... 사랑  (0) 2010.05.19
김초혜... 사랑굿 7, 8   (0) 2010.05.18
김초혜... 사랑굿 5, 6 (두 편)  (0) 2010.05.18
김초혜... 사랑굿 3, 4 (두 편)  (0) 2010.05.17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