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성악계의 거목인 원로 성악가 오현명 한양대 음대 명예교수가

지난 6월 24일 오후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85세

 

 

 중국 만주에서 출생한 고인은 지난 1948년 서울대 음대 성악과를 졸업한 후

서울예고 교감, 한양대 음대 학장 등을 역임하며 평생을 가곡 발전과 성악교육에 힘써온

한국 성악계의 산증인이다

 

'명태' (양명문 시인, 변훈 곡) 를 멋드러지게 불러주던 교수님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7

 

 '팝의 전설' 마이클 잭슨이 25일(미국 현지시간) 심장 마비로 사망했다. 향년 50세.

  불과 5살의 어린 나이에 팝음악계에 입문, 반세기 가까운 활동을 통해

 수많은 앨범과 히트곡을 만들어 내며,  '팝의 황제'이자 '팝음악계의 전설'이었던 그였기에,

 그의 갑작스런 사망은 참으로 안타깝고 아쉽기만 하다.


Michael Jackson - Got To Be There [1972.01]

 

 Michael Jackson - Ben [1972.08]

해맑고 낭랑한 어린 아이의 목소리로 잔잔하게 우리 마음을 울렸던 'Ben' 이 들릴 것만 같은데...

 

 Michael Jackson - Thriller [1982]

그의 바로 이 앨범 'Thriller' 는 6,000만장이 넘는 판매를 기록하였다.

그의 신비로운 문워킹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Michael Jackson - Bad [1987]

 그의 화려한 노래와 춤이 30년이 지난 지금도 눈에 선하다.

 

Michael Jackson - Dangerous [1991]

언제나 그의 순수함은 음악에 고스란히 담겨 우리의 가슴을 울리곤 했다.

'We Are The World'

'Will You Be There'

'Heal The World' .................

 

Michael Jackson - History [1995]

 

팝의 전설이자 제왕으로 어마어마한 부와 명예를 누린 그 였지만, 개인적인 삶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수차례의 성형수술과 그에 따른 극심한 후휴증, 몇 차례의 스캔들과 희귀질병에 시달려야만 했다.

두번의 이혼과 아동 성추문 사건은 그를 파산과 회생의 갈림길에서 늘상 우왕좌왕하게 했다.

 

 

 Michael Jackson - Invincible [2001]

 

 

 어쨌든 그는 분명 당대 최고의 가수였으며, 글자 그대로 '팝의 전설'이었다.

 그의 평안한 영면을 기원한다... 고이 잠드소서...

 

행복은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진다든가,

되고 싶은 것이 된다든가, 

하고 싶은 것을 한다든가 해서 오지 않는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

지금의 자기 자신,

지금 하고 있는 것 등을

당신이 좋아하게 되면서 생겨난다.

 

   - 도체부부,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중에서 -

 

 

 

노무현 대통령님.


얼마나 긴 고뇌의 밤을 보내셨습니까?
얼마나 힘이 드셨으면, 자전거 뒤에 태우고 봉하의 논두렁을 달리셨던,
그 어여쁜 손녀들을 두고 떠나셨습니까?


대통령님. 얼마나 외로우셨습니까?
떠안은 시대의 고역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새벽빛 선연한 그 외로운 길 홀로 가셨습니까?


유난히 푸르던 오월의 그날,
'원칙과 상식' '개혁과 통합'의 한길을 달려온 님이 가시던 날,
우리들의 갈망도 갈 곳을 잃었습니다.
서러운 통곡과 목 메인 절규만이 남았습니다.


어린 시절 대통령님은 봉화산에서 꿈을 키우셨습니다.
떨쳐내지 않으면 숨이 막힐 듯한 가난을 딛고
남다른 집념과 총명한 지혜로 불가능할 것 같던 꿈을 이루었습니다.


님은 꿈을 이루기 위해 좌절과 시련을 온몸으로 사랑했습니다.
어려울수록 더욱 힘차게 세상에 도전했고,
꿈을 이룰 때마다 더욱 큰 겸손으로 세상을 만났습니다.
한없이 여린 마음씨와 차돌 같은 양심이 혹독한 강압의 시대에 인권변호사로 이끌었습니다.
불의에 대한 분노와 정의를 향한 열정은 6월 항쟁의 민주투사로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삶을 살아온 님에게 '청문회 스타'라는 명예는 어쩌면 시대의 운명이었습니다.
'이의 있습니다!' 3당 합당을 홀로 반대했던 이 한마디!
거기에 '원칙과 상식'의 정치가 있었고 '개혁과 통합'의 정치는 시작되었습니다.


'원칙과 상식'을 지킨 댓가는 가혹했습니다.
거듭된 낙선으로 풍찬노숙의 야인 신세였지만,
님은 한 순간도 편한 길, 쉬운 길을 가지 않았습니다.


'노사모' 그리고 '희망돼지저금통' 그것은 분명
'바보 노무현'이 만들어낸 정치혁명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님은 언제나 시대를 한 발이 아닌 두세 발을 앞서 가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은 너무나 영악할 뿐이었습니다.

수많은 왜곡과 음해들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어렵다고 돌아가지 않았고 급하다고 건너뛰지 않았습니다.
항상 멀리 보며 묵묵하게 역사의 길을 가셨습니다.


반칙과 특권에 젖은 이 땅의 권력문화를 바꾸기 위해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았습니다.
화해와 통합의 미래를 위해 국가공권력으로 희생된 국민들의 한을 풀고
역사 앞에 사과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님이 대통령으로 계시는 동안,
대한민국에선 분명 국민이 대통령이었습니다.


동반성장, 지방분권, 균형발전 정책으로 더불어 잘사는 따뜻한 사회라는
큰 꿈의 씨앗들을 뿌려놓았습니다.


흔들림 없는 경제정책으로 주가 2천, 외환보유고 2,500억 달러
무역 6천억 달러,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열었습니다.


군사분계선을 걸어 넘어 한반도 평화를 한 차원 높였고
균형외교로 유엔사무총장을 배출해 냈습니다.

컴퓨터를 자유자재로 쓰는 세계 첫 대통령으로
이 나라를 인터넷 강국, 지식정보화시대의 세계 속 리더국가로 자리 잡게 했습니다.


이 땅에 창의와 표현, 상상력의 지평이 새롭게 열리고
아시아는 물론 아프리카까지 한류가 넘치는 문화르네상스 시대를 열었습니다.


대통령님이 떠난 지금에 와서야 님이 재임했던
5년을 돌아보는 것이 왜 이리도 새삼 행복한 것일까요.


열다섯 달 전, 청와대를 떠난 님은 작지만 새로운 꿈을 꾸셨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와 잘사는 농촌사회를 만드는 한 사람의 농민,
'진보의 미래'를 개척하는 깨어있는 한 사람의 시민이 되겠다는 소중한 소망이었습니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봉하마을을 찾는 아이들의 초롱한 눈을 보며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뇌하고 또 고뇌했습니다.


그러나 모진 세월과 험한 시절은 그 소박한 소망을 이룰 기회마저 허용치 않았습니다.


자신의 문제에 대해선 한없이 엄격하고 강인했지만 주변의 아픔에 대해선 속절없이 약했던 님.


'여러분은 이제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는 글을 접하고서도
님을 지키지 못한 저희들의 무력함이 참으로 통탄스럽습니다.


그래도 꿈을 키우던 어린 시절의 자연인으로 돌아가겠다는
마지막 꿈만큼은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인 일입니까? 세상에 이런 일이 있습니까?
세상은 ‘인간 노무현’으로 살아갈 마지막 기회조차도 빼앗고 말았습니다.


님은 남기신 마지막 글에서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최근 써놓으신 글에서 "지금은 할 수 있는 일이
실패 이야기를 쓰는 것이 맞는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남아 있는 저희들을 더욱 슬프고 부끄럽게 만듭니다.


대통령님, 님은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설령 님의 말씀처럼 실패라 하더라도 이제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제 저희들이 님의 자취를 따라, 님의 꿈을 따라 대한민국의 꿈을 이루겠습니다.
그래서 님은 온 국민의 가슴 속에 영원히 남아있는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


대통령님. 생전에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분열로 반목하고 있는
우리를 화해와 통합으로 이끄시고 대결로 치닫고 있는 민족 간의 갈등을
평화로 이끌어주십시오.


이제 우리는 대통령님을 떠나보냅니다.
대통령님이 언젠가 말씀하셨듯이, 다음 세상에서는 부디 대통령 하지 마십시오.
정치하지 마십시오.
또 다시 '바보 노무현'으로 살지 마십시오.


그래서 다음 세상에서는 부디 더는 혼자 힘들어 하시는 일이 없기를,
더는 혼자 그 무거운 짐 안고 가시는 길이 없기를 빌고 또 빕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님을 놓아드리는 것으로 저희들의 속죄를 대신하겠습니다.
이제 마지막 가시는 길, 이승에서의 모든 것을 잊으시고,
저 높은 하늘로 훨훨 날아가십시오.


대통령님, 죄송합니다. 사랑합니다. 행복했습니다.


대통령님 편안히 가십시오.


2009년 5월 29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장의위원회 위원장 한명숙

 

 

 불의에 맞서 싸우고, 약한 자를 위해 앞장서 맞섰던 당신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믾은 시련과 역경 속에서도 꿋꿋했던 당신의 용기와 참 눈물을 기억합니다. 

 끝내 당신의 꿈, 국민의 바램을 이루어 냈습니다. 

 

 처음부터 당신의 행보는 쉽지 않았습니다.

 참, 가진 자들의, 힘있는 자들의 저항은 무서웠습니다.

 하지만 당신과 국민의 힘으로 가까스로 지켜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많은 것을 이뤄냈습니다.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정치가 펼쳐졌습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진일보가 이루어졌습니다.

 

 

 안타깝지만 다시 그들에게 정권을 넘겨주었습니다.

 아쉬움도 많았지만, 너무도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진정으로 국민을 위했던 대통령이 있었다는 사실에 만족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다시 촌부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괴로움을 그리고 아픔을 알아주는 국민이 많지 않았나봅니다.

 그래도 많은 국민들이 당신을 기억하고 있고 지켜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못했나봅니다.

 뒤늦게나마 당신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국민에겐 진정으로 저들을 위한 정치인 하나, 지켜줄 힘이 없다는 것도 뼈져리게 알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아쉽고 안타깝습니다.

 당신을 이렇게 보내다니요...

 

노무현 전 대통령님...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세상에 이혼을 생각해보지 않은 부부가 어디 있으랴


하루라도 보지 않으면 못 살 것 같던 날들이 흘러가고
고민하던 사랑의 고백과 열정도 모두 식어가고
일상의 반복되는 습관에 의해 사랑을 말하면서 살아갑니다.


근사해 보이는 다른 부부들을 보면서
때로는 후회하고 때로는 옛사랑을 생각하면서
관습에 충실한 여자가 현모양처고
돈 많이 벌어오는 남자가 능력있는 남자라고
누가 정해 놓았는지
서로 그들에 맞춰지지 않는 상대방을 못마땅해하고
자신을 괴로워하면서 살아갑니다.


다른 사람을 만나 사랑하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 귀찮고 번거롭고
어느새 마음도 몸도 늙어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습니다.


헤어지자 작정하고 아이들에게
누구하고 살 거냐고 물어보면
열 번 모두 엄마 아빠랑 같이 살겠다는
아이들 때문에 눈물짓고


비싼 옷 입고 주렁주렁 보석 달고 나타나는 친구
비싼 차와 풍광 좋은 별장 갖고 명함 내미는 친구
그들을 생각하면 왠지 모를 허탈감에 살아갑니다.


앞으로 까마득한 날 흘러가도 융자받은 돈 갚기 바빠
내 집 마련 멀 것 같고 한숨 푹푹 쉬며 애고 내 팔자야 노래를 불러도
열감기라도 호되게 앓다보면 빗길에 달려가 약 사오는 사람은
그래도 지겨운 아내, 지겨운 남편인 걸....


가난해도 좋으니 저 사람 옆에 살게 해달라고 빌었던 날들이 있었기에...
하루를 살고 헤어져도 저 사람의 배필되게 해달라고 빌었던 날들이 있었기에...
시든 꽃 한송이 굳은 케잌 한 조각에 대한 추억이 있었기에...
첫 아이 낳던 날, 함께 흘리던 눈물이 있었기에...
부모 상 같이 치르고 무덤속에서도 같이 눕자고 말하던 날들이 있었기에...
헤어짐을 꿈꾸지 않아도 결국 죽음에 의해 헤어질 수밖에 없는 날이 있을 것이기에...
오늘도 이렇게 살아갑니다.


어느 햇살 좋은 날
드문드문 돋기 시작한 하얀 머리카락을 바라보다
다가가 살며시 말하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그래도 너밖에 없노라고...
그래도 너밖에 없노라고...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살아갑니다.

 

 - 엔도슈사쿠의 인생론 '회상' 중에서

 8년만에 좁은 주택을 청산하고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아직 에어컨을 달지 못했지만 이제 어느 정도는 정리가 된 듯 하다.

이사를 한 지 10일... '주거환경개선사업'(?) 은 나름대로 성공적이다 싶다.

 

 

화장실이 딸린 안방은 아늑하고 편안하다... 조만간 커튼을 달아야겠다.

 

 

우선 넓은 집으로 이사를 하고 나니 아이들이 신이 났다. 아직 책장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지만...

옷장도 하나 주워다 새롭게 꾸며주고... 피아노도 실어 오니 그럴 듯한 아이들 방이 됐다.

 

집사람도 확 달라진 주거 환경에 들뜨긴 마찬가지...ㅎ.ㅎ... 새로 식탁도 구입했다.

 

늘 책을 쌓아놓고 살았는데, 책장을 사다가 채워보니 오히려 헐렁하다...ㅎ.ㅎ..

이럴 줄 알았으면 그렇게 많은 책을 버리는 게 아니었는데...

고민끝에 책을 7박스 이상 버려야만 했다...ㅠ..ㅠ...

 

나 역시 이 씨디장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2미터에 가까운 11단짜리...

친구녀석이 선물로 직접 제작해 온 이 씨디장 덕분에 8년동안 장식장에서 쌓이고 쌓인 채로 지내오던

내 사랑스런 씨디들이 고스란히 모습을 드러냈다... 감동은 순간이었다...ㅠ..ㅠ...

그래서 반대편 벽에 붙어서 한 컷!!... 내 분신인 기타도 함께 이 순간을 축하했다...

 

지난 금요일 갑작스럽게 할머니의 부음을 들었다.

그래도 건강하셨는데... 어머니를 모시고 진주에 도착하니 한밤중이었다.

만만치 않은 장례준비를 했고, 그런대로 장례를 치러낼 수 있었다.

할머니의 유지대로 아버지가 계신 오대산으로 모셨다.

할머니, 좋은 곳에서 편히 잠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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