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그린 화가 르누아르전

 

기 간 : 2009년 5월 28일 - 9월 13일
장 소 : 서울시립미술관
시 간 : 평일 10시~21시 / 주말,공휴일 10시~20시 / 월요일 휴관
가 격 : 성  인(만19세~64세) 12,000원
        청소년(만13세~18세) 10,000원
        어린이(만 7세~12세)  8,000원
홈페이지: www.renoirseoul.com


주소 : 서울특별시 중구 서소문동 37
전화 : 02-2124-8931~7
홈페이지 : http://seoulmoa.seoul.go.kr/main.html  
 

대중교통

① 지하철 : 1호선 시청역 1번 출구
   버스(일반) : 시청 정류장 - 도보 5분
   버스(서울시티투어) : 덕수궁 정류장 - 도보 5분

② 지하철 : 2호선 12번 출구
   버스(일반, 좌석) : 서대문 정류장 - 도보 5분

③ 지하철 : 5호선 서대문역 5번 출구
   버스(일반, 좌석) : 경희궁 정류장 - 도보 10분

④ 지하철 : 5호선 광화문역 6번 출구
   버스(일반, 좌석) : 광화문(세종문화회관 앞)정류장- 도보 10분

가보고싶은 世界의 名所 (런던.파리.스위스. 이태리)

★ 가보고싶은 世界의 名所 ★
런던.파리.스위스. 이태리


1 . 런던 [London].


2. 영국은 시내를 달리는 2층버스가 인상적이다.


5. 에펠탑의 명칭은 이것을 세운 프랑스의 교량기술자
A.G.에펠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6. 승강기를 타고 에펠탑에 오르다.. ^^


7. 전망대에서..


8. 파리 시내의 전경.


9. 높이는 984피트(약 300m)로 그 이전에 건설된 어떤
건물에 비해서도 약 2배에 이르는 높이였다..


10. 눈부시게 화창한 날에...


11. 성심성당(Basilique du Sacre Coeur) 위 치 : 몽마르뜨언덕 쪽으로 올라가면 보인다.


12. 몽마르뜨의 연인..


13. 세느강에서 유람선을 타고..


14. 자유의 여신상..


15. 베르사이유 궁전.


16. 벽화..


17. 창문너머 왕궁의 정원이 보인다.


18. 정교하게 만들어진 궁전의 보도블럭.


19. 그들은 여행중...


20. T.G.V를 타고 스위스를 향하여..


21. 호수가 보이는 마을..


22. 식사 시간 5분전...


23. 꽃이 아름다운 기차역..


24. 기차를 타고 가다..


25. 산악열차를 타고 융프라우요흐를 향하여..


26. 정상을 바라보다. 

27. 유럽의 지붕(Jungfraujoch Top of Europe), 3454m’란 표지판이 있다.
알프스 최고봉은 이탈리아와 프랑스 경계에 위치한 몽블랑(4,807m)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높은 기차역은 바로 융프라우요흐다.


28. 두오모 대성당은 2245개의거대한 조각군으로 장식되어 있고 135개의
첨탑이 하늘로 치솟아 있다. 길이 157m, 높이 108.5m이다.


29. 1386년 밀라노 공 잔 갈레아치오 비스콘티 공작의 명으로 착공되었으며,
450년에 걸쳐 공사가 진행되어 19C 초에 완공되었다. - 두오모 대성당


30. 사내들의 시선..


31. 피사대성당 [Duomo di Pisa, 피사의사탑] 피사에서..


32. 사탑 그리고 숙녀..

33. 세계에서 가장 기묘한 건물 중 하나인 피사의 사탑, 매년 1mm씩 남쪽으로 기울고 있어
보는이로 하여금 안타까움과 위태로움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사탑의 높이는 58.36m이며
최상층부를 기준할 때 중심축으로부터 약3.6m, 수직에서 10도 이상 기울어져 있다.
흰 대리석으로 된 피사의 사탑은 원통형 으로 8개층으로 되어 있다. 294개의 나선형 계단을
오르면 최상층에 이른다. 이 위에서 내려다본 피사 시내 및 주변 풍광은 훌륭하다. 갈릴레이가
새털과 쇠공을 떨어뜨려 낙하시험을 한 곳도 바로 이 장소이다.


34. Pompeii는 역사의 베일에 가려진 채 1700년 동안 7~8미터 화산 잿더미 속에 말없이
파묻혀 있었다.문헌에는 로마 귀족들의 휴양도시이자 환락의 도시였다는 기록이 있으나
실제 그곳이 어디인지 행적을 모르다가 16세기말에 사르노 강으로부터 토레안눈치아타
시로 물을 끌어오기 위해 라치비타라고 알려진 구릉 밑에 터널을 팠던 건축가 도메니코
폰타나에 의해 처음으로 발견되었으며 1709년 4 월 어느 날 수도원 뜰, 우물 작업을 하던
인부의 곡괭이에 걸린 쇠붙이가 계기가 되어 마침내 세상에 그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하다.


35. Pompeii


36. 폼페이유적을 보노라면 찬란했던 고대 로마문명을 실감하게 한다.



37. 1738년 4월 밭 갈던 농부가 곡괭이에 부딪치는 쇠붙이 소리를 듣고 이상히 여겨
입소문이 퍼지자 당시 가장 유명했던 토목기사 도메니코 콘타나가 적극성을 띠고
작업에 뛰어 들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다.
폼페이의 발굴 작업은 1748년에야 시작되었고, 1763년 그 장소가 폼페이였음을
밝혀주는 비문 (rei publicae Pompeianorum)이 발견되었다.
그후 1938년 12월 11일 헤르쿠렐늄 극장에 세워진 돌벽, 눈부신 프레스코 벽화,
원형극장등이 발견되었다.


38. 폼페이에서


39. 나폴리에는 2개의 섬이 있다. 카프리섬(Isola di Capri)과 이스치아섬(Isola d' Ischia)
으로 나폴리만에서
페리로 1시간정도 걸리면 닿는 아름다운 섬이다.


40. 카프리섬(Isola di Capri)


41. 카프리섬의 전망대에서..


42. Isola di Capri


43. 푸른바다..


44. 여인들의 외출..


45. "나폴리를 보고 죽어라!"(See Naple and die)라고 누가 말하지 않았던가?
로마 테르미니 역에서 기차를 타고 차창 밖으로 이탈리아 남부의 전원 풍경을
느긋히 즐기면서 두시간을 달리면 평온하고 목가적인 도시 나폴리를 만난다.
"세계 3대 미항" 중의 하나인 나폴리...


46. 성베드로성당.


47. woongs.. ^^


48. 콜로세움..


49. 직경의 긴 쪽은 188m, 짧은 쪽은 156m, 둘레는 527m의 타원형이고, 외벽(外壁)은
높이 48m로 4층이며,하단으로부터 도리스식(式)·이오니아식·코린트식의 원주(圓柱)가
아치를 끼고 늘어서 있다. 내부는 약 5만 명을 수용하는 계단식 관람석이 방사상(放射狀)
으로 설치되어 있다.


50. 피렌체/꽃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 지옷토의 종탑.


51. 시뇨리아 광장..


52. 피부의 핏줄까지 묘사를 한 섬세한 조각상..


53. 예술을 사랑하고 지원했던 메디치가의 본거지가 있던곳. 시뇨리아 광장에 늘어선
석상들로 한번 더 탄성을 지르게 한다. 마치 야외 미술관 같은 장관이 펼쳐진다

사랑과
출처 : 酒色兼備
글쓴이 : sangky 원글보기
메모 :

 

 

이 아름다운 여인은 어느 방향으로 돌고 있나요... ?

시계방향으로 돌고 있다고요?

아닌데... 내 눈에는 분명 반대방향으로 돌고 있는데...?

 

자유자재로 방향을 바꿔보세요... 잘 되나요?

그렇다면 당신의 좌뇌와 우뇌는 활발히 운동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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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황제


 

고종황제




고종황제




고종황제




고종황제




고종황제




고종과 순종. 조선시대 왕과 왕세자가 입었던 붉은색 곤룡포 차림으로 1890년무렵의 모습이다. 아직 국호가 대한제국으로 바뀌기 전이라, 고종이 황제가 아니기 때문에 황룡포가 아닌 홍룡포 차림이다




고종황제와 신하들의 모습.




1910년 한일병탄 직후 덕수궁 석조전 앞에서 자리를 함께 한 조선총독부 고위관리들과 대한제국 황족들. 앞줄 가운데 모자를 벗은 사람이 고종 황제이고, 그 오른쪽이 순종, 고종의 왼쪽은 영친왕이고, 그 옆은 데라우치 초대 조선총독.





고종이 대한제국 초기 러시아 황제에게 보낸 국한문친서. 고종은 1909년 초 국외망명을 시도할 정도로 일제의 한국침략에 강경하게 맞선 군주였다.




일본 관리들이 쓰는 모자와 의상을 입고 궁궐을 나선 고종. 왕의 행차때 사용하는 일산을 받쳐들고 있지만 어가를 매고 있는 사람들은 일본인들이다. 1919년 촬영.



1919년 집무를 보기 위해 겨울옷을 입고 선원정에서 인정전으로 나서고 있는 고종황제의 모습




러시아 공사관 내 고종 황제 거실. 황제용 더블 베드-황태자용 싱글 베드-응접 세트가 전부였고, 옆 방에서 상궁 둘이 번갈아 기거하며 수발을 들었다.




고종이 파천해 집정할 당시의 러시아 공사관.




고종황제의 후궁 양씨(1882년생, 덕혜옹주의 생모).




엄황귀비. 명성황후의 상궁으로 있다가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 고종황제를 모셨고, 이어 왕자 은(영친왕)을 낳았다. 1906년에 진명여학교를 설립, 한국 근대교육사업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권오창화백이 그린 명성황후 진영.




1903년 11월 29일자 [보스턴 선데이 포스트]지에 보도된 고종황제와 미국인 에밀리 브라운양 결혼 기사. [유일한 미국인 황후 어떻게 대관했는가]라는 제목으로 브라운양의 클로즈업된 모습과, 고종과 브라운 양이 일산(日傘)으로 가린 연(輦.임금의 수레)을 타고 궁을 나오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대한문 앞을 지나고 있는 고종황제의 국상행렬.




고종황제 국장때 바닥에 엎드려 통곡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




고종황제 국상 전날의 대한문 앞 모습.




1921년 고종황제 제사때의 모습. 중앙이 순종황제이다.
 
 
 
        

출처 : 오경의 인연 만들기
글쓴이 : 오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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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오경의 인연 만들기
글쓴이 : 오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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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자료는 69년도 아이들의 생활상을 담은 사진들입니다.

당시는 가난이 무엇인지도 모르며 힘겹게 살아오신 이분들은,

현재 50을 전 후 한 연세들이 되셨을겁니다..

고무신에 양말도 신지않고 지게로 나무를 지고 있는 모습이 가슴 찡합니다

바람이 불면 힘에 부처서 지게와 함께 넘어지고 굴러서 다치기도하고....

지게가 조그마한것이 앙증맞네요

 갯벌에 앉아서 무엇인가 캐고있는 모습입니다

 지금도 이 학교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공부도 하고 소도 키우는 모습이 아련한 옛추억을 떠올리게 합니다 

 겨울철 따사로운 양지쪽에 앉아서 책들을 많이 읽곤했지요

 학교 다녀오면 부모님 일을 돕는게 당연 지사로 알고 살았습니다

돼지에게 죽을 먹이고있네요.

동생은 아버지 장화 신고 너무커서 질질 끌고 다녔지요 ㅎㅎㅎ

 등교길 모습입니다,판자집/토담집에 초가지붕 ....

 쉬는 시간 종이 울리면 한 걸음에 운동장으로 달음박질.....

 당시 잡지에 실렸던 삼남매 연탄배달 기사입니다

 무척이나 가슴아픈 기사였습니다 만, 당시는 다들 이렇게 어렵게 살던

시절었답니다.동생은 연탄 내리고 누나는 나르는 모습이네요

 순창의 초등학교 모습입니다(사진에 소개 글)

 책 보자기= 모든 학생들이 책 보자기에 책과 도시락을 둘둘 말아서 허리나

어깨에 매고 학교를 다녔으며 책가방들고 다니는 학생들은 보기힘들었지요

도시락에 김치국 물이흘러서 책장이 빨갛게 물들곤 했답니다

 햑교다녀 오면 부모님 일부터 거들고 주로 밤에 호롱불 밑에서 웅크리고

앉아 꾸벅 꾸벅 졸면서 숙제를 하였지요,

숙제하다 그냥 책상에 엎드려 잠이들고.....

 학교 다녀오면 들로 산으로 소먹이로 다니곤했지요

돌아올땐 소먹이풀을 지게에 가득지고 한 손엔 소 고삐를잡고..

 등교길 징검다리를 건너는 모습입니다

친구들 집 앞을 지나칠때면 지나는 아이마다 "* *야 학교가자! 라고

크게 소리처 부르곤 했지요

 하나같이 빡빡머리에 이발비도 아끼고 머리에 이 생기는것도 방지하고..

나무 책상에는 가운데 줄을 그어놓고 사물이 서로 못넘어오게

다투기도 했지요

 선생님과 찍은 추억의 모습들입니다 

 길 거리에서 순경 아저씨로 부터 교통지도를 받는 모습입니다

 아! 저기 여고생의 모습입니다

아스라히 멀어저간 추억속의 교복....

 피로회 복제를 팔고 있는 모습입니다

 우체국 홍보 사진과 지금은 볼 수 없는 삼륜 자동차입니다

 나무 따게(삽)라고 생각이됩니다, 이름이 생각안납니다

삽질하는 여학생입니다

 학교 다녀오면 연탄불도 갈고......

 용돈을 벌려고 껌이나 피로 회복제를 팔러 다니기도 했지요

 요즘은 학교 다녀오면 학원이다 머다해서 가사일을 하는 학생들

모습은 볼 수 없지만 예전엔 공부 보다도 부모님을 도와 일하는게

우선이었답니다, 문론 일 때문에 결석도 잦았지요

 빙상대회 사진입니다

 강원도 속초 모 초등학교에 장애를 가진 친구를 매일같이 학교까지 대려다

주며 돌봐주는 모습입니다(자전거를 개조한 휠체어)

 때로는 업고 마실을 다니기도하고....

 누이 동생이 오빠를 업고...

요즘 보기드문 장면에 눈시울이 뜨거워 집니다

 학교 다녀와서 거름치기도 하고...

 새끼도 꼬고....

 읍내까지 하교 다니는 아이들은 학교 마치고 시장에 들러 장보기도 했지요

 학교 다녀와서 물지게도 지고....

 목욕을 즐기고 있는 모습입니다

멀리 물놀이하는 아이와 달려가는 아이하며 무척이나 정겹습니다

요즘처럼 계절별로 옷이없고 보통 겨울 옷과 여름 옷 두 종류여서인지

날씨는 여름인데 두 아이는 아직 겨울 옷같네요

 우리 어머님들의 모습입니다

수십리 길을 걸어서 장보러 다니곤했지요

당신께선 굶주린배를 끈으로 한번더 꼬옥 조여 매시고 끼니도 굶고

수십리 먼길을 다녀 오시곤 했습니다

 흔히 볼 수있었던 개천가의 움막들입니다

 교실이 부족하여 노천에서 공부하는것은 예사였지요

 이곳에도.......

 이밝은 표정들이 조국 근대화에 견인차 역활을 했나봅니다

 대도시의 어느 초등학교 졸업식 모습입니다

시골과는 많은 차이가 나지요 

 짚으로 지붕을 덮기위해 용마름을 짜는 모습입니다

 가난하고 힘들어도 표정 많큼은 너무도 천진 난만하고 순수해 보입니다

 운동회 모습입니다

 수업 시간에 어린 동생을 학교에 대리고 나와서 공부 하는 모습입니다

부무님이 들에 가시면 어린 동생을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도시의 어느동네 한 모퉁이같습니다

 가난했던 시절 허리가 휘어지고 뼈골이 부서지도록 자식들위해 고생하신

우리 모두의 어머님이 십니다.

출처 : 오경의 인연 만들기
글쓴이 : 오경 원글보기
메모 :
** 섬마을 선생, 가슴 아프게 / 1960년대 흑백 영화 포스터들 **

아래 영화 포스터들은 정확히 1967년 국내에 상영된 국산 흑백 영화들이다.
한국 영화 산업이 발달 하기까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굳굳이 발전을 거듭
하여 오늘 날의 한국 영화가 세계적인 수준까지 위상이 높아진 것이 아닐까 ?


 

 

 

 

 

 

 

 

 

 

 

 

 

 

 

 

 

 

 

 

 

 

 

 

 

 

 

 

 

 

 

 

 

 

 

 

 

 

 

 

 

 

 

 

 

 

 

 


[ 출처 : 다음블로그 ]
출처 : 오경의 인연 만들기
글쓴이 : 오경 원글보기
메모 :
이 자료는 정확히 70년 1~12월의 생활상을 담은 사진들입니다.
당시는 가난이 무엇인지도 모르며 힘겹게 살아오신 이분들은,
현재 50을 전 후 한 연세들이 되셨을겁니다..
누더기 옷에 헐벗고 굶주림에 살았어도 따스한 온정이 흐르던 시절이었습니다




너무 배가 고파 영양 실조로 얼굴은 붓고 코에는 코물이 흐르고
손과 발은 동상에걸려 어렵게들 살아 오셨습니다
울다가도 먹을것 주면 뚝그치고 하루세끼 먹는 집은 잘사는 집안이었습니다




추운겨울 냉기가 감도는 방에서 나와 따듯한 햇볕에서
늘 언몸을 녹이곤 했지요.헤진 옷을 입고 살아도 다들 그렇게 사니
부끄러움이 먼지도 모르고 자랐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어머니~ 추운겨울 양말이없어 맨말이 시려도
어머니 등에 업히면 엄마 품에서는 나는 젖내음과 따듯하고 포금함은
지금도 잊을수 가 없었습니다
투방집=나무로 얼기 설기 쌓아서 흙으로 빈 공간을 막아서 지은 집입니다




소 외양간에 창을 만들어 소 여물을 먹이는 모습이 정겹습니다
소가 재산목록 1호였으며 사람은 굶어도 소는 늘 따근하게 소죽을 끓여서
주곤했지요.문론 소없는 집이 대 다수였지만....




두메산골 추운 겨울을 나기위해 월동 준비를 해놓은 장작더미 앞의 세모자입니다
초라한 모습과 천진 난만한 표정이 가슴을 찡하게 만듭니다




굴피 나무 겁질로 지붕을 덮어놓은 너와 라는 지붕이지요




겨우살이를 위해 준비해둔 옥수수와 산골의 가정의 풍경입니다
옥수수 죽이나 감자등으로 연명하며 겨울 나기를 했지요




아이를 업고 김을 메는 우리들 어머님의 모습입니다




학교를 마치고 지나가는 차를 얻어 타기위해 손을 흔들고 있습니다




최고의 놀이 기구였지요.부모님들이 안계시면 몰래 끌고 나와서
온 동네 친구들 태우고,때론 굴러서 많이들 다치고....
떨어진 바지 시린손 그래도 행복했습니다..




그나마 도심에서는 만화방이 있어서 산골보다는 좋았지요.
만화방에서 책보는데 1원주면 6권정도...




생계를 위해 학교 다녀와서 껌팔이도 하고....




신문팔이,신문배달 참으로 어렵게들 사셨습니다.




추수가 끝난 동구밖 들판은 아이들의 놀이터로서 최고였지요




어촌의 아이들이 부모님의 일손을 도와 어포를 말리 중입니다.




생활은 어려워도 꿈과 희망이 넘첬던 시절이었습니다.
텃밭의 짚더미는 추위도 녹여주고 놀이터로 활용되고....




하교다녀오면 의례 부모님 일손을 돕고 밤이돼야 숙제를 할 수 있었습니다
가물 가물한 호롱불 밑에서 꾸벅 꾸벅 졸면서 숙제하다. 머리 카락 많이들 태웠었지요
연필심 마져도 품질이 좋지않아 침을 발라 두어자 쓰고 또 침바르고...




암닭이 알을 놓기가 바쁘게 책보허리에 메고 따듯한 계란을 들고 학교로 내달렸지요.
문방구에 가서 계란으로 공책이나 연필등 학용품으로 물물 교환했답니다. 뛰어가다 엎어져
계란은 깨지고 눈물 콧물 울기도 많이 울었지요, 근방 낳은 계란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




학교 다녀와선 어김없이 지게지고 밭으로, 산으로 땔감을 구하러 가곤 했지요




가축들도 거두고, 한겨울에 고무신고 신발이 꽁꽁 얼서서 발에 붙어 떨어지지도 않았답니다.
그때는 동상 안 걸린 아이들이 이상했지요




설것이도를 하기 위해 빈그릇 솥가마등을 않고 동네 우물가로 설걷이를 하러 가는 모습입니다.
가마솥 뚜겅을 머리에 쓰고 가는 모습이 설걷이를 많이 해본 솜씨 같습니다




지게를 못지는 여자아이들은 나무를 묶어서 머리에 이고 산에서 내려오다많이도 굴르고 다치고......




먹고 살기위해 학교 다녀오면 길거리로 구두딱이,껌팔이,신문팔이 무엇이든 했답니다




구두를 닦는 아이의 표정이 무척이나 고달퍼 보입니다




어머니의 바쁜 일손을 돕고있읍니다.
요즘 머리에 물건 이고 다닐 수 있는 어린이들은 아마 없겠지요




부모님들은 공사장이나 들에 나가고 어린들은 학교 다와서 동네의 잔 일거리들은 다 하였지요.



곡괭이나 삽질도 잘했지요




당시 정부에서 덩그러니 학교 교실 하나 지어주면 나머지 모든 공사는 학생들 차지 였습니다.
돌을이고 지고 학교 축대 쌓는 작업을 하고있네요 머리에 돌을이고 있는 어린이 모습..
돌을 어깨에 맨 아이...




배타고 나가 부모님 일손도 돕고.....




소먹이로 가고...비록 힘들게 살았어도 국경일이면,
산골마을 독가에서도 꼭꼭 태극기 게양 했지요..



초가집앞 텃밭에서 농사일을 돕고있네요.




한겨울 강아지를 않고 따라로운 햇볕을 쬐고있습니다..강아지 안으면 온몸이 따듯했지요..
돌아가면서 않고,순서를 기다리는 두어린이 표정이...*^^*




엄마가 세수시켜 줄때면 제인먼저 코풀어! 하시고 ..
따듯하게 물데워서 어린 동생들을 돌아가며 세수를 시키셨지요




아파도 병원이 없어서, 너무 멀어서, 늘 집에는 아까징끼(머큐롬)을 비취해두고 발라주시 곤했지요.
자식의 아픈 고통을 대신하듯 어머니의 표정이 너무도 안타갑게 보입니다




이발관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동네 한두곳 이발기계 있는 집에가서 머리를 깍고 했지요,
부실한 기게로 머리털 뽑혀서 눈물은 줄줄.....




간혹 사회 복지가들이 학교 찾아오시어 사탕이나 먹을것을 전해주시고...




아이를 등에 업고 갯벌에서 하루 종일 일하시곤 밤이면 아고고 허리야!
고통으로 잠못 이루시던 우리 어머님들 이셨습니다.




수안보 어는 산골마을 학교입니다.




부모님들 일손이 모자라 등교길 이린이들은 스스로 조그만 나룻배를 타고 도강하는 모습입니다.
안전 사고도 많았었지요.



학교 교실에서 공부하는 모습입니다




책상 걸상 무척 정겹습니다 특별 활동시간 주산부 (수판) 어린이들 입니다




추억어린 풍금입니다, 음악 시간이지요 선생님이면 누구나 풍금을 다룰 수 있어야 했지요




양말도 신지 않은 어린이, 무척 진지해 보입니다..




비가 조금만와도 중간에 수업포기 잽싸게 개울을 건너 집으로 내 달렸지요.
물이 불으면 건너지 못했고,빨리 집에가서 집안 비 설것이 해야지요.
모든게 공부보다 집안 일이 우선이었지요..




여자는 코고무신 남자는 검정 고무신, 한겨울 양말이 없어
발이 시린 아이들은 신발에 짚을 넣고 신었었답니다.




학교 안가는 날이면 어린이 애향단(동호회)이 골목도 쓸고 마을 어귀에 꽃길도 만들고
자기 마을 가꾸기를 했답니다




빗자루는 요즘 보기 힘든 싸리나무로만든 빗자루입니다




학교주변 수목원도 만들고...참으로 꿈과 희망이 많았던 시절이었습니다




주기적으로 고적지를 찾아 대청소 및 관리도 하곤 했지요




널뛰기하는 여자 아이들 모습입니다.가운데 한 아이가 올라가 앉아 중심을 잡고
누가 누가 높이뒤어 상대를 떨어트리나 껑충 껑충~ 요즘 보기 힘든답니다.




운동회가 열리는 날이면 온동네 어른 아이 할것 없이 모두의 대 잔치였습니다..
부모님들과 함께 뭉처서 힘 겨루기를 했지요




뛰어가면서 사다리 통과 하기 무릅이 벗겨저서 피가 줄줄 흐르고...




기마전으로 힘 겨루기도 하고....




누가 누가 멀리뛰나 훨훨.....




청군이겨라! 백군 이겨라! 목청것 소리치고 나면 다음날은 모두가목이쉬어,ㅎㅎㅎ
지금의 운동회는 점심 시간지나면 끝이지만 당시는 하종일 온마을 잔치로 해가 질때까지 했지요




학교마다 보통 공 두개정도(배구공,축구공) 최고의 놀이감 이었습니다.
눈을 감고 블로킹하는 어린이 모습이^^*




이렇게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차범근,이회택과같은 세계적인 스타들이 탄생 하셨습니다




한창 태권도 붐이 일어 학교마다 가르키는 모습입니다..기마자세 태극1장이던가요
..?




무용연습 중인 여자 아이들입니다..특별 활동 시간이면 언제나 책 걸상 뒤로 밀어 붙여놓고...




길거리 포장마차 비슷한곳에 아이들 간식 많이 팔았지요.불량 식품이 너무많아 늘 배앓이하고.....




당시 1원부터 제일 큰돈 500원까지 입니다..
출처 : 오경의 인연 만들기
글쓴이 : 오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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