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1    
  
                   김용택


바람이 붑니다
가는 빗줄기들이 옥색 실처럼 날려오고
나무들이 춤을 춥니다


그대에게
갈까요 말까요
내 맘은 절반이지만
날아 온 가랑비에
내 손은 젖고
내 맘도 벌써 다 젖었답니다


봄비 2    
  
                  김용택


어제는 하루종일 쉬지도 않고
고운 봄비가 내리는
아름다운 봄날이었습니다


막 돋아나는 풀잎 끝에 가 닿는 빗방울들,
풀잎들은 하루종일 쉬지 않고 가만가만
파랗게 자라고


나는 당신의 살결같이 고운 빗줄기 곁을
조용조용 지나다녔습니다


이 세상에 맺힌 것들이 다 풀어지고
이 세상에 메마른 것들이 다 젖어서


보이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는
내 마음이 환한 하루였습니다. 어제는 정말


당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고운 당신이 하얀 맨발로
하루종일 지구 위를
가만가만 돌아다니고


내 마음에도 하루 종일
풀잎들이 소리도 없이 자랐답니다. 정말이지


어제는
옥색 실같이 가는 봄비가 하루 종일 가만가만 내린
아름다운 봄날이었습니다.
...............................................

화려하고 현란한 봄 꽃의 향연이 막을 내릴 즈음,
이젠 그 열기를 식히려는 듯
가만가만 종일토록 봄비가 내립니다.


빗방울이 지글지글 우산에 듣는 소리를 들으며
문득 어디선가 아름다운 사랑노래가 흘러나올 것 같아
주위를 두리번 거립니다.


다시 우산 아래의
지글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나의 지난 시간들에 대한 생각에 젖어봅니다.


이미
우산도
길도 다 젖었습니다.


내 옷소매도
바짓가랑이도 다 젖었습니다.


혹시
내 마음이 젖을까봐
얼른 옷깃을 여밉니다.

정동진에서 II

 

                    목탁

 

참으로 오랜만에

마음 기울여

시간 한잔 따라

바람 한조각 띄워 마셨다.

 

오월의 봄 햇살

그 빛나는 칼날이

나른 한 오후를

쥐도 새도 모르게 베어낼 때 쯤

 

졸음에 겨운 파도는

게으른 배 한척을

어르느라 여념이 없다.

...................................................

 

오랜만에 정동진으로 가족여행을 갔다가

너무나 한가롭고 여유로운 한때를 보내며

이게 행복인가 싶었더랍니다...

 

바닷가에서 내 무릎을 베고 누워있던 아내가

시라도 한 수 지어보라고 하기에...

내리 두 편을 적어내렸지요...

가만히 들여다 보더니

마누라 왈...  "아주 좋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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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섹스의 추억

 

                                  최영미


아침상 오른 굴비 한 마리
발르다 나는 보았네
마침내 드러난 육신의 비밀
파헤쳐진 오장육부, 산산이 부서진 살점들
진실이란 이런 것인가
한꺼풀 벗기면 뼈와 살로만 수습돼
그날 밤 음부처럼 무섭도록 단순해지는 사연
죽은 살 찢으며 나는 알았네
상처도 산 자만이 걸치는 옷
더이상 아프지 않겠다는 약속


그런 사랑 여러번 했네
찬란한 비늘, 겹겹이 구름 걷히자
우수수 쏟아지던 아침햇살
그 투명함에 놀라 껍질째 오그라들던 너와 나
누가 먼저 없이, 주섬주섬 온몸에
차가운 비늘을 꽂았지


살아서 팔딱이던 말들
살아서 고프던 몸짓
모두 잃고 나는 씹었네
입안 가득 고여오는
마지막 섹스의 추억

.....................................................

언제였던가요?

최영미 시인의 감각적이고 예리한 자극에

욕망이, 열정이 꿈틀거리던 시절이...

그녀의 시 한 줄 한 줄을 다시 또 다시 읽어 내려가며

그녀의 혀끝에서 좌지우지되던 내 신경의 끄트머리...

그리곤 다시 오그라드는 내 허기...

그녀를 한 번은 만나보고 싶다는 내 허망한 바램이

어쩌면 잠시나마 이루어지기를......

 
한국전쟁 100장면 중 눈빛 출판사가 제공한 사진 14 장면


탱크를 배경으로 동생을 업고 서 있는 소녀,
머리는 헝클어 지고 옷차림은 남루하지만
굳게 다문 입과 결의에 찬듯한 눈매에
절망의 그림자는 찾을수 없읍니다.


어머니는 일터로 나가고 없고,
혼자 남겨 둘 수 없는 동생을 안고 학교로 왔습니다.
교실은 불타고 없습니다. 선생님의 질문에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답하는 소녀의 목소리가 들릴 듯 합니다. (1950년 10월)


얼음이 둥둥 떠내려 가는 차가운 강물을 건너는 부자의 모습.(1951년 1월)
석장의 사진은 50여년전 한국 전쟁의 와중에서 살아가고 있던
우리네 어머니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입니다.

올해는 한국전쟁 발발 58주년.
오늘 하루 쯤은 당시를 생각해 보게하는 사진을 싣는 것도
전혀 무의미 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월미도에서 체포된 뒤 옷이 벗겨진 채 검색을 당하고 있는 북한군
(1950년 9월)




장갑차를 탄 미군들이 서울로 진입하는 모습.(1950년 9월)




인적사항이 적힌 목걸이를 걸고 새 옷이 지급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북한군 포로들.(1950년 10월)

777777777777777777777777777777777777777777777777777777777777777777777777777777777


집단학살 현장에서 수습된 시신 중에서
가족을 확인한 유족들의 울부짓는 모습.
(1950년.10월 함흥)




미 공군 전투기가 원산 시가지를 폭격하는 모습(1951년)




서부전선에서 체포된 중공군.
사살할 것으로 오인해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모습.(1951년)




미군의 네이팜탄 공격으로 부상당한 여인들이
응급구호소에 모여 있는 모습.(1951년.2월 수원)




전란중의 남대문.(1951년 3월)




자기가 그린 태극기를 들고 살려 달라고 애걸하는
평양의 한 학생과 엎드려 있는 북한군 병사.(1951년 10월)




이미 숨진 엄마의 시신을 붙잡고 하염없이 울고 있는 어린 남매의 모습.
이곳을 지나던 영국군과 호주군에 의해
안전한 곳으로 데려갔다.(촬영일시 미상)




북으로 돌아가는 북한 여군 포로들.
열차 밖으로 인공기 등을 내걸고 구호를 외치는 모습.(1953년.8월)
 
[출처:노을05] 

오늘도 幸福하셔요.
출처 : 용촉고을
글쓴이 : 가을하늘 원글보기
메모 :


▲ 1951. 4. 3. 강대국이 그어놓은 원한의 38선. 이 38선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살아왔던가.
ⓒ NARA
▲ 1951. 1. 26. 미 폭격기들이 북한군 진지에 폭탄을 떨어뜨리고 있다.
ⓒ NARA
▲ 1951. 7. 15. 미 전투기들이 원산 상공을 날고 있다.
ⓒ NARA
▲ 1951. 10. 18. 미 폭격기가 북한지역에 폭탄을 떨어뜨리고 있다.
ⓒ NARA
▲ 1951, 2. 23. 미 수송기에서 낙하산을 이용하여 보급품을 떨어뜨리고 있다.
ⓒ NARA
▲ 1951. 3. 5. 한강 북쪽 북한군 진지에 폭격을 가하고 있다.
ⓒ NARA
▲ 1951. 4. 2. 미 정찰기가 적진을 살피고 있다.
ⓒ NARA
▲ 1950. 7. 10. 조치원 부근. 미군 트럭이 북한군 전투기의 공격을 받아 불타고 있다.
ⓒ NARA
▲ 1950. 7. 16. 금강교 폭파 장면.
ⓒ NARA
▲ 1950. 7. 21. 불타고 있는 대전 시가지.


▲ 주객전도, 이 땅의 주인인 갓을 쓴 노인들은 전차를 피해 갓길로 가고 있다.
ⓒ NARA
▲ 1950. 7. 27. 맨발의 한 소년이 지게에다 피난봇짐을 잔뜩 지고 있지만 표정이 매우 맑다.
ⓒ NARA
▲ 1950. 7. 29. 안동군민들의 피난 행렬.
ⓒ NARA
▲ 1951. 1. 9. 강릉, 1. 4 후퇴로 눈길에 다시 피난을 떠나고 있다.
ⓒ NARA
▲ 1951. 4. 23. 중공군 춘계대공세로 다시 피난길에 오른 사람들.
ⓒ NARA
▲ 1951. 6. 27. 다리 부상으로 소를 타고 피난길에 나서다.
ⓒ NARA
▲ 1951. 7. 4. 철원, 군 트럭에 실려 피난을 떠나고 있다.
ⓒ NARA
▲ 1951. 7. 19. 강원도 화천, 감자를 캐는 화전민 사람들을 수용소로 데려가고 있다.
ⓒ NARA
▲ 1951. 9. 11. 경기도 동두천, 군인들의 통제 아래 피난민들이 이동하고 있다.
ⓒ NARA
▲ 1951. 8. 20. 마곡리, 한 소년이 소를 몰고 피난길을 가고 있다.


▲ 1951. 4. 20. 대구 근교 훈련소에 신병 입대자들이 입소하고 있다.
ⓒ NARA

▲ 1951. 5. 15. 대구 근교 훈련소에서 신병들의 수료식이 열리고 있다.
ⓒ NARA

▲ 1951. 5. 15. 대구 근교 훈련소, 수료식을 마친 신병들이 부대배치를 받고 있다.
ⓒ NARA

▲ 1951. 5. 18. 대구. 훈련소에서 교육을 마친 신병들이 열차를 타고 전선으로 가고 있다.
ⓒ NARA

▲ 1951. 5. 20. 지게부대.
ⓒ NARA

▲ 1950. 7. 7. 기마대 행렬.
ⓒ NARA

▲ 1950. 7. 29. 주야간 전투에 지친 국군 병사들이 아무데서나 쓰러져 자고 있다.
ⓒ NARA

▲ 1951. 5. 29. 평화로운 한국의 전형적인 농촌 마을
ⓒ NARA

▲ 1951. 5. 26. 마을의 평화를 깨트리는 전차가 고개를 넘어 마을로 들어오고 있다.
ⓒ NARA

 

 

▲ 1951. 9. 11. 피난길에 만난 형과 아우.

▲ 1951. 10. 21. 평양. 살기 위해 태극기를 들고 살려달라고 애걸하고 있다.
ⓒ NARA

▲ 1951. 4. 4. 홍성, 수로에 널브러진 유엔군 시신들.
ⓒ NARA

▲ 1951.1. 4. 공산군의 시신들.
ⓒ NARA

▲ 1951. 5. 25. 길바닥에 나뒹구는 중공군 시신.
ⓒ NARA

▲ 1951. 1. 23. 유엔군들이 상여가 나가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다.
ⓒ NARA

▲ 1950. 7. 5. 한 국군 용사의 무덤.
ⓒ NARA

▲ 1958. 5. 28. 무명 용사의 시신을 본국으로 보내는 미군.
ⓒ NARA

▲ 1950. 7. 5. 국군 헌병이 북한군을 생포하다.
ⓒ NARA

▲ 1951. 6. 12. 원주, 미군들이 야전에서 미사를 보고 있다.
ⓒ NARA

▲ 1951. 7. 3. 미군들이 한국 어린이에게 구제품을 나눠주고 있다.


▲ 1951. 7. 10. 적진을 향해 불을 뿜는 155mm 곡사포.
ⓒ NARA



▲ 1950. 7. 6. 전란으로 잿더미가 된 평택역.
ⓒ NARA



▲ 1950. 7. 7. 전란 중의 천안 시가지
ⓒ NARA



▲ 1950. 7. 7. 미군이 포항으로 상륙하고 있다.
ⓒ 박도



▲ 1951. 6. 3. 155mm 곡사포가 불을 뿜고 있다.
ⓒ NARA



▲ 1950. 11. 유엔군이 원산에 상륙하고자 상륙용 소형 함정에 옮겨 타고 있다.
ⓒ NARA



▲ 1951. 6. 22. 임진강 부교로 전차가 지나려 하고 있다.
ⓒ NARA



▲ 1951. 7. 3. 유리한 고지를 뺏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다.
ⓒ NARA



▲ 1951. 9. 6. 금수강산을 초토화시킨 포탄 껍질들.
ⓒ NARA



▲ 1950. 7. 24. 경북 예천, 평화롭던 마을에 전차가 들어오면 온 마을이 불바다가 된다.

 

 

 

▲ 1951. 7. 6. 서울, 폐허의 잿더미 속에 시장은 열리다.
ⓒ NARA
▲ 1951. 7. 18. 개성, 개성의 저잣거리.
ⓒ NARA
▲ 1951. 1. 26. 북한군 어린 병사들이 쉬고 있다.
ⓒ NARA
▲ 1951. 3. 5. 품삯을 받는 노무자들.
ⓒ NARA
▲ 1951. 3. 4. 한강 부근 마을에서 아이들이 박격포 소리에 귀를 막고 있다.
ⓒ NARA
▲ 1951. 4. 4. 폐허가 된 춘천.
ⓒ NARA
▲ 1951. 4. 4. 춘천, 북한강 유역에 전차를 몰고 온 이방인들.
ⓒ NARA
▲ 1951. 10. 20. 포로들의 긴 행렬
ⓒ NARA
▲ 1951. 3. 26. 북한군과 중공군에게 투항을 권유하는 전단.
ⓒ NARA
▲ 1951. 7. 10. 천안, 교통사고로 트럭이 전복됐다.

 

 

출처 : 용촉고을
글쓴이 : 가을하늘 원글보기
메모 :

 


▲ 1950. 9. 27. 전주. 학살된 시신의 사진만 남아 있고 가해자에 대한 기록은 전혀 없다. 구천을 헤매는 그들의 원혼에 묵념을 드린다.
▲ 1950. 9. 27. 전주. 우리 아버지는 어디에 계실까?
▲ 1950. 9. 29. 충주. 마을 주민들이 학살의 현장을 파서 시신을 확인하고 있다
▲ 1950. 9. 30. 진주. 한 소년이 씨레이션 상자를 조심스럽게 들여다 보고 있다
▲ 1950. 10. 10. 함흥 부근의 한 동굴에서 300여 명의 시신을 꺼내고 있다
▲ 1950. 10. 10. 함흥. 가족을 찾아 헤매면서 울부짖는 아낙네들
▲ 1950. 10. 13. 함흥. 우물에서 학살된 시신을 건져 올리고 있다.
▲ 1950. 10. 19. 함흥. 시신더미에서 가족을 찾고 있다.
▲ 1950. 10. 19. 함흥. 지아비의 주검 앞에서 오열하는 지어미.
▲ 1950. 10. 19. 함흥. 학살에는 남녀가 없었다

 


▲ 1949. 3. 제5차 소련 최고회의에 참석한 김일성(오른쪽 끝)과 박헌영(김일성 바로옆 안경쓴 사람)

▲ 1945. 8. 평양 붉은 광장에서 젊은이들이 스탈린과 김일성을 환호하고 있다.

▲ 1949. 9. 6. 미군사고문단이 국방경비대에서 기관총 훈련을 지도하고 있다.

▲ 1950. 7. 7.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유엔파병안을 통과시키고 있다.

▲ 1950. 8. 미군 포로들이 서울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 1950. 8. 원산, 북한군 선전 벽보.

▲ 1950. 9. 16. 인천상륙 적전 후 텅빈 시가지에서 한 소녀가 울고 있다.

▲ 1950. 11. 21. 압록강변의 혜산진까지 올라간 국군과 유엔군.

▲ 1950. 12. 3. 평양, 부서진 대동강 철교를 넘어 남하하는 피난민 행렬.

▲ 1950. 12. 9. 중공군의 참전으로 혹한 속에 후퇴하는 유엔군.

 


▲ 1950. 9. 30. 전화(戰禍)로 폐허 가 된 대전역

▲ 1950. 11. 24. 불타버린 서울역 앞 세브란스 병원

▲ 1950. 10. 7. 불타고 있는 김포 비행장

▲ 1950. 10. 18. 전화에 그을린 중앙청

▲ 1950. 10. 18. "국파산하재(國破山河在)", 멀리 북악산과 중앙청 돔이 보인다.

▲ 1950. 9. 20. 왜관, 낙동강 철교 복구 공사

▲ 1950. 10. 12. 미조리호 군함에서 청진항을 향해 함포사격을 가하고 있다

▲ 1950. 10. 20. 400여 명의 낙하산부대가 평양부근에 투하되고 있다

▲ 1950. 12. 18. 북한군에게 뿌린 귀순 권유 전단

▲ 1950. 11. 2. 적십자사에서 피난민에게 구호물자를 나눠주고 있다

 

 

 


▲ 1950. 10. 13. 경기도 파주, 참혹하게 학살된 시신들


▲ 1950. 11. 1. 서울 중앙청 앞 지금의 문화관광부 자리, 주민들이 폐허더미에서 땔감이나 돈이 될만한 물건을 찾고 있다.


▲ 1950. 11. 2. 원산의 한 성당, 폐허가 된 성당 내부를 신도들이 청소하고 있다


▲ 1950. 11. 6. 북한의 어느 농촌, 탈곡한 볏단을 달구지에 싣고 있다

▲ 1950. 11. 6. 북한의 어느 농촌, 전란 중에도 추수를 하고 있다. 바람개비로 알곡을 가리는 농부들


▲ 1950. 11. 19. 북한의 한 지하 무기 공장 내부


▲ 1950. 11. 20. 국경지대, 미군들이 소달구지로 보급품을 운반하고 있다.


▲ 1950. 11. 18. 미군 폭격으로 파괴된 흥남비료공장


▲ 1950. 11. 18. 미군 폭격으로 파괴된 흥남송전소


▲ 1950. 11. 23. 함경도 갑산, 미군 폭격으로 성한 집이 드물다


▲ 1950. 11. 1. 황해도 평산에 진격하는 유엔군을 두 여인이 전신주 뒤로 불안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 1950. 12. 4. 평양을 떠나 대동강을 건너 후퇴하는 국군


▲ 1950. 12. 6. 황해도 사리원, 남행하는 피난열차에 피난민들이 몰려들고 있다.


▲ 1950. 12. 8. 경기도 금촌, 38선을 넘어 후퇴하는 유엔군 차량들.


▲ 1950. 12. 9. 끊어진 한강철교.


▲ 1950. 12. 10. 포화에 불타는 마을.


▲ 1950. 12. 12. 한강 부교를 통하여 후퇴하는 차량들.


▲ 1950. 12. 12. 피난민들이 한강을 나룻배로 건너고 있다 .


▲ 1950. 12. 12. 유엔군들이 인천항을 통해 장비들을 후송시키고 있다.


▲ 1950. 12. 12. 유엔군들이 후퇴하면서 다리를 폭파시키고자 폭약을 장치하고 있다.


▲ 1950. 12. 3. 평양, 남행 피난민 행렬 속의 한 소녀.

▲ 1950. 12. 10. 중공군의 참전으로 강추위 속에 후퇴 행렬. 한 병사가 너무 추운 날씨로 모포를 뒤집어쓰고 있다.

▲ 1950. 12. 12. 흥남부두, LST 함정에 가득 탄 군인과 피난민들. 미처 함정에 오르지 못한 피난민들이 발을 동동거리고 있다. 대부분의 피난민들은 원자탄이 투하된다는 말에 피난 행렬에 나섰다고 한다. 몇 날의 피난 길이 50년이 더 지났다.

▲ 1950. 12. 14. 서울역, 남행 피난민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 1950. 12. 16. 흥남, 국군과 유엔군들이 후퇴하고자 부두에서 수송선을 기다리고 있다.

▲ 1950. 12. 27. 흥남, 얕은 수심으로 수송선이 해안에 닿을 수 없자 유엔군들이 바다에 뛰어들어 LST로 가고 있다.

▲ 1950. 12. 24. 흥남, 유엔군들이 철수 후 부두를 폭파시키고 있다.

▲ 1950. 12. 19. 묵호, 흥남에서 철수한 장비를 묵호(동해)항에 내리고 있다.

▲ 1950. 12. 28. 서울, 피난민들이 강추위 속에 한강 얼음을 깨트리며 나룻배로 남하하고 있다.

▲ 1951. 1. 5. 피난 행렬 속의 소년과 소녀. 소달구지가 힘겨워하자 힘을 보태고 있다.

 


▲ 1950. 8. 20. 경북 어느 지역, 아이를 업고 머리에는 가재도구를 이고 있는 여인은 내 고모 아니면 이모일지도. "같이 갑세" "퍼뜩 안 오고 머하노. 쌕쌕이가 벼락친데이. 싸게싸게 따라 오이라."

▲ 1950. 8. 23. 경남 함안, 기차를 타기 위해 늘어선 피난민들. 할아버지 등에는 온갖 가재도구가 짊어져 있고, 오른 손아귀에는 손자가 잡혀 있다.

▲ 1950. 8. 23. 경남 함안, 기차표를 사고자 늘어선 피난민들로 남녀노소없이 피난 봇짐을 이고 지고 있다.

▲ 1950. 8. 23. 경남 함안, 언제 올지 모르는 기차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 1950. 8. 24. 경북 낙동강 유역, 꼭 필자의 고향(구미) 마을 같다. 온갖 가재도구를 머리에 이거나 등에 진 피난민 행렬.

▲ 1950. 8. 24. 경북 낙동강 유역, 뙤약볕 속의 피난 길. 어데로 가야 목숨을 부지할지.

▲ 1950. 8. 24. 경북 왜관 부근. "피난 간 새 지발 집이나 무사해야 할 건데..." 뒤돌아 보고 또 돌아보고...

▲ 1950. 8. 24. 경북 낙동강 유역, "할배, 어데 갑니까?" "나 집에 간다." "못 갑니다." "와! 나 죽어도 내 집에서 죽을란다. 어이 비켜라."

▲ 1950. 8. 25. 장소 미상, 기총소사에 쓰러진 피난민들. "이렇게 객사할 바에야 차라리 집에서 죽을 걸."

▲ 1950. 9. 6. 경북 칠곡 다부동, 가도 가도 끝없는 피난 행렬. 위정자를 잘못 만난 불쌍한 무지렁이 핫바지 백성들이여!



▲ 1950. 10. 11. 서울 교외, 부서진 북한군 전차 위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다.

▲ 1950. 11. 1. 전란으로 폐허가 된 서울


 

▲ 1950. 12. 28. 끊어진 한강 철교, 오른쪽은 임시로 만든 부교.


 

▲ 1951. 1. 3. 한강 철교 부근의 언 강을 피난민들이 걸어서 건너고 있다.


 

▲ 1951. 3. 16. 서울 중구의 수도극장(현 스카라 극장) 일대


 

▲ 1951. 3. 16. 하늘에서 내려다 본 중앙청 광화문 세종로 일대.


 

▲ 1951. 3. 16.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왕십리 일대, 멀리 고려대학교 건물이 보인다.

 

▲ 1951. 3. 16. 하늘에서 내려다 본 서울역 일대


 

▲ 1951. 3. 16. 하늘에서 내려다 본 중앙청, 경복궁, 수송동, 팔판동 일대.

 

▲ 1951. 3. 19. 구호 양곡을 먼저 탄 소년과 양곡을 타기 위해 줄을 선 주민들.

▲ 1950. 10. 12. 원산. 학살된 시신들.


▲ 1950. 12. 11. 고단한 피난길.


▲ 1950. 12. 16. 폭격에 엿가락처럼 휘어진 철교.


▲ 1950. 12. 17. 보급품을 실은 화물 열차가 폭격에 불타고 있다.


▲ 1950. 12. 18. 대구. 훈련소에서 교육을 마친 신병들이 전선으로 가고자 대구역전 광장에 집결해 있다.


▲ 1950. 12. 18. 전방으로 떠나는 신병들.


▲ 1950. 12. 18. 대구역. "총알을 요리조리 잘 피해서 어예든동 살아오이라." '어무이 걱정 꽉 붙들어 매이소. 어무이 아들 아잉기요. 내는 꼭 살아돌아올 깁니다."


▲ 1950. 12. 21. 경북 왜관. 낙동강 철교 어귀에 부서진 북한군 소련제 탱크.


▲ 1951. 1. 20. 아버지와 아들의 피난길, 다른 가족은 전란에 모두 죽었다.

 


▲ 1950. 6. 18. 6.25 한국전쟁 발발 일주일 전 의정부 북방 38 접경에서 미 국무장관 덜레스(가운데) 일행이 38선 너머 북쪽을 살피고 있다(덜레스 오른쪽 신성모 국방장관).
▲ 1950. 6. 18. 미 국무장관 덜레스 일행이 38 접경 지대를 살피고 있다.
▲ 1950. 7. 한미 수뇌부들이 환담하고 있다(왼쪽부터 조병옥 내무장관, 신성모 국방장관, 무초 주한 미대사, 임병직 외무장관, 워커 주한 미군 사령관).
▲ 1950. 7. 26. 맥아더 장군이 전선을 시찰하는 중, 종군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오른쪽 워커 장군.
▲ 1950. 8. 15. 이승만 대통령과 신성모 국방장관이 8.15 경축식을 끝낸 후 임시 국회의사당인 문화극장을 떠나고 있다. 신 국방장관은 “아침은 서울에서 먹고, 점심은 평양에서…” 라고 상대의 전력도 모른 채 큰 소리쳤으나 6.25 발발 후 서울시민은 팽개치고 몰래 서울을 빠져나갔다.
▲ 1950. 8. 18. 백선엽 장군(가운데)이 미군과 함께 작전을 세우고 있다.
▲ 1950. 9. 16. 구포 신병 훈련소에서 훈시하는 이승만 대통령.
▲ 1951. 2. 7. 전선을 시찰하는 맥아더 장군.
▲ 1951. 2. 15. 대한민국 해상 이동방송선(HLKT)을 방문한 장면 총리 일행.
▲ 1951. 9. 콜트 미 8군 부사령관의 이임식장(왼쪽부터 허정, 콜트. 무초 주한 미대사).
▲ 1950. 8. 25. 부산 근교의 임시 포로수용소에서 포로들이 심문을 받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 1950. 8. 28. 유엔군에게 잡힌 북한측 포로.


▲ 1950. 10. 영동, 생포한 북한 측 유격대원들

▲ 1950. 11. 15. 영흥, 유엔군들이 생포한 유격대원들

▲ 1951. 1. 16, 부산, 북한 측 여자포로들.

▲ 1951. 2. 26. 포로들이 임시 수용소로 실려와서 내리고 있다.

▲ 1951. 2. 26. 부산, 근교의 임시 포로수용소 전경.

▲ 1950. 3. 9. 유엔군들이 포로들에게 DDT를 살포하고 있다.
▲ 1950. 3. 7. 미군이 중공군 포로의 소지품을 검사하고 있다.

▲ 1951. 5. 10. 미군들이 중공군 포로들에게 DDT를 살포하고 있다.


▲ 1951. 5. 7. 거제포로수용소 전경.

▲ 1951. 5. 29. 화천, 중공군 포로들.

▲ 1951. 5. 29. 13세인 중공군 소년병.

▲ 1951. 6. 26. 거제, 포로수용소에서 포로들이 예배를 보고 있다.

▲ 1953. 7. 27. 유엔군 측에서 송환되는 포로들에게 알리는 지시문.

▲ 1953. 10. 11. 북한측 포로가 자기 의사를 분명히 밝히면서 북으로 돌아가고 있다.

▲ 1954. 2. 16. 귀환을 거부하는 북한 측 포로를 북측 대표들이 설득하고 있다.

 

출처 : 용촉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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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한국전 30편


여기 실린 사진은 미국 메릴랜드 주에 있는 NARA(국립문서기록보관청,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5층 사진자료실에 보관된 'KOREA WAR(한국전쟁)' 파일의 사진들입니다. 날짜와 장소는 사진 뒷면에 있는 영어원문을 따랐음. 이 사진이 기록물이 부족한 우리나라에 자료로 남기를 바랍니다. 생사가 교차되는 전선에서 귀한 사진을 남긴 카메라맨들에게 경의를 드립니다.
시리즈로 #1 에서 #30까지 연재로 작성한 것을 한 화면에 올렸습니다.  특히 6.25를 겪은 6학년세대들에게는 직접 피부에 와 닿는 생생함 그대로 입니다. 이 자료는 "Oh My News" 에 박도(Park Do)기자가 올린 글 소개입니다.(註:再具成)



▲ 1950. 10. 22. 평양, 북한 주민의 학살 현장. 누가 그들을 죽였을까?

▲ 1950. 11. 2. 거리에 버려진 아이들이 트럭에 실려 고아원으로 가고 있다. 눈망울이 초롱한 아이는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 1950. 11. 11. 바지 저고리들의 포로들. 총이나 한 번 제대로 잡아보고 포로가 되었는지?

▲ 1950. 8. 12. 북한군 포로.

▲ 1950. 8. 10. 폭격으로 불타는 마을

▲ 1950. 8. 10. 핫바지들을 인솔하는 미 해병대.

▲ 1950. 7. 29. 경북 영덕, 포화에 쫓기는 피난민.

▲ 1950. 7. 29. 경북 영덕, 남자는 등에 지고 여자는 머리에 이고 지향없이 떠나는 피난민 행렬.


▲ 1950. 7. 29. 경북 영덕, 논두렁에 머리를 처박고 죽은 북한군 병사


▲ 1950. 7. 29. "뜨거운 전우애" 한 병사가 부상당한 전우를 업어가고 있다


▲ 1950. 7. 29. 마을 소년들이 주먹밥을 만들어 군인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 1950. 7. 29. 야간 전투 후 주간 취침.

▲ 1950. 7. 29. 취침 후 병기 손질

▲ 1950. 8. 4. 피난민들의 보금자리 산동네 판자촌

▲ 1950. 8. 8. 누가 이 아이를 버리게 했을까?

▲ 1950. 8. 8. 다리 아래 피난민 움막

▲ 1950. 8. 9. 임시 포로수용소

▲ 1950. 8. 2. 금강철교

▲ 1950. 8. 3. 뙤약볕 속에 전선으로 가는 국군 행렬

▲ 1950. 8. 3. 한국전쟁 무렵의 부산항, 멀리 영도가 환히 보인다.

▲ 1950. 7. 29. 경남 진주 부근에서 생포한 빨치산(?). 원문은 포로로 되어 있다.

▲ 1950. 12. 16. 흥남부두. 후퇴하려고 수송선을 기다리는 병사들

▲ 1950. 12. 24. 유엔군 후퇴 후 텅 빈 흥남부두

▲ 1950. 12. 24. 유엔군 후퇴 후 불타는 흥남항


▲ 1950. 12. 27. 인천항에서 출발해 부산항에 도착한 피난민들

▲ 1950. 1. 3. 1·4 후퇴를 앞두고 불타고 있는 서울 시가지

▲ 1951. 1. 5. 1.4 후퇴 피난 행열
▲ 1951. 1. 5. 언 한강을 피난민들이 걸어서 건너고 있다
▲ 1951. 1.4. 한강나루터에서 건너야 할 강을 바라보는 피난민 아이들
▲ 1951. 1. 4. 한강 임시 부교
▲ 1950. 12. 29. 양평 , 생포된 포로들
▲ 1950. 11. 29. 최전방의 간호사들
▲ 1951. 1. 6. 수원역에서 남행열차를 기다리는 피난민들
▲ 1951. 1. 5. 한미 합작의 한국군 병사 장비. 신발, 겉옷 , 모자 : 한국제. 코트, 소총, 탄환 : 미제
▲ 1951. 1. 5.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고 미군 부대에 몰려온 한국의 노무자들
▲ 1951. 1. 4. 무개화차에 몰린 피난민들

▲ 1951. 1. 16. 대구 근교 신병훈련소에서 신병들이 M1 소총 사격 교육을 받고 있다.

▲ 1951. 1. 4. 대구 근교 신병훈련소에서 신병들이 PRI(사격술 예비훈련)을 받고 있다.

▲ 1950. 11. 5. 국군과 유엔군이 수복한 북한의 어느 지역(평산)에서 주민들이 지역 대표와 치안대장을 뽑고 있다. 그들 대표는 무슨 색깔의 완장을 찼을까?

▲ 1951. 1. 5. 서울. 꽁꽁 언 한강을 피난민들이 조심조심 건너 남하하고 있다.

▲ 1950. 9. 22. 전쟁에는 2등이 없다. 포로가 되는 순간부터 치욕이다. 미군들이 생포된 포로의 온 몸을 수색하고 있다.

▲ 1950. 9. 20. 미군이 인민군 포로들을 발가벗긴 채 수색하고 있다.

▲ 1950. 9. 17. 인천. 유엔군 인천상륙작전 후 함포사격 포화에 무너지고 그을린 인천시가지

▲ 1950. 9. 18. 인천에 상륙하기 위해 전함에서 병사들이 하선하고 있다.

▲ 1951. 5. 28. 38선 부근 6마일 남쪽 마을에서 탱크의 포화소리에 귀를 막는 소년들. 이들의 누더기 바지 차림이 그 무렵 소년들의 대표적 옷차림이다.
 


▲ 1950. 8. 18. 애송이 북한군 소년 포로를 미군 포로심문관이 취조하고 있다. 곁에는 통역 겸 여비서라고 표기돼 있다. 엄마 젖 떨어진 지 얼마나 되었을까?

▲ 1950. 8. 18. 임시 포로수용소에서 포로들의 신상명세서를 만들고 있다

▲ 1950. 8. 18. 포로수용소 전경

▲ 1950. 8. 18. 포로수용소 천막 안에서 밥을 먹고 있다

▲ 1950. 8. 18. 포로들이 줄을 서서 밥을 타고 있다

▲ 1950. 8. 11. 그해 여름 피난민들의 움막. 필자도 이런 곳에서 지냈던 기억이 난다.

▲ 1950. 8. 13. 잠깐의 휴식시간에 LMG(기관총) 병기 손질을 하고 있다


▲ 1950. 8. 15. 피난민 행렬

▲ 1950. 8. 15. 창녕 남지철교. 국군의 최후 방어선으로 핏빛으로 강물이 물들 만큼 피아 엄청난 희생을 치렀던 격전의 현장이었다.

 

▲ 1950. 8. 24. 모정 무한, 젖을 먹이는 어머니
▲ 1950. 8. 23. 머리에 이고 등에 업고 앞에 붙들고... 고단한 피난 행렬.
▲ 1950. 8. 18. 낙동강 전선에서 쌕쌕들이 폭격을 가하고 있다.
▲ 1950. 8. 25. 폭격에 불타고 기총소사에 죽어가다
▲ 1950. 8. 15. 마산 부근, 피난민들이 배를 기다리고 있다
▲ 1950. 8. 15. 전란으로 폐허가 된 마을
▲ 1950. 8. 22. 불을 뿜는 전함
▲ 쌕쌕이의 융단 폭격으로 초토가 된 경북 왜관
▲ 1951. 1. 2. 누가 이 여인을 모르시나요? 부산 임시 포로수용소에서
▲ 1950. 8. 포항 부근의 한 마을이 포화에 불타고 있다


▲ 1950. 9. 16. 인천시가지에서 생포한 북한군들

▲ 1950. 9. 16. 월미도에 나뒹구는 북한군 시신들

▲ 1950. 9. 15. 인천에서 생포한 포로들

▲ 1950. 9. 17. 서울 진격 작전

▲ 1950. 9. 23. 서울 탈환을 눈앞에 둔 노량진에서 바라본 끊어진 한강 철교

▲ 1950. 9. 25. 한강 도하 작전

▲ 1950. 9. 29. 미군 전차가 서울 시내 중심가로 들어오고 있다.
▲ 1950. 9. 27. 경인가도에서 국군 수복을 환영하는 흰옷 입은 사람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북한군이 내려왔을 때는 또 다른 깃발을 흔들어야 했던 불쌍한 백성들
▲ 1950. 10. 1. 서울 시청 일대
▲ 1950. 10. 1. 소공동 일대
▲ 1950. 10. 1. 남대문에서 바라본 서울역
▲ 1950. 10. 1. 반도호텔(지금의 롯데호텔)에서 바라본 서울 시가지, 멀리 중앙청이 보인다.
▲ 1950. 10. 1. 반도호텔에서 바라본 을지로
▲ 1950. 9. 30. 서울의 아침, 폐허가 된 시가지에 사람들이 부산하게 오가고 있다
▲ 1950. 9. 29. 서울 탈환 환영대회 직전의 중앙청 홀, 이승만 대통령 내외와 맥아더 장군
▲ 1950. 9. 29. 유엔 깃발로 펄럭이는 중앙청 광장, 서울 탈환 환영대회가 끝난 직후 바로 옆 건물이 불타고 있다


▲ 1945. 9. 9. 미군이 서울에 입성하고 있다

▲ 1945. 9. 9. 미군들이 서울시민들의 환영 인파에 싸여 있다

▲ 1946. 1. 16. 미소공동위원회에서 소련측 대표가 기조 연설을 하고 있다

▲ 1947. 5. 25. 개성 인근의 38선 미군 초소, 그때만 해도 요란한 철조망은 없었다


▲ 1948. 5. 10.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실시된 5. 10 총선거에 유권자들이 투표하고 있다

▲ 1948. 5. 10. 선거 방해 사범으로 체포된 5인, 맨 왼쪽 여인은 장택상을 암살하려다가 체포되었다고 기록돼 있다

▲ 1948. 5. 31. 국회 개원식 날 국회 의사당 앞에서 서북청년단들이 소련 철수를 주장하는 데모를 하고 있다

 

휴전회담

 

▲ 1951. 7. 8. 개성, 임시 정전회담 장소였던 한 한옥. 이 장소는 그해 10월 24일까지 사용되다가 유엔군 측 요구로 10월 26일부터 판문점으로 옮겨졌다.

▲ 1951. 7. 8. 개성, 정전회담으로 가는 북한 측 대표와 통역관 리차드 언더우드(Richard Underwood).

▲ 1951. 7. 8. 개성, 헬기에서 내린 유엔군 측 정전회담 실무자를 맞이하는 북측 실무자들.

▲ 1951. 7. 8. 정전회담을 위한 유엔군 측과 북측의 첫 만남.

▲ 1951. 7. 10. 개성 정전회담을 마치고 나오는 유엔군 측 대표.

▲ 1951. 7. 15. 개성, 정전회담에 열띤 취재를 벌이는 기자단.

▲ 1951. 7. 18. 북측이 제공한 유엔군 측 대표 휴게소.

▲ 정전회담장에 나타난 북측 대표. 왼쪽 두 사람 중공군 대표, 가운데 남일 대장, 다음 이상조 소장.

▲ 1951. 7. 27. 문산, 정전회담 유엔군 측 한국인 옵서버들(왼쪽부터 변영태, 손원일, 김정렬, 유재홍, 백선엽)


▲ 1951. 7. 11. 서울, 서울시민들이 덕수궁에서 정전회담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 1951. 7. 18. 개성, 정전회담장 밖에서 유엔군 측 기자와 중공군 통역관이 담소하고 있다.

▲ 1952. 12. 4. 아이젠하워 대통령 당선자가 취임에 앞서 한국전선을 시찰하고 있다. 뒤에 탄 사람이 클라크 주한 유엔사령관.

▲ 1953. 4. 11. 판문점 정전회담 연락장교회의에서 부상병 포로 교환 합의서에 양측이 서명하고 있다.

▲ 1953. 5. 8. 정전회담 북한 측 남일 대표가 회담장을 떠나고 있다.

▲ 1953. 6. 11. 부산, 학생들이 정전회담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 1953. 7. 26.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정전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 1953. 7. 28. 개성, 중공군 총사령관이 정전 협정 조인에 서명하고 있다.

▲ 1953. 7. 29. 미 해병대 병사들이 정전협정 소식에 환호하고 있다.
▲ 1951. 11. 27. 판문점 정전회담장에서 북한 측 장춘산 대표와 유엔군 측 머레이 대표가 지도를 펴고 휴전선 획정을 협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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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 미스코리아


      제 1회 미스코리아

      (1957년 5월 19일 서울 명동 시립극장)초대 미스코리아 眞 박현옥 (23세 서울출신)


      제 2회 미스코리아(1958년 5월 2일 대한극장)

      2회 미스코리아 眞오금순


      제 3회 미스코리아(1959년 5월 25일 대한극장)

      3회 미스코리아 眞 오현주



      제 4회 미스코리아(1960년 5월 24일 서운운동장(현 동대문운동장) 특설무대)

      4회 미스코리아 眞 손미희자



      제 5회 미스코리아(1961년 6월 23일 서울운동장(현 동대문운동장) 특설무대)

      5회 미스코리아 眞 서양희



      제 6회 미스코리아1962년 6월 18일 창경원(현 창경궁) 특설대회장)

      6회 미스코리아 眞 서범주



      제 7회 미스코리아(1963년 6월 21일 서울 시민회관)

      7회 미스코리아 眞 김명자



      제 8회 미스코리아(1964년 5월 28일 경복궁 특설무대)

      8회 미스코리아 眞 신정현



      제 9회 미스코리아(1965년 6월 18일 경복궁 특설무대)

      9회 미스코리아 眞 김은지



      제 10회 미스코리아(1966년 6월 15일 경복궁 특설무대)

      10회 미스코리아 眞 윤귀영




      제 11회 미스코리아(1967년 6월 13일 서울 시민회관)

      11회 미스코리아 眞 홍정애


      제 12회 미스코리아(1968년 5월 29일 장충 체육관)

      12일 미스코리아 眞 김윤정



      제 13회 미스코리아(1969년 5월 1일 장충 체육관)

      13회 미스코리아 眞 임현정



      제 14회 미스코리아(1970년 4월 6일 서울 시민회관)

      14회 미스코리아 眞 유영애



      제 15회 미스코리아(1971년 4월 11일 서울 시민회관)

      15회 미스코리아 眞 노미애




      제 16회 미스코리아(1972년 4월 22일 장충 체육관)

      16회 미스코리아 眞 박연주



      제 17회 미스코리아(1973년 5월 20일 장충 체육관)

      17회 미스코리아 眞 김영주


      제 18회 미스코리아(1974년 5월 19일 장충 체육관

      18회 미스코리아 眞 김은정



      제 19회 미스코리아(1975년 5월 13일 장충 체육관)

      19회 미스코리아 眞 서지혜


      제 20회 미스코리아(1976년 5월 11일 장충 체육관)

      20회 미스코리아 眞 정경숙



      제 21회 미스코리아(1977년 5월 14일 장충 체육관)

      21회 미스코리아 眞 김성희



      제 22회 미스코리아(1978년 4월 28일 장충 체육관)

      22회 미스코리아 眞 손정은


      제 23회 미스코리아(1979년 05월 19일 장충 체육관)

      23회 미스코리아 眞 서재화



      제 24회 미스코리아(제 1980년 5월 15일 세종문화 회관 대강당)

      24회 미스코리아 眞 김은정



      제 25회 미스코리아(1981년 5월 16일 세종문화 회관 대강당)

      25회 미스코리아 眞 이은정



      제 26회 미스코리아(1982년 5월 15일 세종문화 회관 대강당)

      26회 미스코리아 眞 박선희



      제 27회 미스코리아(1983년 5월 12일 세종문화 회관 대강당)

      27회 미스코리아 眞 임미숙


      제 28회 미스코리아(1984년 5월 18일 세종문화 회관 대강당)

      28회 미스코리아 眞 최영옥


      제 29회 미스코리아(1985년 5월 18일 세종문화 회관 대강당)

      29회 미스코리아 眞 배영란



      제 30회 미스코리아(1986년 5월 16일 세종문화 회관 대강당)

      30회 미스코리아 眞 김지은




      제 31회 미스코리아(1987년 5월 12일 세종문화 회관 대강당

      31회 미스코리아 眞 장윤정



      제 32회 미스코리아(1988년 5월 21일 세종문화 회관 대강당

      32회 미스코리아 眞 김성령



      제 33회 미스코리아(1989년 5월 13일 세종 문화 회관 대강당)

      33회 미스코리아 眞 오현경



      제 34회 미스코리아(1990년 5월 19일 세종문화 회관 대강당)

      34회 미스코리아 眞 서정민


      제 35회 미스코리아(1991년 5월 11일 세종문화 회관 대강당)

      35회 미스코리아 眞 이영현



      제 36회 미스코리아(1992년 5월 11일 부산 KBS홀)

      36회 미스코리아 眞 유하영



      제 37회 미스코리아(1993년 5월 22일 세종문화 회관 대강당)

      37회 미스코리아 眞 궁선영



      제 38회 미스코리아(1994년 5월 24일 세종문화 회관 대강당)

      38회 미스코리아 眞 한성주



      제 39회 미스코리아(1995년 5월 13일 세종문화 회관 대강당)

      39회 미스코리아 眞 김윤정



      제 40회 미스코리아(1996년 5월 25일 세종문화 회관 대강당)

      40회 미스코리아 眞 이은희



      제 41회 미스코리아(1997년 5월 17일 세종문화 회관 대강당)

      41회 미스코리아 眞 김지연



      제 42회 미스코리아(1998년 5월 23일 세종문화 회관 대강당)

      42회 미스코리아 眞 최지현



      제 43회 미스코리아(1999년 5월 23일 세종문화 회관 대강당)

      43회 미스코리아 眞 김연주



      제 44회 미스코리아(2000년 5월 28일 세종문화 회관 대강당)

      44회 미스코리아 眞 김사랑



      제 45회 미스코리아(2001년 5월 27일 세종문화 회관 대강당)

      45회 미스코리아 眞 김민경



      제 46회 미스코리아(2002년 5월 19일 세종문화 회관 대강당)

      46회 미스코리아 眞 금나나



      제 47회 미스코리아(2003년 5월 21일 리틀엔젤스예수로히관)

      47회 미스코리아 眞 최윤영



      제 48회 미스코리아(2004년 6월 13일 올림픽공원 올림픽홀)

      48회 미스코리아 眞 김소영



      제 49회 미스코리아(2005년 6월 30일 그랜드 힐튼 서울컨벤션센터)

      49회 미스코리아 眞 김주희



      제 50회 미스코리아(2006년 8월 3일)

      50회 미스코리아 眞 이하늬



      제 51회 미스코리아  (2007년 7월 27일 장소 :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51회 미스코리아  眞 이지선




      그외 잘 알려진 미스코리아 출신 연예인들...


       


[옮겨옴]

 

출처 : 용촉고을
글쓴이 : 가을하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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