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만 사랑노래


                                  황동규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늘 그대 뒤를 따르던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여기저기서 어린 날
우리와 놀아주던 돌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추위 가득한 저녁 하늘에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성긴 눈 날린다
땅 어디에 내려앉지 못하고
눈 뜨고 떨며 한없이 떠다니는
몇송이 눈
.................................................................

봄이 지척인가 싶었는데
아침부터 묵직하게 내려앉은
허공 따라
팔랑팔랑
가볍디 가볍게
봄 눈이 날린다.


하늘과 땅 사이를 맴돌며
언제까지나
바닥에
내려앉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이제 이별하자는가?
바닥에 내려앉은
흔적조차 말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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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별 하나


                               이성선


나도 별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외로워 쳐다보면
눈 마주쳐 마음 비쳐 주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도 꽃이 될 수 있을까
세상 일이 괴로워 쓸쓸히 밖으로 나서는 날에
가슴에 화안히 안기어
눈물짓듯 웃어 주는
하얀 들꽃이 될 수 있을까


가슴에 사랑하는 별 하나를 갖고 싶다
외로울 때 부르면 다가오는
별 하나를 갖고 싶다


마음 어두운 밤 깊을 수록
우러러 쳐다보면
반짝이는 그 맑은 눈빛으로 나를 씻어
길을 비추어 주는
그런 사람 하나 갖고 싶다
...........................................................................

'수천 시간을 혼자 살아온 것 같아.'


길가의 작은 풀꽃의 한마디가
늦가을 쓰르라미 소리처럼 귓속을 갉는다.


'나도 그래'


그 한마디를 꺼내지 못하고 차라리 눈을 감는다.
아, 아프다.


운명처럼 혼자 살아온 시간을 모두 되돌릴 수는 없겠지.
우리 삶이 단 한 번뿐임도 거스를 수는 없겠지.


오늘따라 유난히 차고 시린 해가 지는
저녁 어스름 무렵
길 위에 서서
가녀리게 흔들리는 너를 위해
잠시 두 손 모아 기도를 올릴 것이다.

아름다운 뿔

 

                         강신애
             

오늘밤 너와 함께 있고 싶어
비 때문이 아니야
풀냄새 때문도 아니야
나는 네 손끝 아니면
닫혀버리는 미모사.


귓속에 안개를 불어넣어줘
입속을 사막의 달빛으로 그득 채워줘
 

천년쯤 묻어둔 소금이야
너 없인 사악한 가루일 뿐이야
머리칼 속에
네 눈물을 떨어뜨려줘
 

소금에 눈물을 섞으면
깨지지 않는
푸른 물방울 보석이 되는 연금술
 

한순간, 아름다운 뿔에 찔려
영원한 흉터를 지니고 살아간들 어떻겠어?
...........................................................

절정의 끝에서 뿜어지는
푸른 독이
붉은 핏속에 퍼진다.


온 정신이 아득하다.
삶의 의미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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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비 내리고 - 편지 1

 

                                 나희덕


우리가 후끈 피워냈던 꽃송이들이
어젯밤 찬비에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힘드실까봐
저는 아프지도 못합니다
밤새 난간을 타고 흘러내리던
빗방울들이 또한 그러하여
마지막 한 방울이 차마 떨어지지 못하고
공중에 매달려 있습니다
떨어지기 위해 시들기 위해
아슬하게 저를 매달고 있는 것들은
그 무게의 눈물겨움으로 하여
저리도 눈부신가요
몹시 앓을 듯한 이 예감은
시들기 직전의 꽃들이 내지르는
향기 같은 것인가요
그러나 당신이 힘드실까봐
저는 마음껏 향기로울 수도 없습니다

..................................................................

사랑은 아프다.
사랑하니까 시리고 아프다.
사랑이려니 먹먹하고 시리고 아프다.


무엇 하나 온전한 것이 되기까지
인내하고 용서하고 다독여야하는 시간은
도대체 얼만큼인지


무엇 하나 지켜내기위해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하는 시간은
도대체 얼만큼인지


사랑은 먹먹하다.
사랑하니까 시리고 먹먹하다.
사랑이려니 아프고 시리고 먹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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