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류

 

                  이가림


언제부터
이 잉걸불 같은 그리움이
텅 빈 가슴속에 이글거리기 시작했을까


지난 여름 내내 앓던 몸살
더 이상 견딜 수 없구나
영혼의 가마솥에 들끓던 사랑의 힘
캄캄한 골방 안에
가둘 수 없구나


나 혼자 부둥켜안고
뒹굴고 또 뒹굴어도
자꾸만 익어가는 어둠을
이젠 알알이 쏟아놓아야 하리


무한히 새파란 심연의 하늘이 두려워
나는 땅을 향해 고개 숙인다


온몸을 휩싸고 도는
어지러운 충만 이기지 못해
나 스스로 껍질을 부순다


아아, 사랑하는 이여
지구가 쪼개지는 소리보다
더 아프게
내가 깨뜨리는 이 홍보석의 슬픔을
그대의 뜰에
받아주소서
.......................................................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
참 쉽고도 어려운 일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
참 쉽고도 어려운 일


오늘을 감사하는 일
참 쉽고도 어려운 일


가슴에 희망을 품고 사는 일
참 쉽고도 어려운 일


오직 너를 사랑하고
너만을 기다리며
오늘 너와의 하루에 감사하며
혹시 너와 함께 할
내일에 대한 희망을 품는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일
참 쉽고도 안타까운 일


하지만...
참 행복할지도 모르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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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시

                        김남조


가고 오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더 기다리는 우리가 됩시다
 

더 많이 사랑했다고 해서
부끄러워 할 것은 없습니다
 

더 오래 사랑한 일은
더군다나 수치일 수가 없습니다
 

요행히 그 능력이 우리에게 있어
행할 수 있거든


부디 먼저 사랑하고
더 나중까지 지켜주는 이가 됩시다
 

사랑하던 이를 미워하게 되는 일은
몹시 슬프고 부끄럽습니다
 

설혹 잊을 수 없는
모멸의 추억을 가졌다 해도
한때 무척 사랑했던 사람에 대하여
 

아무쪼록
미움을 품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

다소 외지고
좁다란 길이라도 괜찮다.
내게 남은 길이
번잡스럽거나
소란스럽지 않았으면...
단 하루를 살아도

곁에 없어도


                      조병화


길을 다하여 먼 날
우리 서로 같이 있지 못해도
그 눈 나를 찾으면
그 속에 내가 있으리


목숨 다하여 먼 날
우리 서로 같이 있지 못해도
그 생각 나를 찾으면
그 속에 내가 있으리

.............................................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어.
세월이 흘러가면 모두가 변하지.


그 사람의 모습이 그렇고
그 사람의 주변이 그렇고
그 사람의 모든 것이 그렇고
그 사람 또한 그러하지.


단 하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지.
아니, 어쩌면 제발 변하지 않았으면 하지.


내 진심으로 그 사람에게 전했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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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


국어 교과서에 실려서 열심히 밑줄 쫘악... 해가면서 배우고 외웠던 시죠?

넓게 보면 자아성찰의 시, 좀 좁은 의미로 파악한다면 연시(戀詩)의 대표격인 시입니다.

 

사람이 사랑을 한다는 것은 어쩌면 '자신의 존재의 발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삶의 이유도 바로 자아를 발견하고자 하는 것이겠지요.

자아를 성취하고 실현하지는 못하더라도 말입니다... ^^

그리보면 자아성찰과 사랑은 그리 멀지 않군요...^^...

사랑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사랑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게 되는 것이로군요.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 '이름'...

 

다시 되뇌어도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지금 당신은 누구의 이름을 부르시렵니까?

그리고 지금 당신은 그 누구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 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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