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오후
김선우
늙은네들만 모여앉은 오후 세시의 탑골공원
공중변소에 들어서다 클클, 연지를
새악시처럼 바르고 있는 할마시 둘
조각난 거울에 얼굴을 서로 들이밀며
클클, 머리를 매만져주며
그 영감탱이 꼬리를 치잖여- 징그러바서,
높은 음표로 경쾌하게
날아가는 징 그 러 바 서,
거죽이 해진 분첩을 열어
코티분을 꼭꼭 찍어바른다
봄날 오후 세시 탑골공원이
꽃잎을 찍어놓은 젖유리창에 오룽어룽,
젊은 나도 백여시처럼 클클 웃는다
엉덩이를 까고 앉아
문밖에서 도란거리는 소리 오래도록 듣는다
바람난 어여쁜 엄마가 보고싶다.
....................................................................
흩날리는 꽃잎보다 가벼운 말
마음대로 덧칠하고 허공에 날려버리는...
젊은 날, 그렇게 마음 졸이며 기다렸던 외출은
내가 보았던 가장 화려했던 꽃잎 흩날리던 날
꽃잎보다 가벼이 흩어졌지.
다시 마주칠 일 없을 거라는
낡은 꽃잎 같은 너의 말을
아주 오래 오래 낡은 시집에 넣어두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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