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안으로 열리는 봄날의 동화(童話)


                                                        정원

 
봄은 아이들 시린 손끝에서 왔다
 

골목 안은,
어김없이 가위질 소리로 짤랑거리고
덩달아 온 세상 흰 밥풀꽃 가득한 뻥튀기 소리
와아, 골목 안 가득 풀려나오면
햇살처럼 환하게 웃음이 되는 아이들
달그락달그락 알사탕 같은 꿈들은 호주머니 속 숨겨둔
꽃망울처럼
시린 바람 끝에서도 붉었다
햇살에 투영되는 꽃무늬, 유리알 속엔
알록달록 봄을 틔우는 화원(花園)이 열리고
동네 골목골목 안은 그 화음에
구슬 같은 아이들의 눈빛으로 가득 채워지곤 했다
냄비, 헌 세숫대야, 그렇게 찌글찌글한 “찌글이” 아저씨는
아이들 입에서 동실동실 허연 엿가루의 봄날을 띄우고
봄바람에 갈라 터진 손등, 닳아빠진 소매 깃엔
이따금 춘삼월을 어루는 흰 조팝꽃 같은
이른 봄빛이 마구 피어오르곤 했다

 
골목 길,
아이들 하나 둘 길 위에 비워지고
전등불 스윽 노란 개나리꽃 한 다발 피워낼 즈음
봄날은 그렇게 장난기 많은 얼굴로
아이들의 긴 그림자 꼬리를 물고 서 있곤 했었다.
.......................................................................

번거로운 하루 해가 저물고 있다.

내일은 오늘보다는 좀 덜 분주해지길...

 

아니, 내일 하루쯤은

햇살 가득한 봄 볕 맞으러

골목길이며, 들판이며, 언덕 길을

한가로이 걸어보면 좋겠다.

 

지난 기억 한 자락 둘둘 말아 배낭에 담고,

꽃 비 맞으러, 꽃 바람 맞으러

설렁설렁 걸어 다니면 좋겠다.

 

내딛는 걸음마다

꽃 눈이 펑펑 터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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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바람에게


                    문정희


어느 나무나
바람에게 하는 말은
똑같은가 봐


"당신을 사랑해."


그래서 바람불면 몸을 흔들다가
봄이면 똑같이 초록이 되고
가을이면 조용히 단풍드나봐
............................................................

모두가 같은 색깔이 아니 듯,
그들의 이야기도 다 다르겠지.


봄이 되면 각양각색의 꽃이 피고 또 지고,
가을이 되면 형형색색의 옷을 갈아입지.


오랜 시간을 함께 했건만
우린 왜 한 마음일 수 없는지...


어쩌면,
그래서
너무나 당연한 것인지도 몰라.

그대가 나를 사랑하신다면


                                          김미선


그대
정말로 나를 사랑하신다면
지금처럼만 사랑해 주십시오


그대
정말로 나를 사랑하신다면
지금처럼 가슴으로만 사랑해 주십시오


그대 눈에 비치는
내 삶이 하도 아파보여서
그 아픔 잠시 덜어주려는 마음으로
나를 살아하지는 마십시오


애틋한 시선으로 사랑어린 연민으로
내 어깨를 감싸주는 그 손길은
언제인가 거두어지니까


눈 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뒤돌아 서면서
차츰씩 엷어지는 그런 마음으로
나를 사랑하지는 마십시오
............................................................................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10년을 하루같이 봐왔건만
나는 오늘도 그녀를 이해할 수가 없다.


어찌 같을 수야 있겠는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서로 다른 생각으로 살아왔던 사람들인데.
하지만 나를 좀 더 이해해주길 바라는 것이 그리 큰 욕심인가?


온 몸이 부서질 것처럼 아픈 날,
마음마저 어지러워 더 힘든 날,
이런 상심도 언제나 혼자만의 몫이다.

우울한 샹송

                         이수익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그곳에서 발견한 내 사랑의
풀잎되어 젖어있는
비애를
지금은 혼미하여 내가 찾는다면
사랑은 또 처음의 의상으로
돌아올까


우체국에 오는 사람들은
가슴에 꽃을 달고 오는데
그 꽃들은 바람에
얼굴이 터져 웃고 있는데
어쩌면 나도 웃고 싶은 것일까
얼굴을 다치면서라도 소리내어
나도 웃고 싶은 것일까


사람들은
그리움을 가득 담은 편지 위에
애정의 핀을 꽂고 돌아들 간다
그때 그들 머리 위에서는
꽃불처럼 밝은 빛이 잠시
어리는데
그것은 저려오는 내 발등 위에
행복에 찬 글씨를 써서 보이는데
나는 자꾸만 어두워져서
읽질 못하고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그곳에서 발견한 내 사랑의
기진한 발걸음이 다시
도어를 노크
하면,
그때 나는 어떤 미소를 띠어
돌아온 사랑을 맞이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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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곤

                김사인


사람 사는 일 그러하지요
한세월 저무는 일 그러하지요
닿을 듯 닿을 듯 닿지 못하고
저물녘 봄날 골목을
빈 손만 부비며 돌아옵니다
......................................................................

우리 사는 일이 다 그러하지요.

바로 저 앞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면서
그저 앞으로만 달려가고 있습니다.


안개라도 걷히면 그나마 나을텐데,
선택의 여지는 언제나 그리 많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저 제 갈 길 가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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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유화


              김소월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요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

- 산유-화(山有-花) -

 

품사 : 명사 
[음악] 같은 말 : 메나리

 

산유화라는 꽃이나 식물은 없다. 이제서야 알았다.
'메나리' 라는 우리 전통 음악의 종류와 같은 말임도 이제 알았다.


'한오백년' '정선아리랑' 등 구슬픈 멜로디와 처량하고 낭랑한 소리가 특징인
'메나리제 소리'의 다른 말이 산유화란다.


아무 것도 모르고 사는 일이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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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편지


                     곽재구


새벽에 깨어나
반짝이는 별을 보고 있으면
이 세상 깊은 어디에 마르지 않는
사랑의 샘 하나 출렁이고 있을 것만 같다
고통과 쓰라림과 목마름의 정령들은 잠들고
눈시울이 붉어진 인간의 혼들만 깜박거리는
아무도 모르는 고요한 그 시각에
아름다움은 새벽의 창을 열고
우리들 가슴의 깊숙한 뜨거움과 만난다
다시 고통하는 법을 익히기 시작해야겠다
이제 밝아 올 아침의 자유로운 새소리를 듣기 위하여
따스한 햇살과 바람과 라일락 꽃향기를 맡기 위하여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를 사랑한다는 한마디
새벽 편지를 쓰기 위하여
새벽에 깨어나
반짝이는 별을 보고 있으면
이 세상 깊은 어디에 마르지 않는
희망의 샘 하나 출렁이고 있을 것만 같다

.........................................................................

 

열정의 샘, 사랑의 샘, 희망의 샘...


마르지 않는 샘 하나,
내 가슴에도 흘러 넘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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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

이사를 했다...
제법 멀리로...
꽤 오랜동안 머물렀던 자리를 뜬다는 게 은근히 부담스러운 나이가 됐는지,

한동안 심사가 영 편칠 않았다.


막상 이사하고 아직 정리하지 못해 쌓아 놓은 박스가 많지만
이제서야 마음이 놓인다.
정리하려고 내놓은 물건들로 어수선하게 어질러진 방..
'평온한 일상의 소중함' 을 새삼 깨닫는다.


이 사소한 이사에도 심사가 이렇게 번잡스러운데,
지금 엄청난 재난을 당한 일본인들은 어떤 심정일까.
빨리 정돈되고, 치유되길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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