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 하나 있었으면 
                                        

                                                도종환

 

마음이 울적할 때 저녁 강물 같은 벗 하나 있었으면
날이 저무는데 마음 산그리메처럼 어두워올 때
내 그림자를 안고 조용히 흐르는 강물 같은 친구 하나 있었으면


울리지 않는 악기처럼 마음이 비어 있을 때
낮은 소리로 내게 오는 벗 하나 있었으면
그와 함께 노래가 되어 들에 가득 번지는 벗 하나 있었으면


오늘도 어제처럼 고개를 다 못 넘고 지쳐 있는데
달빛으로 다가와 등을 쓰다듬어 주는 벗 하나 있었으면
그와 함께라면 칠흑 속에서도 다시 먼길 갈 수있는 벗 하나 있었으면
 ...................................................................................


참으로 든든한 일이겠지요... 마음이 텅 비어 울적하고, 혼자라고 느낄 때,

누군가 늘 내 곁에 있다고 말해주고 다독여 주는 이가 있다면 말입니다.

누가 나에게 이런 벗일까 찾기 전에 ... 먼저 ...

난 누구의 이러한 벗일까를 한 번 생각해 봐야겠네요....

 

'접시꽃 당신' 으로 유명한 도종환 시인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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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


국어 교과서에 실려서 열심히 밑줄 쫘악... 해가면서 배우고 외웠던 시죠?

넓게 보면 자아성찰의 시, 좀 좁은 의미로 파악한다면 연시(戀詩)의 대표격인 시입니다.

 

사람이 사랑을 한다는 것은 어쩌면 '자신의 존재의 발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삶의 이유도 바로 자아를 발견하고자 하는 것이겠지요.

자아를 성취하고 실현하지는 못하더라도 말입니다... ^^

그리보면 자아성찰과 사랑은 그리 멀지 않군요...^^...

사랑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사랑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게 되는 것이로군요.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 '이름'...

 

다시 되뇌어도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지금 당신은 누구의 이름을 부르시렵니까?

그리고 지금 당신은 그 누구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 인가요?

 

 

 

작은 연가

 

                    박정만

 

 

사랑이여, 보아라

꽃초롱 하나가 불을 밝힌다

꽃초롱 하나로 천리 밖까지

너와 나의 사랑을 모두 밝히고

해질녘엔 강가에 와 닿는다

저녁 어스름 내리는 서쪽으로

유수와 같이 흘러가는 별이 보인다.

우리도 별을 하나 얻어서

꽃초롱 불 밝히듯 눈을 밝힐까.

눈 밝히고 가다가다 밤이 와

우리가 마지막 어둠이 되면

바람도 풀도 땅에 눕고

사랑아, 그러면 저 초롱을 누가 끄리.

저녁 어스름 내리는 서쪽으로

우리가 하나의 어둠이 되어

또는 물 위에 뜬 별이 되어

꽃초롱 앞세우고 가야 한다면

꽃초롱 하나로 천리 밖까지

눈 밝히고 눈 밝히고 가야 한다면

........................................................

 

박정만 님의 아름다운 시 입니다.

개인적으로도 가장 좋아하는 시이기도 합니다.

또 읽고 다시 읽어보아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시입니다...

유리창을 닦으며 

 

                         문정희 

 

누군가 그리운 날은
창을 닦는다

 

창에는 하늘 아래
가장 눈부신 유리가 끼워 있어

 

천 도의 불로 꿈을 태우고
만 도의 뜨거움으로 영혼을 살라 만든
유리가 끼워 있어

 

솔바람보다도 창창하고
종소리보다도 은은한
노래가 떠오른다

 

온몸으로 받아들이되
자신은 그림자조차 드러내지 않는


오래도록 못 잊을
사랑 하나 살고 있다.

 

누군가 그리운 날은 
창을 닦아서

 

맑고 투명한 햇살에
그리움을 말린다.

........................................................

 

유리창을 닦는 일은... 마음을 닦는 일...

하루도 닦는 일을 게을리하면

어느새 이끼가 끼고 먼지가 앉습니다.

 

지워져서, 멀어져서...

아주 잊혀져버린 줄만 알았던...

 

맑고 투명한 햇살에 비춰볼 수 있는

눈부신 그 하나...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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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ce Springsteen ... Greatest Hits
 
 

낡은 청바지에 기타 하나 메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Born In The U.S.A.' 목청껏 부르던...

 

그의 열정과 패기를 미국인들은 사랑할 수밖에 없었겠지...

 

노동자와 도시 빈민의 어려운 생활상을,

 

자본주의의 무력함을, 그들의 외침을 대신했던

 

그의 히트곡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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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강도 야위는 이 그리움

 

                                               고재종


그토록 흐르고도 흐를 것이 있어서 강은
우리에게 늘 면면한 희망으로 흐르던가.
삶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듯
굽이굽이 굽이치다 끊기다
다시 온몸을 세차게 뒤틀던 강은 거기
아침 햇살에 샛노란 숭어가 튀어오르게도
했었지. 무언가 다 놓쳐버리고
문득 황황해하듯 홀로 강둑에 선 오늘,
꼭 가뭄 때문만도 아니게 강은 자꾸 야위고
저기 하상을 가득 채운 갈대숲의
갈대잎은 시퍼렇게 치솟아오르며
무어라 무어라고 마구 소리친다. 그러니까
우리 정녕 강길을 따라 거닐며
그 윤기나는 머리칼 치렁치렁 날리던
날들은 기어이, 기어이는 오지 않아서
강물에 뱉은 쓴 약의 시간들은 저기 저렇게
새까만 암죽으로 끓어서 강줄기를 막는
것인가. 우리가 강으로 흐르고
강이 우리에게로 흐르던 그 비밀한 자리에
반짝반짝 부서지던 햇살의 조각들이여,
삶은 강변 미루나무 잎새들의 파닥거림과
저 모래톱에서 씹던 단물 빠진 수수깡 사이의
이제 더는 안 들리는 물새의 노래와도 같더라.
흐르는 강물, 큰물이라도 좀 졌으면
가슴 꽉 막힌 그 무엇을 시원하게
쓸어버리며 흐를 강물이 시방 가르치는 건
소소소 갈대잎 우는 소리 가득한 세월이거니
언뜻 스치는 바람 한자락에도
심금 다잡을 수 없는 다잡을 수 없는 떨림이여!
오늘도 강변에 고추멍석이 널리고
작은 패랭이꽃이 흔들릴 때
그나마 실날 같은 흰줄기를 뚫으며 흐르는
강물도 저렇게 그리움으로 야위었다는 것인가.

...............................................................

 

그리움이 강물이 되고, 외로움이 산이 되는

그런 심상이 시상이 되고 또 노래가 되어 한 줄의 시가 된다.

내 눈으로 보고 있는 장면을 묘사하기도 만만치 않은 일인데

그 장면에 내 마음을 실어 다시 그림을 그려낸다.

어떤이는 몸으로, 어떤이는 목소리로 또 어떤이는 손으로 표현해 내는데

그 표현을 많은 이들과 공감하는 일이 또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창작활동의 고통'이 바로 여기부터 시작된다.

고재종 님의 시에선 묵은 장내음이 진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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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옥 
                                       강연호

 

그는 오늘도 아내를 가두고 집을 나선다
문단속 잘 해, 아내는 건성 듣는다
갇힌 줄도 모르고 노상 즐겁다
라랄랄라 그릇을 씻고 청소를 하고
걸레를 빨고 정오의 희망곡을 들으며
하루가 지나간다 나이 들수록 해가 짧아지네
아내는 제법 철학적이기까지 하다
상추를 씻고 된장을 풀고 쌀을 안치는데
고장난 가로등이나 공원 근처
그는 집으로 가는 출구를 찾지 못해 헤맨다
그는 혼자 술을 마신다
그는 오늘도 집 밖의 세상에 갇혀 운다

 


아내

                                      윤수천

 

아내는 거울 앞에 앉을 때마다
억울하다며 나를 돌아다본다
아무개 집안에 시집 와서
늘은 거라고는 밭고랑같은 주름살과
하얀 머리카락뿐이라고 한다

 

아내의 말은 하나도 틀리지 않는다
모두가 올바르다

 

나는 그럴 때마다
아내를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다
슬그머니 돌아앉아 신문을 뒤적인다

 

내 등에는
아내의 눈딱지가 껌처럼
달라붙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안다
잠시 후면
아내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발딱 일어나
종종걸음으로 집안 구석구석을
환하도록 문지르고 닦아
윤을 반짝반짝 내놓을 것이라는 사실을

.......................................................................... 


십수년씩, 혹은 수십년씩 같은 사람하고 함께 지낸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습니까 마는...

참 희안하고 오묘한 사이가 아닐 수 없습니다... 부부라는 것이요...

그 묘한 인연을 재미있게 쓴 두 편의 시입니다...

'집으로 가는 출구' 를 찾지 못해 밖을 헤메다 고장난 가로등처럼 길에서 울고 섰는 남편과

'발딱 일어나 구석구석 닦아놓을...' 아내의 두 장면을 떠올리며

 슬며시 미소지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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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세계,
초원의 밤하늘에는 어둠보다 빛이 더 많다.
여느 별보다 별이 더 밝고 더 커 보인다.
어디에라도 잠시 기대 밤하늘을 보고 있어보라.
자신이 별들속으로 빨려 들어가
순식간에 사라져버리는 신비로운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어둠이 깊을수록 별은 밝게 빛난다.
우리 안에 있는 별도 그렇다.
별을 아름답게 볼 수 있으려면 다른 불은 꺼야 한다.
가까이 있다고 더 밝은 것도 아니다.
간절함이 깊을수록 밝게 빛난다.
오직 간절함만으로.


- 신영길의《초원의 바람을 가르다》중에서 -

......................................................................

 

고도원의 아침편지에 이 글이 실려와서 마음에 닿기에 올립니다.

어둠이 깊을수록 밝게 빛나는 별은 우리 마음속에 있음을...

그 별은 간절함이 깊을수록 밝게 빛남을 믿어봅니다.

 

억수장마속의 저 촛불들의 믿음도 언젠가는 밝게 빛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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