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에게 묻다


                        고두현


천왕성에선
평생 낮과 밤을
한 번밖에 못 본다.
마흔두 해 동안 빛이 계속되고
마흔두 해 동안은 또
어둠이 계속된다.
그곳에선 하루가 일생이다.


남해 금산 보리암
절벽에 빗금 치며 꽂히는 별빛
좌선대 등뼈 끝으로
새까만 숯막 타고 또 타서
생애 단 한 번 피고 지는
대꽃 틔울 때까지


너를 기다리며
그립다 그립다


밤새 쓴 편지를 부치고
돌아오는 아침
우체국에서 여기까지
길은 얼마나
먼가.
.....................................................................

지구와 가장 가깝고, 물이 있을 수 있고,
지구와 크기도 중력도 비슷한 행성을 발견했단다
프록시마 b, 거리는 겨우 4.25광년


언뜻 가까운 듯 보이지만 굳이 계산을 해 보자면,
음속의 30배에 달하는 제2우주속도(11.2km/sec)로 날아도 11만 4천년
마하 2 의 초음속 제트기 속도로 날면 160만년 남짓


어차피 그 거리를 11만년에 주파하는 건 현재로선 불가능하니
초음속 제트기로 호모에렉투스를 태워 출발하면
현대인이 도착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되는 거리다.

160만년...


아직 갈 길이 멀구나.

우리 지구를 꼭 지켜야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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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도 화석이 된다


                           이외수


저녁비가 내리면
시간의 지층이 허물어진다


허물어지는 시간의 지층을
한 겹씩 파내려가면
먼 중생대 어디쯤
화석으로 남아있는
내 전생을 만날 수 있을까


그 때도 나는
한 줌의 고사리풀
바람이 불지 않아도
저무는 바다 쪽으로 흔들리면서
눈물보다 투명한 서정시를
꿈꾸고 있었을까


저녁비가 내리면
시간의 지층이 허물어진다
허물어지는 시간의 지층
멀리 있어 그리운 이름일수록
더욱 선명한 화석이 된다
...........................................................


작은 돌멩이 하나 손가락으로 툭툭 튕겨
땅위에 짙게 금을 그어가며
광활한 대지의 지배자를 꿈꾸던...


먼 하늘을 향해 끝없이 날아오르던 연이

실이 끊겨 언덕 너머 저편 하늘로 사라져가던 모습을 멍하니 서서 지켜보며
언젠가는 저 먼 곳으로 꼭 내 연을 찾으러 가리라 다짐하던...


반으로 쪼개져버린 팽이를 붙여보겠다고 촛농을 떨어뜨리며
닭똥같은 눈물도 뚝뚝 섞어 떨구던 ...


순수함만으로도 행복하던 그때가
문득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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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


               박건한


빈 곳을 채우는 바람처럼
그대 소리도 없이
내 마음 빈 곳에 들어앉아
나뭇잎 흔들리듯
나를 부들부들 떨게 하고 있나니.
보이지 않는 바람처럼
아니 보이지만 만질 수 없는 어둠처럼
그대 소리도 없이
내 마음 빈 곳에 들어앉아
수많은 밤을 잠 못 이루게
나를 뒤척이고 있나니.

..........................................................

 

그리움이라 부를 수 있을까
이런 흔들림을...
이런 뒤척임을...


마음의 빈 곳
공허


혹은
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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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꽃


                                오세영


지상에서나 하늘에서나
멀리 있는 것은 별이 된다.
멀리 있으므로 기억이 흐린,
흐려서 윤곽이 선명치 않는 너의
이,
목,
구,
비,
강 건너 반짝이는 불빛, 혹은
대숲에 비끼는 노을 같은 것,
사랑은
멀리서 바라보아야만 아름다운
안개꽃이다.
지상에서 천상으로 흐르는 은하
한 줄기.
...................................................

 

멀리 있는 것은 별이 된다.
사랑은 안개꽃이다.
멀리서 바라보아야만 아름다운...


멋진 표현이지만 슬프다...
저 은하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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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 짧은 그리움. 아니, 그, 디, 움,


                                                          유용선


그는 언제나 그리움을 그,디,움, 이라 발음한다
그런 그에게 그, 리, 움, 을 강요하면 그, 디, 움, 한다
사람 좋은 그와의 술자리에서
나는 희미하게 바랜 옛사랑의 그림자를,
그는 언눅으로 남았을 옛사당의 그딤자를,
유부남인 나는 웃으며
친정에 가 있는 아내가 아쉽다고,
노총각인 그는 훌쩍거리며
다든 사내의 아내가 된 그 여자가 그딥다고,
마주앉아 주절거리며 술잔을 비워댔다.
내 말은 꽃같이 피었다가 시들고
그의 말은 불길이 되어 내 가슴을 데이게 했다
그의 천부적인 어눌함을 부러워하며,
매끄러운 나의 혀를 부끄러워하며,
마침내 내 중얼거림 속에서 사랑이 사당이 되었을 때,
그는 시, 나는 말이 되고,
그는 예술, 나는 현실이 되어,
시와 예술은 자취방으로, 말과 현실은 자기 집으로 향했다
그디운 사담 옆에 누워있지 않은 외도운 밤을 향하여

..................................................................................
다 지난 이야기이기에
우리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지.
술 한잔에 그리움도 달래고
추억이라고 예쁘게 포장도 하고
알코올로 채운 풍선도 불어 띄워보내지
모두 다 가질 수는 없어도
그 순수한 마음만은 간직하여라
시리고, 아프고,
사무치게 그리울진데...
시가 되고, 노래가 되고,
춤이 되고, 그림이 되어
허무의 공간을 채우라.

흰 종이배 접어


                             박남준


그리움의 종이배 접어
백날이고 천날 흰 종이배 접어 띄우면
당신의 그 바다에 닿을까요
먼 바람결로도 꿈결로도 오지 않는
아득한 당신의 그 바다에 닿을까요


그리움의 종이배 접어
백날 삼백예순다섯날 흰 종이배 접어 띄워요
바람 같은 당신께로 가는 사랑
흰 종이배 접어 띄워요

......................................................................

사랑하는 이를 생각하며 날마다 고이고이 접어

종이학 천 마리를 유리상자에 하나 가득 담았다.

그 속엔 온갖 사연들이 접혀 있어

일일이 다 얘기할 수가 없다.

종이배를 그리움 가득 담아 접고,

강물에 띄우는 것은

어쩌면 내 마음을 접어두는 일...

꿈결로도 오지 않는 당신을 접어두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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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우체국


                        안도현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에
우체국이 있다
나는 며칠 동안 그 마을에 머물면서
옛사랑이 살던 집을 두근거리며 쳐다보듯이
오래오래 우체국을 바라보았다
키 작은 측백나무 울타리에 둘러싸인 우체국은
문 앞에 붉은 우체통을 세워두고
하루 내내 흐린 눈을 비비거나 귓밥을 파기 일쑤였다
우체국이 한 마리 늙고 게으른 짐승처럼 보였으나
나는 곧 그 게으름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이곳에 오기 아주 오래 전부터
우체국은 아마
두 눈이 짓무르도록 수평선을 바라보았을 것이고
그리하여 귓속에 파도소리가 모래처럼 쌓였을 것이다
나는 세월에 대하여 말하자면 결코
세월을 큰 소리로 탓하지는 않으리라
한번은 엽서를 부치러 우체국에 갔다가
줄지어 소풍 가는 유치원 아이들을 만난 적이 있다
내 어린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우체통이 빨갛게 달아오른 능금 같다고 생각하거나
편지를 받아 먹는 도깨비라고
생각하는 소년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다가 소년의 코밑에 수염이 거뭇거뭇 돋을 때쯤이면
우체통에 대한 상상력은 끝나리라
부치지 못한 편지를
가슴속 주머니에 넣어두는 날도 있을 것이며
오지 않는 편지를 혼자 기다리는 날이 많아질 뿐
사랑은 열망의 반대쪽에 있는 그림자 같은 것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삶이 때로 까닭도 없이 서러워진다
우체국에서 편지 한 장 써보지 않고
인생을 다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또 길에서 만난다면
나는 편지봉투의 귀퉁이처럼 슬퍼질 것이다
바다가 문 닫을 시간이 되어 쓸쓸해지는 저물녘
퇴근을 서두르는 늙은 우체국장이 못마땅해할지라도
나는 바닷가 우체국에서
만년필로 잉크냄새 나는 편지를 쓰고 싶어진다
내가 나에게 보내는 긴 편지를 쓰는
소년이 되고 싶어진다
나는 이 세상에 살아남기 위해 사랑을 한 게 아니었다고
나는 사랑을 하기 위해 살았다고
그리하여 한 모금의 따뜻한 국물 같은 시를 그리워하였고
한 여자보다 한 여자와의 연애를 그리워하였고
그리고 맑고 차가운 술을 그리워하였다고
밤의 염전에서 소금 같은 별들이 쏟아지면
바닷가 우체국이 보이는 여관방 창문에서 나는
느리게 느리게 굴러가다가 머물러야 할 곳이 어디인가를 아는
우체부의 자전거를 생각하고
이 세상의 모든 길이
우체국을 향해 모였다가
다시 갈래갈래 흩어져 산골짜기로도 가는 것을 생각하고
길은 해변의 벼랑 끝에서 끊기는 게 아니라
훌쩍 먼 바다를 건너가기도 한다는 것을 생각한다
그리고 때로 외로울 때는
파도소리를 우표 속에 그려넣거나
수평선을 잡아당겼다가 놓았다가 하면서
나도 바닷가 우체국처럼 천천히 늙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

사랑은 열망의 반대쪽에 있는 그림자 같은 것...
그래, 사랑을 하기 위해 살자.


그래도 외로울 때,
마음에게 편지 한 장 적어 보자


느리게 느리게,
천천히 천천히
기다리다 마음을 접고,
바라보다 눈을 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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