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매운탕이 먹고 싶으냐

  

                                          이외수
  

낚시의 달인처럼 행세하던 놈이

막상 강에 나가니까

베스와 쏘가리도 구분하지 못한다

그 사실을 확인하고도

어떤  멍청이들은

그 놈이 월척을 낚아 올릴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저버리지 못한 채

매운탕을 끓일 준비를 한다

아놔, 매운탕은 뭐

자갈에 고추장 풀어서 끓이는 거냐

냄비에 물 끓는 소리가 공허하면서도 시끄럽다

 

 

그토록 매운탕이 먹고 싶으냐 2

 

                                          이외수

 

시끄러운 냄비 물 끓는 소리에,

자꾸 반복되는 헛물질에,

이제는 낚시 바늘로 엉뚱한 사람 잡아채려하니,

화가 안날수가 없겠지요.

그런데 자꾸만

[내가 뭘 잡으려 하는지 너희들이 몰라서 그런다.]

[나는 소시적 1미터짜리 미꾸라지도 잡은 사람이다.]


이러니 그만 낚시터에서 나가라는 소리가 안나올리 있나요.

...........................................................................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에는 늘상 노코멘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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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 지

 

                        서정윤

 
그리운 이에게 편지를 쓴다.
먼 하늘 노을지는
그 위에다가
그간 안녕이라는 말보다
보고 싶다는 말을
먼저 하자.

 

그대와 같은 하늘 아래 숨쉬고
아련한 노을 함께 보기에 고맙다.
바람보다,
구름보다 더 빨리 가는
내 마음, 늘 그대 곁에 있다.

 

그래도 보고 싶다는 말보다
언제나 남아 있다는 말로
맺는다

......................................

 

커피 한 모금에

햇살 한 줌 건내주는,

보잘 것 없는 한 줄 글귀에

수정같은 미소 건내주는

아름다운 사람아...

 

고맙다. 이 편지를 읽어줘서.

정말 고맙다. 곁에 있어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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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잔치는 끝났다

                               

                                        최영미


물론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운동보다도 운동가를
술보다도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는 걸
그리고 외로울땐 동지여!로 시작하는 투쟁가가 아니라
낮은 목소리로 사랑노래를 즐겼다는 걸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잔치는 끝났다
술 떨어지고, 사람들은 하나 둘 지갑을 챙기고

마침내 그도 갔지만
마지막 셈을 마치고 제각기 신발을 찾아 신고 떠났다
어렴풋이 나는 알고 있다
여기 홀로 누군가 마지막까지 남아
주인 대신 상을 치우고
그 모든 걸 기억해내며 뜨거운 눈물 흘리리란 걸


그가 부르다 만 노래를 마저 고쳐 부르리란 걸
어쩌면 나는 알고 있다
누군가 그 대신 상을 차리고, 새벽이 오기 전에
다시 사람들을 불러 모으리란 걸
환하게 불 밝히고 무대를 다시 꾸미리라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

 

세월이 흘러 끝났다고 하기엔 너무 짧고
그냥 지나쳐버려 끝났다고 하기엔 너무 허무하고

이제는 마음이 변해 끝났다고 하기엔 너무 억울하고
그냥 잊혀져버려 끝났다고 하기엔 아직 너무 뜨겁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동 시대 젊은 지성들의
뒤통수 제대로 한 번 갈겨주었던 그녀도 이제
하늘의 명을 알게되는 나이가 가까웠다.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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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독

 

                김선굉


바람이 나를 스쳐만 간다

내 가슴은 불어주지 않고

건드려도 아프지 않은

머리칼이나 여름옷 따위

내 가슴은 불어주지 않고

푸른 들판을 구비구비

어루만지듯 불고 있다.

...............................................

오늘 유난히 바람이 많이 부는 날

이런 날이면 이 시가

그리고, 바람이 생각납니다.

 

고독한 것이 나일까

아니면 부는 바람일까...

시리디 시린 내 가슴을

혹시 불까봐

덜컥 겁이 납니다...

우문유희(愚問遊戱) 4

                           

                               서정윤

 

어느 날 밤, 하늘을 보면
사람 사는 삶이
무에 그리 다를 게 있어
나와 남으로 나누어지고
나중 사람들로 남아야 하나?

어차피 빌려 입은 낙엽처럼
맨몸 시린 땅속에서
다시 얼굴 부빌 우리들끼리
함께 하늘을 보면
나로 인해 고통스러운 네가
별로 웃고 있는데, 내
희미한 별빛은 더욱 아득하다.

나 아닌 모두들
하늘 어떤 자리에서 만나더라도
반가운 인사 나눌 수 있는,
내 시린 빈손, 반갑게 잡아줄
순박한 별들에게
이 땅 위 나의 작은 욕심으로
더 이상 어떤 고통을 맡길 수 있나?
가슴 아프게 할 수 있나?

.................................................

 

언젠가 이 시가 너무 마음에 와닿아서

음표를 달고 마디를 나누어...

악보로 옮겼습니다...

오선지 위에 순박한 별들이 촘촘히 박혔습니다...

잠 못드는 밤의 연가

 

                                    김종목
 
1
창(窓)밖엔 스산한 가을 달이 이제 막 오동잎에 내려와 한 자로 쌓인다. 포롬한 달빛이 눈부시게 흐르는 이 밤, 베개는 끝없이 높아만 가고 너를 그리워하는 마음 속 명도(明度)는 저 달빛보다 더 밝구나. 시나브로 도지듯 눈시울에 걸려오는 너의 그 고운 옷고름 속 희디흰 율감(律感)이 밤마다 해일(海溢)이 되어 나의 몸을 덮는다. 만나면 헤어지는 이치를 내 어이 모를까마는 너의 그 비수(匕首) 같은 언약이 때로는 그믐달로 내 가슴에 박혀 푸르르 푸르르 떠는 것을 잊을 수가 없구나.

 2

속절없는 세월도 바람지듯 떨어진다. 떨어져 멀리멀리 사라지듯 너도 또한 그러하냐. 그리움의 화살을 무수히 쏘다가 도리어 내가 맞아 쓰러지는 몰골이 처량하지도 않느냐. 저 무심한 달빛은 낭랑히 너의 얼굴로 떠오르지만, 마음 속 그 깊은 연(緣)줄은 차마 끊을 길이 없구나. 미나리 같은 풋풋한 너의 귀는 다 어디로 떠나 보내고 나의 하소연은 어이 듣지 못하느냐. 아니, 너의 그 불씨 같은 밝은 눈은 어디에 묻어 두고 깜깜하게 꺼진 나의 가슴을 녹 쓴 화통처럼 언제까지 놓아 두려느냐.

 3

부질없는 짓이다. 달도 기울고 만지면 시꺼먼 먹물이라도 뚝뚝 묻어날 어둡고 막막한 토방(土房)은 그대로 감방이 아니냐. 삼백 예순 다섯 날을 열 번 백 번 곱하여 잠 못 든대도, 이미 떠난 마음을 어디에서 만나랴. 낙엽 지는 소리가 갈기갈기 찢어져, 밤마다 아픔으로 다가와 깊디 깊은 소(沼)를 만든다. 내가 누운 이대로 그대 있는 곳으로 낙엽지듯 떨어져 한 소절 음악이 되거나 달빛이 되거나 어둠이라도 되고 싶구나.

 4

눈 먼 기별을 기다리는 가슴에 어두운 비가 내린다. 눅눅히 다가오는 그리움은 이제는 보이지 않고 내가 나를 면벽(面壁)하고 밤을 지샌다. 후둑후둑 떨어지는 흐느낌은 다 가라앉고 오금이 저리도록 불타는 아픔도 이제는 다 삭아 손끝으로 헤집으면 그대로 재가 될 그림자만 남았다. 오로지 불념(佛念)에만 이내 몸을 맡기고 사리로 앉은 나의 마음도 ------, 아아 어느 새 제방(堤防)이 터지듯 강물이 되어 너에게로 끝없이, 끝없이 흐르는구나.

사랑한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김정한

 

사랑하는 당신이 내 곁에 있어도
늘 당신께
사랑한다는 말을 차마 못하고 살아갑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나면
그 끝을 감당하기가 버거울 것 같아
사랑한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당신때문에 슬프다고 당신때문에 아프다고
당신때문에 힘들다는 말을 하고 싶어도
그 말의 끝이 두렵기에
슬프다는 말을 아프다는 말을
힘들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늘 이렇게 당신에게는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말을 아끼며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마음조차 아끼며 살아갑니다.
 

그 이유는 당신과 나
더 이상 아프지 않기 위해서
영원히 사랑하며 살기 위해서
당신께 말을 아끼며
사랑한다는 말 조차 차마 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

 

곁에 있어도 차마 하지 못한 말...

어쩌면 내 이기와 욕심으로 비워내지 못하고

가둬두느라, 채워두느라 말문을 닫은 것임을...

언젠가는 헤어짐을 언젠가는 잊혀짐을...

영원한 것은 없음을 ...

왜 어리석은 나는 지금은 모르는 것인지...

모른척하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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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날

 

                                 김남극

 

간장 냄새에 발이 푹 빠지는
장독대 뒤
꽤나무꽃 피었다.
살결이 쉽게 짓물러
미간을 스치는 바람에도 떨어져
막 잎 내미는 무잔대
잔 손 속으로 포갰다.
댓돌에 앉아
단지를 열고 고추장을 푸는 어머니
근육도 말라붙은 종아리를 보다가
청춘의 향기와 빛깔이 뒤란 가득 술렁이던 시절과
한순간 지는 꽃잎 따라
울컥 울음이 나던 시절을 생각하다가
집안에 들어와
오래된 횃댓보를 펼쳤다.
매화나무는 근육질인데
꽃은 엉성하고
그 위에
어슬픈 꾀꼬리 한 마리
가래 섞인 울음소리 들린다.
다시 결 따라 접어놓고
엉덩이가 시린 방바닥에 누웠다.

봄햇살은 마당가에서 낄낄거리며 자기들끼리 놀다가
슬레트 지붕 위로 올라간다 .
어둠이 문지방에 들었다.
꽤나무꽃 밤새 꿈 속에서
횃댓보 가지런히 결 따라 진다.
수(繡)마다 보풀 인다
마음을 건너 어머니에게로 가는
부풀이는 수(繡) 자국들

 

 

봄날 2

                                   김남극

 

햇살 깔깔대며 양철지붕을 구르는 봄날
할머니들 식은 밥덩이처럼 모여 앉아 감자 눈 딴다.
건네는 말소리에선 가끔
지난 겨울 강가 얼음이 천둥처럼 갈라지던 소리들
연일 내리던 눈발이 뒤란을 서성이던 소리들
솔가지 위 눈덩이 사소한 바람에 쏟아지듯
수화기에서 쏟아지던 자식들 물기 묻은 목소리들
비명 길게 끌며 골짜기 끝을 지나 산으로 치달리던
설해목 쓰러지는 소리들, 그렇게 마른 별처럼

진 노인네들 요령소리
이따금 황사 따라 감감하면서 가슴 막히게
두런두런

초승달 양철지붕에 내려 앉히는 소리 속에서
감자 씨눈 트는 소리
잔설 그림자 기웃거리는 개울물 소리 속에서
피라미 지느러미 터는 소리
소리가 소리를 끌고
또 소리를 끌고 ...

..........................................................................

 

인간내면의 풍경화 시인이라고 표현해도 될까요?
김남극님의 시입니다.
따스하고 온화한 봄날 풍경이 어딘지 모르게 어느 한녘이 서늘하고 소슬함을,

우리의 삶 어느 한 녘이 언제나 그러함을,

어찌 이리 잘 그려낼 수 있을까요?

강원도 냄새가 물씬 풍기는 글을 보니

강원도 깊은 산골짜기 어느 숲길을

터벅터벅 걷던 내 뒷모습이 보이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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