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문고 8월 4주차 베스트셀러.xls

 

- 경제경영, 자기계발서가  대세를 이루던 작년과 달리 최근에는 가벼운 에세이가 최근 들어

강세를 보이고 있다.

 

* 에세이/ 시

 

1위에 오른 한비야의 '그건 사랑이었네' 는 달변가인 그녀 답게 주변 이야기들도 줄줄줄... 한 번에 재미있게 읽어 내려갈 수 있다. 14위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24위의 '바람의 딸...' 역시 여전히 많이 읽히고 있다.

12위 고 장영희 교수의 '살아온 기적..' 은 장교수의 사망 이후 더 각광받고 있다.

 장영희 교수의 기존 책인 '내 생애 단 한번' '문학의 숲을 거닐다' 도 읽을 만하다.

17위 이외수 님의 '청춘불패' 는 작가 특유의 재치와 해학이 묻어난다. 재미있다.

26위 '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43위 '배움' 46위의 '동행' (이희호 여사 저) 등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면 이 후 재발간되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 밖에도 4위에 오른 고도원의 '꿈 너머 꿈' 은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엮은 책이다.

30위의 '참서툰 사람들' 은 '광수생각' 의 박광수씨 새로운 수필집이며, 33위의 '일기일회'는 법정스님의, 52위의 '인생사용 설명서'는 소설가 김홍신 님의 신간 에세이이다.

9위의 '매일 읽는 긍정의 한 줄' 은 스펀지 양장으로 된 두툼한 책인데, 매일매일 좋은 글, 생각해볼만한 글을 묶어 놓은 책이다.

아직 순위에는 없지만 고두현씨의 '시읽는 CEO' 도 읽을만하다.

 

*소설

 

3위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는 그녀 답게 역시나 약간의 눈물을 보태 읽게 되는 소설이다...

6위 공지영의 '도가니'는 읽지 못했지만, 평가는 대체로 양호했다...

13위 '승자는 혼자다' 는 '연금술사' '11분'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등등의 소설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소설가 파올로 코엘류의 두 권짜리 신작이다. 사놓고 아직 읽지는 못했지만,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

28위 '신' 시리즈는 '개미' '나무' '파피용' '뇌' '타나타노트' '천사들의 제국' 등으로 너무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의 소설로 총 6권이 완간되었다. 베르베르를 좋아한다면 충분히 재미있다.

난 현재 4권까지 ...

31위의 '브레이킹 던' 은 스테프니 메이어의 소설로 '트와일라잇' '뉴문' '이클립스' 등 총 4권이고 대단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영화로도 꽤나 인기를 끌었던 소설로 '뱀파이어와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이다.

이 밖에 영화로도 인기를 끌었던 93위의 '더 리더'는  75위의 '연을 쫓는 아이' 순위에는 없지만 '벤자민버튼의 시간..'도 재미있다.

국내 소설가들의 소설도 꽤나 인기가 있는데...

15위 김진명의 '천년의 금서' 23위 김별아의 '미실 (선덕여왕이야기)' , 40위 정유정의 '내 심장을 쏴라'

49위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47위 구병모의 '위저드 베이커리'  도 나름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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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 (THE ROAD)/ 코맥 매카시 저/ 정영목 역/ 문학동네/ 11,000원

 

제발 이 책이 영화화되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세상 사람들이 봐서는 안 될 이야기이기에...

언제가 될지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와 내가 아는 이들이 살아있는 동안만큼은

지구에 이런 상황이 생기지 않기를 기도한다.

 

아, 더 이상 이 땅엔 아무런 희망이 남아있지 않다.

아무런 기대조차 할 수 없는 하루하루의 생이 한발 한발의 걸음이, 지나가는 길이 모두 의미없다.

지옥의 한가운데 던져진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는 단 한 순간도 즐겁지 않으며,

단 한 순간도 여유롭지 못하며, 단 일분도 편안할 수 없다.

그들에게 내일은 당연히 없다.

그저 살아남는 한 순간 한 순간이 있을 뿐...

 

길을 갈수록, 시간이 흐를수록 나아질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기에,

작가가 던져주는 우연한 행운 - 그것들로 소설이 끝날 때까지 연명을 한다. -  조차 오히려 거슬리기만 한다.

결국 아들을 지키려 몸부림치던 아버지마저 죽게되고, 혼자남은 아이를 도저히 그냥 버려둘 수는 없었는지,

참 좋은 사람들을 만나 삶의 희망을, 생의 불씨를 어렴풋이 되살리며 끝이 난다.

이 대목이 왜 이리 허망하고 어이없기만 한지...

 

어쨌든 이 책을 두 번 다시 읽을 일이 없겠지만, 제발 영화로 만들지는 말기를...

하지만 책으로는 한 번쯤 읽어보라 권하고 싶은 이 기묘한 마음은 도대체 무슨 심사인지...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저/ 김재혁 역/ 이레

 

책 읽어주기, 샤워, 사랑 나누기, 그리고 나란히 누워 있기...

 

최근 케이트 윈슬렛 주연의 영화로 널리 알려진 책이라 별 고민없이 집어들었다. - 너무 예쁘고 멋지다. -

하지만 잇달은 실패작들 - 읽기 너무 힘들어서 줄창 붙들고 있다가 던져버린 비싼 돈을 주고 산 책들 - 때문에 불안한 마음은 한구석에 남아있었다.

그런데 집어들고 불과 서너시간만에 끝을 냈다. - 최근 일련의 사태에 비한다면 기적이었다 -

도입부에선 역시 시선을 끌고 흥미를 마구 유발시키는 뭔가가(?) 있어야 함을 가슴 벅차게 느끼면서,

그 느낌을 스물스물 공유하다보니,

- 얼마나 자극적인가? 책 읽어주기, 샤워, 사랑 나누기, 그리고 나란히 누워 있기... -

심각한 역사, 정치 사회소설이 되어가고 있었다. 오히려 중, 후반부는 상황에 비하면 덜 치열하게 씌여진 듯한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 훨씬 더 치열하게 전개할 수 있었을텐데...

담담하게 사실을 적어내려가고 싶었을까? 어쨌든 장장 18년의 긴 세월을 누군가를 위해 어떤 일이든 

 - 여기서는 책을 읽어주는 일 - 할 수 있음은 그 자체로 경이롭고 기이하고, 대단한 일이 아닐까?

그 어떤 정치적, 역사적, 사회적 요소의 개입없이 그냥 사건만을 본다고 해도 충분히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주인공의 경험이 무척 부러웠고, 한사람을 위해 지속적인 행위를 사심없이(?) 했다는 순수함 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사실이 아닌가? 얼마나 인간적이며 순수하여 아름다운가?

오랜만에 달콤하고 구수한 향기가 가득한 소설 한 권을 읽어 뿌듯했다...

 

 막스 뒤코스 글ㆍ그림 / 길미향 옮김/ 2009년 4월/ 국민서관/ 13,000원

 

한마디로 놀라운 그림책이다.

그 이름만으로도 놀라운 현대 미술, 건축, 디자인의 거장들의 명작들이 그림책 곳곳에 숨겨져 있다.

피카소, 몬드리안, 앤디 워홀....

 

비밀의 집 볼뤼빌리스에 숨겨진 비밀을 하나 하나 실마리를 풀어가며 찾아가는 흥미로운 진행과

누구나 꿈꾸는 엄청난 규모의 화려하고 멋진 집의 풍광이 잘 어우러져 책읽기의 묘미를 더 한다.

사실 미술, 건축, 디자인 등은 우리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

우리가 알게 모르게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되어있다.

이 책을 둘러보면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아넘기던 것들이 바로

현대미술, 건축, 디자인 거장들의 작품이었음을 새삼 깨닫는다.

 

8살 딸과 6살 아들은 어젯밤에도 약속이나 한 듯, 이 책을 들고 나타났다. ^ㅇ^;;;

- 내용은 너무나 재미있지만, 길어서 읽어주기는 만만치 않다. -

 

수십번을 읽었건만 아직도 재미있다.

우리 아이들의 흥미도 당분간 계속될 듯 하다... (@_@);;; 걱정 걱정...

 

 

 

"팍팍한 인생 하악하악 팔팔하게 살아보세" 이 문장에서 책에 담겨진 내용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외수의 생존법 <하악하악>은 1장 털썩, 2장 쩐다, 3장 대략난감 4장 캐안습, 5장 즐!

각 장의 엉뚱하고도 당혹스런 주제에 따라 나누어져 총 260개의 짧은 산문으로 이루어져있다.

이 글을 읽으면서 나조차도 낯선 인터넷 용어가 심심치 않게 나와 한번 놀라고,

우리의 생각과 일상들이 고스란히 몇 줄의 글로 압축되어 옮겨져 있어서 놀라고,

이외수 작가의 상식을 깨는 기발하고 발랄한 글에 다시 한 번 놀라고,

정태련 님의 신비로운 민물고기 그림에 또 한 번 놀란다.


늘 깨어있는 지성이지만 잘난 척 하지 않으며, 고고해지려고도 하지 않고, 오히려 평범해지거나 부족해 보이려는 지성이 있다면...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렇게 춘천에서 산다.


<들개>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던 그의 글은, <사부님 싸부님>, <벽오금학도>, <외뿔>, <괴물>, <이외수의 사색상자>, <바보바보>, <장외인간> 등 무수한 작품들로 이어지면서 어느새 무르익어, 친숙하고 편안하면서도 천박하지 않은 촌철살인의 아름다움으로 더 빛을 발하고 있다.


이 책은 저자의 세상을 향한 거침없는 날숨이 여기저기 뱉어져 있다. '하악하악' 하고픈 말을 속 시원히 다 늘어놓은 저자의 생각 주머니가 풀어 헤쳐진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 단락을 읽으면 두 세번씩 생각하거나 고민하며 볼 필요가 없다.

그냥 한 번 읽고 잠시 생각하거나 잠깐 피식 웃으면 되는 글이다.

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런 게 이외수의 글이 아닌가 싶다. 


지성을 초월한 대화

모기가 스님에게 물었다. 파리가 가까이 가면 손을 휘저어 쫓으시면서 우리가 가까이 가면 무조건 때려 죽이시는 이유가 뭡니까.

스님이 대답했다. 얌마, 파리는 죽어라 하고 비는 시늉이라도 하잖아.

모기가 다시 스님에게 물었다. 그래도 불자가 어찌 살생을 한단 말입니까.

그러자 스님이 태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쨔샤, 남의 피 빨아 먹는 놈 죽이는 건 살생이 아니라 천도야. 철썩!


뱁새가 황새를 쫓아가면 가랑이가 찢어진다 - 인간

조까, 명색이 새인데 날아서 쫓아가지 미쳤다고 걸어서 쫓아가냐 - 뱁새

 성공한 CEO에서 위대한 인간으로/앤드루 카네기 지음 / 21세기북스

 

강철왕 카네기에게 배우는 인생의 지혜

 


1. 시련을 당하면 웃어 넘겨라
명랑한 성격은 재산보다 귀하다. 젊은이들은 성격도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으며, 신체와 마찬가지로 정신도 음지에서 양지로 나올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시련을 당하면 가능한 한 웃어 넘겨라. 


2. 인간을 알기 위해 노력하라
사실 내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무엇을 알거나 나 스스로 무언가를 해서가 아니라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을 뽑아 쓸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누구나 알아두어야 할 귀한 지식이다. 나는 증기식 기계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지만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한 구조물인 인간을 알기 위해 노력했다. “여기, 자신보다 더 우수한 사람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알았던 사람이 누워 있다.”(카네기 묘비에 있는 글 中)


3. 기회 앞에서 절박하라
모든 것을 사소한 일로 여기는 사람들은 지나치게 대범한 사람들이다. 누군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사소한 일쯤은 무시하라는 충고에 사소한 일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면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한 사람이 있었다. 젊은이들은 사소한 일에 신이 주시는 가장 훌륭한 선물이 담겨 있음을 알아야 한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 이를 붙잡지 못하는 것은 큰 실수이다. 일자리가 주어졌을 때 머뭇머뭇하다가는 무슨 일이 생겨 일을 못하게 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일자리를 빼앗길 수도 있다. 나는 일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바로 일을 시작하겠다고 제안했다.


4. 배움을 탐하라
나의 토굴에 창문이 열리고 지식의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매일 일에 지치고 장시간 야근을 해도 책을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가벼워졌다. 나는 늘 책을 가지고 다니며 일할 때에도 틈나는 대로 독서를 했다. 토요일에 새 책을 빌려 볼 수 있다는 생각에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전보 배달부 소년들은 아침에 기술실 청소를 해야 했기 때문에 전신 기사들이 출근하기 전에 전신 기기들을 만져볼 수 있었다. 내게 이것은 새로운 기회였다. 나는 곧 키를 조작하여 나와 같은 목적으로 기계를 만지는 다른 전신국 소년들과 통신할 수 있었다. 사람이 무언가를 배우면 오래지 않아 그 지식을 활용할 기회가 오는 법이다.


5. 능력을 보여주지 못할 자리란 없다
유능하고, 자발적인 젊은이가 자신이 성실하고 유능하다는 것과 성공을 향한 불굴의 의지를 가졌음을 증명하지 못할 정도로 단순하거나 낮은 일자리란 결코 없다.


6. 우정을 지켜라
서로 생각이 달라서 친구와 다퉜다면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 편이 현명하다. 끝까지 화해의 손길을 거부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 친구를 잃는다는 것은 크나큰 손실이기 때문이다. 비록 그 친구와의 관계가 전보다는 서먹해졌다고 하더라도 화해하는 편이 친구를 완전히 잃는 것보다는 낫다.


7. 마음의 상처는 오직 자신만이 입힐 수 있다
해리슨 대통령: 그렇다면 자네는 작다고 해서 자네의 명예를 짓밟고 모욕하는 자를 그냥 내버려두겠다는 건가?
카네기: 각하, 저 자신 이외의 그 누구도 제 명예를 짓밟을 수 없습니다. 명예에 상처를 입히는 것은 본인만이 가능한 일이니까요.


8. 여행으로 마음을 넓혀라
할 수만 있다면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누구나 세계 일주를 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계를 돌아본 후에야 보아야 할 모든 것을 보았다는 느낌이 든다. 부분이 모여 조화로운 전체를 이루는 것, 그리고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하나의 분명한 목적을 위해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9. 부자인 채로 죽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부의 복음 The gospel of wealth》을 출간한 이후로 나는 부를 축적하려는 노력을 그만두고 이 책의 가르침에 따라 살기로 했다. 부의 현명한 분배라는 훨씬 더 중요하고 어려운 과제에 뛰어든 것이다. 
 

 오랜만에 남한산성에 오른다.

추운 날씨인데다 제법 이른 시간이건만, 입구부터 사람들로 북적인다. 저마다 배낭 하나씩 걸머 매고 등산 지팡이를 든 사람도 적지 않다. 마치 산악회 시산제 (始山際)에 몰려든 사람들 같다. 두터운 외투와 등산바지에 등산화 장갑까지 갖춘 사람들은 저 눈 덮인 골짜기를 굴러도 거뜬할 것이다.

그에 비해 내 옷차림새가 너무 허술하다.

사람들이 내뿜은 허연 입김과, 골짜기에 내려앉은 새벽안개와, 군데군데 피어오르는 낙엽 태우는 연기와, 재떨이 앞에 오골거리며 모인 사람들이 피워대는 담배연기로 주위가 온통 부옇다.

'남한산의 푸른 정기 담뿍이 안고, 새 일꾼 기다리던 복 받은 땅에,

  내일 위해 형제들이 땀을 흘리니 천년만년 이어나갈 생활의 터전...'

'성남 시민의 노래' 가 나무에 엉성하게 매달린 볼성사나운 공용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진다. 주변을 둘러본다. 아무도 귀담아 듣는 이가 없다.

노래 가락이 참 허허롭다.


 

 

작가 김 훈의 '남한산성은 시작부터가 이처럼 허허롭다.

페이지를 열어보기도 전에 우리는 이미 이 책의 결말을 잘 알고 있다.

삼전도 여진의 군영 앞에서 청의 칸에게 조선의 국왕이 땅바닥에 이마를 찧어가며 치욕의 삼배를 올리는, 우리나라 역사상 유래가 없는 굴욕의 마지막 장면을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이 책 ‘남한산성’ 은 한마디로 허허로우며 무참하다.


여진의 장수 용골대가 이끄는 여진의 군사가 청천강을 건넜다는 소식에 닥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허약한 조정이 그렇고, 그 난리에 닥쳐서도 옳으니 그르니 공허한 논의만을 늘어놓는 당상하관들이 그렇고, 남한산성을 향하는 길 송파나루에서 만난 사공의 입막음을 위해 환도를 꺼내 목을 베고 돌아서는 예조판서 김상헌으로 대표되는 소위 관리들의 힘의 미약함도 그렇고, 추위에 얼어 빠지는 군병들의 손발을 돼지기름에 적신 헝겁 몇 조각으로 겨우 싸매어 보살피는 이시백의 손길이 그러하다.

 

대장장이 서날쇠에게 종사의 생사를 걸 왕의 격문을 들려 보내며 예조판서가 천비(賤卑)와 맞절하여 배웅하는 장면도 그렇고, 청의 군사들에게 끌려가던 여인네들의 등에서 떼어진 아기들이 꽁꽁 언 강 위에 던져져 줄줄이 박혀있는 장면을 전하는 애꾸눈 땅꾼의 이야기도 그렇고, 양지쪽에 모여앉아 이를 털어내며 콩찌기로 연명하는 신세한탄과 더불어 차라리 하루빨리 출성(出城)하기만을 바라는 미천한 군병들의 저질스런 대화도 그렇고, 출성을 반대하며 행궁마당에 포복하고 눈물로 고변하다 야음을 틈타 개구멍으로 도망쳐버리는 관리들의 비겁함도 그렇다.

끝내는 칸의 황색 일산 앞에 무릎 꿇고 이마를 땅에 찧으며 세자와 함께 삼배하는 조선왕의 치욕스런 모습도 그러하다.


작가 김 훈은 이러한 허허로움과 무참함을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담담하고 무심하게 그려낸다.

마치 자신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인 것처럼, 그냥 멀리서 바라보는 구경꾼인 냥.


한 나라의 운명이 군데군데 구멍이 숭숭 뚫리고 물에 퉁퉁 불어 곧 허물어져 내릴 성벽과도 같은, 홍이포 포구 앞에 무방비로 벌어진 계집의 가랑이 같은, 살아서 산 것이 아니고 죽어서도 죽은 것이 아닌 이 비참하고 치욕스런 상황을,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그리고 치열하게 적어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칸에게 보낼 국서를 올리라는 명을 받고는 줄줄이 맞아서 죽거나 미쳐나간 조선의 중신들처럼 말이다.

나도 무심하게 마지막 장을 다 읽고 허허로움을 덮는다.


어느새 문루가 우뚝 선 남문 앞에까지 올랐다. 산성 벽을 타고 내려 부는 겨울바람이 매섭게 내 눈두덩을 할퀴어 다시 성루를 올려다보지 못하였다. 

내 머리와 등에서 모락모락 김이 오른다. 주변사람들에게서도 그러하다.

어떤 이는 물병을 꺼내들고 물을 마시고, 길 건너 사람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포즈를 취해가며 사진을 찍고, 어떤 이는 담배를 꺼내 물고는 목에 두른 수건으로 식은 땀을 훔쳐내고, 옆에 선 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시시덕거리며 수다를 떠는 등 저마다의 볼일로 어수선하다.

그렇게 남문성벽 앞이 분주해졌다.


'남한산의 푸른 정기 담뿍이 안고, 새 일꾼 기다리던 복 받은 땅에,

  내일 위해 형제들이 땀을 흘리니 천년만년 이어나갈 생활의 터전...'

혼자서 ‘성남 시민의 노래’를 흥얼거린다.

다시 성벽을 치닫던 매서운 바람이 어깨를 할퀴고 지난다. 뒷덜미가 저릿하게 시리다.

저 먼 발치의 산성 골짜기 숲 자락이 엉성하여 허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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