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를 위하여

                            안도현


그대를 만난 엊그제는
가슴이 아팠습니다
내 쓸쓸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개울물 소리가 더욱 크게 들리던 까닭은
세상에 지은 죄가 많은 탓입니다
그렇지만 마음 속 죄는
잊어버릴수록 깊이 스며들고
떠올릴수록 멀어져 간다는 것을
그대를 만나고 나서야
조금씩 알 것 같습니다
그대를 위하여
내가 가진 것 중
숨길 것은 영원히 숨기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대로 하여
아픈 가슴을 겪지 못한 사람은
아픈 세상을 어루만질 수 없음을 배웠기에
내 가진 부끄러움도 슬픔도
그대를 위한 일이라면
모두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그대를 만나고부터
그대가 나를 생각하는 그리움의 한 두 배쯤
마음 속에 바람이 불고
가슴이 아팠지만
그대를 위하여
내가 주어야 할 것들을 생각하며
나는 내내 행복하였습니다
...........................................................

내 마음을 알아주기 바란 적 없고
빈 가슴 한 구석 채워주기 기대한 적 없고
부족한 지혜를 구한 적 없고
가슴의 상처를 부끄러워 한 적 없다.


바라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했으므로


하늘을 보기를 바라고
귀 기울이기를 바라고
노래하기를 바라고
함께 걷기를 바라고
곁에 있기를 바라던 것


바라는 것은 모두 욕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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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에서

                       오세영


사는 길이 높고 가파르거든
바닷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보아라
아래로 아래로 흐르는 물이
하나 되어 가득히 차오르는 수평선,
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자가 얻는 평안이
거기 있다

 
사는 길이 어둡고 막막하거든
바닷가
아득히 지는 일몰을 보아라
어둠 속에서 어둠 속으로 고이는 빛이
마침내 밝히는 여명,
스스로 자신을 포기하는 자가 얻는 충족이
거기 있다


사는 길이 슬프고 외롭거든
바닷가,
가물가물 멀리 떠 있는 섬을 보아라
홀로 견디는 것은 순결한 것,
멀리 있는 것은 아름다운 것,
스스로 자신을 감내하는 자의 의지가
거기있다 ..
...............................................................................

우리 삶을 어떤 목적 위에 두는 것은 다소 위험해 보인다.
어쨌든 한 사람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온 마음을 기울여 준비하고,

온 힘을 쏟아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 감동스럽기까지 하다.

19살의 어린 소녀가 자신의 꿈인 프로파이터가 되기 위해 피땀을 쏟고,

지쳐 쓰러진 몸을 겨우 일으켜 다시 상대와 맞서는 모습을 보면서

안쓰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가슴 뭉클하기도 했다.
결국 데뷔전을 멋지게 승리했다.

자신과 싸워 이긴 것이다.
반면 패배한 선수는 폭품 눈물을 쏟아냈다.
경기에 진 것이 억울하기도 하지만 아무 것도 못해보고 졌다는 자괴감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곧 울음을 멈추고 다음에는 꼭 더 열심히 운동해서 멋진 경기를 보이겠다고 다짐한다.

 

반드시 목표를 이루고 싶다면
결코 자신을 속이지 않아야 한다.
목표를 이루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면
계속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넌 지금 최선의 노력을 다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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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나희덕


살았을 때의 어떤 말보다
아름다웠던 한마디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그 말이 잎을 노랗게 물들였다.


지나가는 소나기가 잎을 스쳤을 뿐인데
때로는 여름에도 낙엽이 진다.
온통 물든 것들은 어디로 가나.
사라짐으로 하여
남겨진 말들은 아름다울 수 있었다.


말이 아니어도, 잦아지는 숨소리,
일그러진 표정과 차마 감지 못한 두 눈까지도
더이상 아프지 않은 그 순간
삶을 꿰매는 마지막 한땀처럼
낙엽이 진다.
낙엽이 내 젖은 신발창에 따라와
문턱을 넘는다, 아직은 여름인데.
.................................................

생때같은 자식을 바다에 묻고
40여일을 굶다가 쓰러진
한 아비의 맥없는 눈물을 보고 있으려니
무기력하기만한 내 모습이 한없이 부끄럽다.


진실은 결코 침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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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물점 여자

                        홍정순


예외 없다 사람 손 가야 비로소
제값 하는 무수한 연장들 틈새에서
시 쓰는 여자가 있다
새벽 여섯 시부터 밤 여덟 시까지
못 팔아야 살지만
못 팔아도 사는 여자
십 년 전 마음에 심은
작심(作心)이라는 볼트 하나
한 바퀴 더 조여야 하는
사월은 성수기
작업 현장에 연장이 필요하듯
여자에겐 시간이 절실하다
시를 쓰겠다고 한 시간 일찍 나와
어둠 속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여자를
고요 속 새벽이 받아들인다
뒤란에서 들려오는 새 소리
흙집을 개조한 철물점 기와지붕엔
아직도 이끼가 끼어 있어
늘 기역자로 만나야 하는 새 소리는
어긋나 포개진 기왓장 틈새에
알 낳고 품었을 시간들
지난 십 년을 생각나게 하는데
용마루 위 일가(一家) 이룬
새들의 울음소리에
자꾸만 착해지는 여자
지명 따라 지은 이름 '대강철물점'
간판 너머엔
적당히 보리밭 흔드는 바람이 불고
멋대로 떨어지는 감꽃도 싱싱하지만
개줄 하나 팔고 앉으면
받침 하나 빠지고
물통 하나 팔고 앉으면
단어 하나 달아난다
오늘도
철물처럼 무거운 시
플라스틱 약수통처럼 가볍고 싶은 시
........................................................................................

제 앞 섶을 잘 매조지하는 일.
일상의 매 순간에 최선을 다 한다는 거창한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실은 삶의 단계 마다 잘 매듭을 짓고
순간 순간 완성을 만들어 보고자 한다면
그때마다 단추를 딱! 잘 채워서
우선 제 꼴을 단정히 잡아놓을 일이다.

그게 우리가 알 수 있는 삶의 몇 안 되는 답을 찾는 길이다.

빗소리

                    주요한


비가 옵니다.
밤은 고요히 깃을 벌리고
비는 뜰 위에 속삭입니다.
몰래 지껄이는 병아리같이.


이즈러진 달이 실낱같고
별에서도 봄이 흐를 듯이
따뜻한 바람이 불더니
오늘은 이 어둔 밤을 비가 옵니다.


비가 옵니다.
다정한 손님같이 비가 옵니다.
창을 열고 맞으려 하여도
보이지 않게 속삭이며 비가 옵니다.


비가 옵니다.
뜰 위에 창 밖에 지붕에
남 모를 기쁜 소식을
나의 가슴에 전하는 비가 옵니다
...............................................................

마른 장마 끝의 더위는 대단했다
날이 저물어도 한낮의 열기가 대기를 지배했고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는 밤이 늘어갔다.


훌쩍 어딘 가로 떠나고 싶기도 했다.
대단한 것을 얻을 것도
딱히 잃어버릴 것도 없는 일상
그리고 보잘 것 없던 하루...


무더위에 지쳐 잠시 일상의 감사를 잃어버린
그 날 밤,
갑자기 천둥번개로 사방이 진동하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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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위의 집


                              김진경


기차는 이 간이역에서 서지 않는다
오직 지나쳐지기 위해 서 있는 낡은 역사
무언가 우리의 생에서 지워지고 있다는 표시
시간 위의 집
.................................................................................... 
제 물건을 잃어버리는 일이 없다고
늘 자신하던 내가
하루에 휴대전화를 두 번이나 잃어버렸다.
더구나 어디서 어떻게 잃어버렸는지
도무지 생각이 안나더라는...


어렵사리 새벽녘에 다시 되돌아 온
낡은 휴대폰처럼
이제 기억조차 낡아 가는
이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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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꽃 바라보며

   - 어머니 생각


                                     정완영


분단장도 모른 꽃이, 몸단장도 모른 꽃이
한 여름 내도록을 뙤약볕에 타던 꽃이
이 세상 젤 큰 열매 물려주고 갔습니다.
..........................................................................

얼마 전 모친상을 당한 지인

주인 나간 집 지키는 강아지마냥

담벼락에 바싹 붙어 쭈그리고 앉아있다.

 

애 쓰셨다고 인사말을 건내자

담배 연기를 흔적도 없이 다 마신다.

어디서 그렇게 많은 연기가 들어갔나 싶을만큼

입으로 코로 토하듯 연기를 뿜어내며 맥 없이 혼잣말을 한다.

'아침에 전화할 일이 없어. 너무 허전하더라'

 

오랫동안 아들도 못 알아보고 누워만 계셨건만

살아 계실 때는 이렇게 보고 싶을 줄은 미처 몰랐다며

푸른 담배연기를 뿜어올리며 하늘을 쳐다본다.

낚싯대 던지듯 아주 멀리 멀리 시선을 던진다

 

근방에서는 소문난 효자였던 그이건만

어머니 가시는 길을 막아 설 수는 없었다.

우리 모두가 그렇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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