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풍경 2

 

                   천양희


헐벗은 나무
둥지튼 새들은 떠나갔다
허둥대는 바람같이
떠도는 마음 하나 못 붙들고
삶은 종종 살얼음판이었다
나는 알 수 없었다
사람들은 어째서
같이 살면서 혼자 일어서야 하고
사람들은 어째서
낯선 거리 떠돌며
돌아가려 하는지
봄은 아직 멀었는데
기다렸다 기다렸다 기다렸다
눈보라 헤치며 어느 날
..............................................................

돌이켜 생각해 보면,
우리 사는 동안
단 한순간도 허투루 흐른 시간이 있었던가?
단 한 사람도 허튼 만남이 있었던가?


그리 만든 건
사실...
 
고스란히
내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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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다


                             천양희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고 벼르던 날들이
다 지나간다
세상은 그래도 살 가치가 있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지나간 것은 그리워진다고 믿었던 날들이
다 지나간다
사랑은 그래도 할 가치가 있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절망은 희망으로 이긴다고 믿었던 날들이
다 지나간다
슬픔은 그래도 힘이 된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가치 있는 것만이 무게가 있다고 믿었던 날들이
다 지나간다
사소한 것들이 그래도 세상을 바꾼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바람소리 더 잘 들으려고 눈을 감는다
이로써 내 일생은 좋았다고

...........................................................................................

 

 

2009년의 마지막 달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새벽녘에 문득 좀처럼 정리되지 않는 생각에 쫓겨 잠이 깼다.
매운 겨울 바람에 차가울 대로 차가워진 바깥 풍경을 내려다 본다.


그래,

언제나 나를 키우는 것은 바람...
언제나 나를 깨우는 것은 눈물...
언제나 나를 세워주는 것은 마주잡은 너의 따뜻한 손...

언제나 지나간 시간은 아름다운 것
그렇게 믿고 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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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양희


벽에다 못 하나 박았다. 벽이 울렸다.
박힌 것은 못인데 벽이 다 울렸다.
그 소리 벽을 들어올렸다.
못 하나 받으려고 벽은 버텼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종일 못을 박았다.


벽에서 못 하나 뽑았다. 벽이 울렸다.
뽑힌 것은 못인데 벽이 다 울렸다.
그 소리 마음을 들어올렸다.
못 하나 보내려고 벽은 버텼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종일 못을 뽑았다.

..............................................

 

우연히 지하철 역 한켠에 붙은

천양희 시인의 시를 한 편 보게 되었습니다.

'바다' 라는 제목의 시였는데,

마음 한구석에 무언가 와 닿는 느낌이어서

천양희 시인의 시를 둘러 보았습니다.

이리 저리 둘러서 시인의 이야기를 듣다가

가슴 한켠이 시릿해졌습니다.

 

사람의 일이 다 못 박고 못 뽑는 일인가 봅니다.

들고 나는 자리는 없어지는데

그 느낌은 남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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