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가을


                    이시영


가을 속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끊어질 듯 끊어질 듯 가까이서 멀리서 나 부르는 소리
부르다가 다가서면 귀 세우고 더듬이째 잦아드는 소리


가을 속에는 누가 오고 있을까
산 넘고 물 건너 긴 다리를 뻗어
쓰러져서도 발소리 죽여 야밤을 타는 소리
새벽을 딛는 소리


가을 속에는 누가 기다리고 있을까
풀섶에 스치는 타는 눈동자
등뒤에서도 갈참나무 뒤에서도 빛나는 눈동자
가을 속에는 누가 누가 숨어 오고 있을까

......................................................................

낙엽...
사사락 낙엽 구르는 소리

찬바람...

옷깃을 여미며 손등에 닿는 냉기

새벽 어스름...

어둠에 기대선

기다림, 그리고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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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똥축제일정.hwp

 

출처 : 한국어린이출판협의회
글쓴이 : 북앤이벤트 원글보기
메모 :

화목 (火木)

                              송정란


민박집 뒷방 툇마루 아래 가지런히 쟁여둔 장작을 바라본다
불을 품고 얌전히 누워 있기가 어디 쉬운 일이던가
장작 사이 벌어진 틈새들이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토해낸다 캄캄한 구멍들이 간신히 버티고 있는 게 보인다
욕망의 마른 혓바닥들이 꿈틀거리며 한꺼번에
기어나올 것만 같다 손만 갖다대도
모든 것이 허물어질 것이다,
제멋대로 몸뚱이를 굴릴 것이다,
마음 속에서 수없이 무너지는 연습을 하며
뼈속까지 타오르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성냥개비 하나의 작은 불씨에도
우르르 몸을 내던질 것 같은 마음의 장작들,
멀리 서울을 떠나온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질 것이다, 그럴 것이다
곧 진눈깨비가 쏟아질 것이다, 그럴 것이다
........................................................................

 

변변히 가릴 것도 없이
구멍 숭숭 난 헌 거적
살짝 덮었으니

겨우 내
눈비 다 맞고
찬바람 맞고
꽁꽁 얼어붙었다

 

한 낮 맥 빠진 볕에 잠시 몸을 녹이고
겹겹이 쌓인 덕에 겨우 제 몸 하나는 건사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단단히 마른 심장 한 가운데 불씨

끝내 타오르는 순간이 오면
매서운 불길을 내뿜게 될 것이다.
불꽃으로 타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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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블로거가 똑같은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걸 보고나니 나 역시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난 과연 독서를 위해 책을 사는 것인지, 아니면 장식이나 허세 등의 다른 이유도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지를...

더구나 최근 온라인 서점이나 오픈마켓을 통한 1,000-2,000원대의 싼 책들이 다량 유통되는 이 책시장이

지금 정상적으로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

  

첫번째, 내가 책을 사는 대부분의 경우는 읽기 위해서가 맞다.

특별히 책을 주는 사람도 없고, 구하려고 노력하지도 않는 내게 책이 마구 생길 턱이 없다.

더구나 내가 좋아하는 책. 사고싶은 책이 말이다.

 

어쨌든 난 책을 많이 사는 편에 속한다. 음반도 그렇고...

내 취미생활에 매우 중요한 부분인 책구매는 어쨌든 좋아하는 책을 찾아서 사는 것이니

용도는 분명 독서를 위함이다.

 

그런데 올 여름을 전후해서 내겐 다소 이상한 상황이 벌어졌다.

인터넷서점의 헌책방을 이용하면서부터 읽지 않게 되는 책이 급격히 늘고,

그것들이 차츰 쌓이면서 더 이상 새 책을 구매하지 않게 된 것이다.

 

같은 권수의 새책을 구매했다면 다섯에서 열배는 더 비용을 들였을텐데

덕분에 적지않은 책을 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비용은 오히려 크게 줄었다.

물론 읽은 책도 현저히 줄었다.

 지금 내 방엔 채 뜯지도 못한 책박스가 쌓여 있어 당분간은 책을 사지않을 것이다.

 

책을 사지않는 또 하나의 이유는 최근 구입한 스마트폰이 내 독서 취미에 들이는 시간의 대부분을 잡아먹어 그나마도 책을 읽어내지 못해 적체되어있기 때문인데 이 또한 적지않은 이유이다.

지금도 스마트폰으로 글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아직은 여러가지 불편한 점이 있지만 이 녀석의 유용함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만큼 많다

당분간 책을 잡는 시간이 더 줄 게 뻔하다.

 

싼 책들이 대량으로 쏟아지면서 난 분명 독서를위한 구매보다 수집하기에 더 치중했다.

그리고 독서시간의 대부분을 스마트폰에 빼앗기고 있다.

이런 여러상황을 미루어 짐작해보면 이 출판시장의 대변화는 ㅡ 몰락이라 표현하게 될 수도 있을 듯 ㅡ

이제 급격히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책을 한동안 보지 않았으니 추천을 할 수도 없다

흰 바람벽이 있어


                           백석


오늘 저녁 이 좁다른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쓸쓸한 흰 바람벽에
희미한 十五燭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샤쯔가 무더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어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늬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골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

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 하눌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

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스 쨈'과 陶淵明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

* 때글다 오래도록 땀과 때에 절다
  개포    강이나 내에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
  울력    여러 사람이 힘을 합하여 하거나 이루는 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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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말에 폭설이 쏟아지고, 기온은 영하를 기록하고...

9월 푹푹찌는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맑은 날을 찾아 볼 수가 없는 이상한 날씨가 계속 이어져

이젠 봄, 가을이 없어시나 했던 9월말 가까운 어느 날...

 

밤새 비가 쏟아졌던 어느 날 아침, 끝이 어디인지 보이지 않을만큼 멀리까지 맑게 보이던 날...

난 구름이 좋다. 그래서 바로 그날 꼬박 한 시간을 서서 구름 사진을 찍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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