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잎


              김돈식


늦가을 금화같은
은행잎들이
쏴아 부는 바람에
일시에 다 떨어져서 없다.
사람들도 가진 돈 있으면
나처럼
멋지게
다 쓰라고 한다.
.......................................................................

나처럼
멋지게
다 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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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행나무


                             오인태

 
                         당신이 나를 
                    용서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당신을 
                 용서할 수 있는 날이어도
                         괜찮습니다

      자신의 가슴을  멍들게 한 땅을 노랗게 덮으며

 

       떨
       어
       지
       는


    은행잎을 보며 지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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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에 없어도


                      조병화


길을 다하여 먼 날
우리 서로 같이 있지 못해도
그 눈 나를 찾으면
그 속에 내가 있으리


목숨 다하여 먼 날
우리 서로 같이 있지 못해도
그 생각 나를 찾으면
그 속에 내가 있으리

.............................................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어.
세월이 흘러가면 모두가 변하지.


그 사람의 모습이 그렇고
그 사람의 주변이 그렇고
그 사람의 모든 것이 그렇고
그 사람 또한 그러하지.


단 하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지.
아니, 어쩌면 제발 변하지 않았으면 하지.


내 진심으로 그 사람에게 전했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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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꽃


                  정호승


이제는 지는 꽃이 아름답구나
언제나 너는 오지 않고 가고
눈물도 없는 강가에 서면
이제는 지는 꽃도 눈부시구나


진리에 굶주린 사내 하나
빈 소주병을 들고 서 있던 거리에도
종소리처럼 낙엽은 떨어지고
황국도 꽃을 떨고 뿌리를 내리나니


그동안 나를 이긴 것은 사랑이었다고
눈물이 아니라 사랑이었다고
물 깊은 밤 차가운 땅에서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 꽃이여

..............................................................

몇 가지 번거로운 일을 겪고 나니
한순간에 보름이 지나버렸다.


매섭게 몰아치는 바람에
어지럽게 낙엽이 흩어져 쌓이고 또 굴러가고...
길 가 여기저기 마른 나뭇가지도 부러져 떨어졌다.


어느 때부터인지 감각하지 못했던 시간, 그 속도...
만남과 헤어짐...
자꾸 예민해져가는 내 촉수가 반응한다.


입가에 맴도는 한 줄의 시
'언제나 나를 가르치는 건 시간...'


가을 바람이 싸늘하게 볼을 타고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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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길

 

                      김종해 
   
한로 지난 바람이 홀로 희다
뒷모습을 보이며 사라지는 가을
서오릉 언덕 너머
희고 슬픈 것이 길 위에 가득하다
굴참나무에서 내려온 가을산도
모자를 털고 있다
안녕, 잘 있거라
길을 지우고 세상을 지우고 제 그림자를 지우며
혼자 가는 가을길
........................................................

모처럼 바람이라도 쐴까 싶어
뒷동산이라도 올라가려는데
자욱한 안개가 발목을 잡는다.


며칠 계속된 안개로 새벽 공기가 영 마뜩치 않다.
그동안 자질구레하게 벌어진 일상의 때
안개 부옇게 내린 길가에
텁텁하고 매케한 냄새 자욱하다.


마스크라도 챙겨쓰고 잠시 나섰던 길,
운동화와 옷, 모자를 툭툭 털며
얼른 제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안개 자욱한 새벽 공기
그 속에 가득한 분진은


또 바람이 불고
비가 쏟아져야 가라앉을게다.


우리네 삶이 늘 그렇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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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가을


                    이시영


가을 속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끊어질 듯 끊어질 듯 가까이서 멀리서 나 부르는 소리
부르다가 다가서면 귀 세우고 더듬이째 잦아드는 소리


가을 속에는 누가 오고 있을까
산 넘고 물 건너 긴 다리를 뻗어
쓰러져서도 발소리 죽여 야밤을 타는 소리
새벽을 딛는 소리


가을 속에는 누가 기다리고 있을까
풀섶에 스치는 타는 눈동자
등뒤에서도 갈참나무 뒤에서도 빛나는 눈동자
가을 속에는 누가 누가 숨어 오고 있을까

......................................................................

낙엽...
사사락 낙엽 구르는 소리

찬바람...

옷깃을 여미며 손등에 닿는 냉기

새벽 어스름...

어둠에 기대선

기다림, 그리고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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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목 (火木)

                              송정란


민박집 뒷방 툇마루 아래 가지런히 쟁여둔 장작을 바라본다
불을 품고 얌전히 누워 있기가 어디 쉬운 일이던가
장작 사이 벌어진 틈새들이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토해낸다 캄캄한 구멍들이 간신히 버티고 있는 게 보인다
욕망의 마른 혓바닥들이 꿈틀거리며 한꺼번에
기어나올 것만 같다 손만 갖다대도
모든 것이 허물어질 것이다,
제멋대로 몸뚱이를 굴릴 것이다,
마음 속에서 수없이 무너지는 연습을 하며
뼈속까지 타오르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성냥개비 하나의 작은 불씨에도
우르르 몸을 내던질 것 같은 마음의 장작들,
멀리 서울을 떠나온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질 것이다, 그럴 것이다
곧 진눈깨비가 쏟아질 것이다, 그럴 것이다
........................................................................

 

변변히 가릴 것도 없이
구멍 숭숭 난 헌 거적
살짝 덮었으니

겨우 내
눈비 다 맞고
찬바람 맞고
꽁꽁 얼어붙었다

 

한 낮 맥 빠진 볕에 잠시 몸을 녹이고
겹겹이 쌓인 덕에 겨우 제 몸 하나는 건사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단단히 마른 심장 한 가운데 불씨

끝내 타오르는 순간이 오면
매서운 불길을 내뿜게 될 것이다.
불꽃으로 타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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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바람벽이 있어


                           백석


오늘 저녁 이 좁다른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쓸쓸한 흰 바람벽에
희미한 十五燭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샤쯔가 무더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어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늬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골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

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 하눌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

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스 쨈'과 陶淵明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

* 때글다 오래도록 땀과 때에 절다
  개포    강이나 내에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
  울력    여러 사람이 힘을 합하여 하거나 이루는 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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