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幸福)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방울 연련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
요즘, 시(詩)에 푹 빠져 사는 나에게 누군가 물었다.
'당신은 나를 보면 어떤 시가 생각이 나느냐고...'
짧은 순간, 많은 시와 사람과 사건과 시간들이 생각나고 사라졌다.
누군가에게 적어 보냈던 시(詩)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읽었던 시(詩)
누군가를 보내며 읽었던 시(詩)
누군가를 위하여 썼던 시(詩)
그래, 우리는 늘 서로 마음을 전하지 못하고 산다.
어쩌면 우리는 마음을 나눌 여유를 갖지 못하고 산다.
시(詩) 한 편으로 마음을 전하고 나눌 수 있다면
사랑을 전하고 나눌 수 있다면 좋겠다.
오늘, 진정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 시(詩)를 전해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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