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에 
  
                     오세영 
 

겨울이 가면
봄이 온다는 것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봄이 오면
잎새 피어난다는 것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잎새 피면
그늘을 드리운다는 것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나, 너를 만남으로써
슬픔을 알았노라.
전신에 번지는 이 초록의 그리움을
눈이 부시게 푸르른 봄날의 그
꽃 그늘을,

............................................

 

눈부시게 빛나는 봄날의 화려함,

그 축제의 계절을 노래한 시는 많다.

이 시를 읽으면...

역시...

오세영 시인을 봄의 시인이라고 불러도 될 만하다...

잠지

                       오탁번


할머니 산소 가는 길에
밤나무 아래서 아빠와 쉬를 했다
아빠가 누는 오줌은 멀리 나가는데
내 오줌은 멀리 안 나간다


내 잠지가 아빠 잠지보다 더 커져서
내 오줌이 멀리멀리 나갔으면 좋겠다
옆집에 불 나면 삐용삐용 불도 꺼주고
황사 뒤덮인 아빠 차 세차도 해주고


내 이야기를 들은 엄마가 호호호 웃는다
- 네 색시한테 매일 따스운 밥 얻어먹겠네

.........................................................

 

아버지와 목욕탕 갔던 일이 문득 생각났다.
아버지 고추는 크고 내 고추는 작고...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부끄러움으로 몸을 움츠렸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작동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와의 목욕에 대한 기억이 그리 많지는 않다.
오히려 그때가 그리워질 때도 있다.

오늘은 아들과 목욕을 해야겠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조선 주먹의 황제 김두한

 

 

 

김두한의 가족들(가운데 따님 김을동)

김두한의 결혼식 사진

우리들의 영원한 큰 형님 김두한

 민중들 앞에서 연설하는 김두한

 

혁명자 박정희 소장과 함께

 그 당시 우미관 식구들

 한때나마 김두한으로 불리었던 세 사람

졸린 눈에 팔자걸음? 이 사람이 바로 전설의 싸움꾼 시라소니

 

 

 

이 사람이 바로 정치 깡패 이정재 (박정희의 혁명으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짐)


雜詩 (歲月不待人)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人生無根체(인생무근체)
인생은 뿌리도 꼭지도 없으니 
飄如陌上塵(표여맥상진)
들길에 날리는 먼지와 같은 거라. 
分散逐風轉(분산축풍전)
흩어져 바람 따라 굴러다니니 
此已非常身(차이비상신)
이것이 이미 불변의 몸뚱아리 아닌지. 
落地爲兄弟(낙지위형제)
태어나면 모두 형제가 되는 것 
何必骨肉親(하필골육친)
어찌 한 핏줄 사이라야 하랴. 
得歡當作樂(득환당작악)
즐거울 땐 응당 풍류 즐겨야 하니 
斗酒聚比隣(두주취비린)
한말 술로 이웃과 어울려 본다네. 
盛年不重來(성년불중래)
한창 나이 다시 오는 거 아니고 
一日難再晨(일일난재신)
하루에 두 새벽이 있기는 어려워. 
及時當勉勵(급시당면려)
늦기전에 면려해야 마땅한거야 
歲月不待人(세월불대인)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으니. 
글/ 도연명(陶淵明) 
그림/ 운보(김기창)화백님의 청산도 중에서
출처 : 그리움은 강물되어
글쓴이 : 오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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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장안문(長安門) 수원 화성(華城)의 북문으로 정조 때 건축되었다. 서울의 남대문과 비슷한 형태지만 규모가 더 크고 바깥에 옹성을 갖추었다. 무지개문 위에 2층 누각을 올리고 양쪽 계단으로 오르게 했다.

남한산성 수어장대(守禦將臺) 경기도 광주 남한산성 안에 있는 조선 후기의 2층 건물. 인조 때 남한산성을 축조하면서 지은 4개의 장대 중 유일하게 남았다. 아래가 넓은 데 비해 2층은 좁은 형태이다. 정면에 ‘수어장대’라고 쓰인 현판이 걸려 있다.

수원 화서문(華西門) 수원 화성의 서문으로 보물 제403호. 단층 누각에 옹성을 쌓았다. 멀리 장안문이 보인다. 화성은 남문인 팔달문과 북문인 장안문이 통행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화서문은 비교적 한적한 편이었다.

수원 화홍문(華虹門) 수원 화성의 북쪽 수문으로 북수문(北水門)이라고도 불렀다. 7개의 석조 무지개로 수문을 만들고 수문 돌다리 위에 다시 처마 곡선이 유연한 문을 만들었다. 왼편 뒤쪽으로 장안문이 보인다. 주변의 자연풍광이 아름답다.

수원 전경 멀리 화성이 보이는 수원의 모습. 동생을 업은 아이 앞으로 물이 마른 내와 다리가 보인다. 기와집과 초가집이 뒤섞여 있다.

수원 화홍문과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 왼쪽이 화홍문이고 오른쪽 바위 위에 세워진 정자가 방화수류정이다. 이 정자에 오르면 주변을 두루 살피고 경치를 즐길 수 있었다. 소를 매어두고 한가롭게 쉬는 농부와 주변 경관이 썩 잘 어울린다.

건릉(健陵) 경기도 화성군 안녕리에 있는 정조와 효의왕후 김씨(孝懿王后 金氏)의 합장릉. 홍살문 뒤에 제례를 치르는 정자각(丁字閣)이 있다. 정조가 승하한 직후에는 부친 사도세자(思悼世子) 묘인 현륭원(顯隆園 ; 현재의 융릉) 동쪽에 능을 만들었지만 훗날 왕후와 합장하며 서쪽으로 옮겨 건릉이 되었다.

화성장대(華城將臺) 성벽 정상에 있어 안팎을 두루 살피며 군사를 지휘하던 2층 문루다. 정조가 쓴 ‘화성장대’ 현판이 걸려 있었다. 화성의 서쪽에 자리하고 있어 서장대(西將臺)라고도 불렀다.

화녕전(華寧殿) 정조의 어진(御眞)을 보관하는 전각. 부왕 정조가 부친 사도세자를 지극한 효성으로 받든 것을 본받고 기리기 위해 순조가 세웠다.

동북공심돈(東北空心墩) 화성의 동문인 창룡문(蒼龍門) 옆에 있는 돈대(墩臺)다. 공심돈이란 속이 빈 돈대라는 뜻. 내부는 3층으로 되어 있는데 둥근 벽을 따라 계단이 놓여 있어 소라각이라고도 부른다. 화성에는 모두 세 곳에 공심돈이 설치되어 있었다.

수원의 서호(西湖) 화성의 서쪽에는 농업용 관개시설로 만든 인공호수 축만제(祝萬堤)가 있다. 서호라고도 하며 정조 때 축조됐다. 항미정(杭尾亭)이라는 정자가 이곳의 경관과 풍치를 돋보이게 했는데, 사진은 항미정에서 바라본 서호 풍경이다.

권업모범장(勸業模範場) 1906년 일제 통감부가 일본 농법의 한국 이식을 목적으로 수원에 세운 기관이 권업모범장이다. 한국 농업의 시험·조사보다는 일본 농법의 지도·권장에 치중했다.

방화수류정과 용연(龍淵) 방화수류정은 용두암(龍頭岩) 위에 세워졌으며 아래에 있는 연못은 용연이라 불렀다. 용연 주위에는 버드나무를 심어 수원 성곽 주변에서 가장 경관이 좋았다. 못가에는 돌로 만든 용두가 자리잡고 있었다.

용주사(龍珠寺) 경기도 화성군 화산(花山)에 있는 절. 정조가 부친 사도세자의 묘인 현륭원을 관리하기 위해 세운 능사(陵寺)다. 정조가 김홍도(金弘道)에게 그리게 해 목판으로 만든 ‘불설부모은중경판(佛說父母恩重經板)’이 보관되어 있다.

수원 남제(南堤)의 버드나무길 남제는 수원 남쪽에 있는 저수지로 순조대에 축조되었다. 이 곳의 긴 버드나무길은 남제장류(南堤長柳)라 하여 수원8경 가운데 하나였다. 소에 물건을 싣고 지나던 장정이 사진에 담겼다. 우산을 든 모습이 인상적이다.

인천항과 시가 인천은 1883년 1월 개항했다. 서울의 관문인 만큼 일찍부터 도시가 발전하여 시가를 형성했다. 사진은 만국공원(萬國公園)에서 내려다본 인천항.

인천 일본인 거리 인천의 중심가. 일본식 4층 건물이 들어서 있고 오른쪽에는 서양식 3층 건물도 보인다. 한복을 입은 한국인이 일본인 거리를 지나가고 있다. 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인천의 일본인 거주지 1883년 개항 이후 인천에는 일본인이 모여 사는 조계(租界)가 만들어졌다. 지금의 자유공원 남쪽이다. 사진은 일본인 거류자가 급증하면서 형성된 주택가. 곳곳에 전신주가 서있다.

인천 부두 배에 실을 물건과 부린 물건이 즐비하게 쌓여있다.

인천 일본영사관 인천이 개항되자마자 일본은 서양식 2층 목조건물의 영사관을 준공했다. 1906년 통감부가 설치된 후에는 영사관을 이사청으로 개편해 청사로 사용했다. 1910년 이후에는 인천부 청사로 사용되었는데, 오늘날 인천 중구청 자리이다.

북한산 중흥사(重興寺) 대웅전 중흥사는 숙종대에 북한산성이 축성된 뒤 산성을 지키는 승군(僧軍)을 관장하며 큰 사찰이 되었으나, 1915년 홍수로 무너진 뒤 중건되지 못했다. 지금은 주춧돌과 축대만이 남아 있다.

파주 용미리 쌍미륵 경기도 파주 광탄면 용미리 용암사에 있는 마애입상. 보물 제93호. 고려 초기 석불로 알려져 왔으나 근래 들어 조선 세조 11년(1465)에 제작된 것으로 밝혀졌다. 세조와 정희왕후의 모습을 미륵불로 조각한 것이다.

개성 관아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은 조선시대에 개성부가 되어 유수(留守)가 파견되었다. 1906년 개성군으로 격하되었다가 1930년 다시 개성부로 환원되었다. 문루는 이층으로 위층엔 마루를, 아래층엔 4각으로 다듬은 돌기둥을 놓았다.

개성 서대문 원 사진첩에는 이 사진에 ‘개성 서대문’이라는 간단한 설명만이 붙어 있다. 오른쪽 큰 나무 아래 있는 정자는 길 가던 이들이 잠시 쉬어가는 자리였을 것이다.

개성 인삼밭 개성은 인삼재배의 중심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산삼이 수요에 비해 크게 모자라자 인삼재배가 시작됐는데, 조선 후기부터 개성이 대표적인 재배지로 떠올랐다. 이 때문에 개성상인은 인삼교역으로 유명했다.

개성 관음사 대웅전 개성 천마산 기슭에 있는 관음사의 대웅전. 고려 초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진 관음사는 주변 경치가 빼어나 ‘개성금강’이라고도 불렸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건물이고, 앞에 높이 4.5m의 7층석탑이 있다.

개성 선죽교 고려 말 정몽주(鄭夢周)가 피살된 곳으로 알려진 개성의 돌다리. 앞에 보이는 비각에는 정몽주의 사적을 새긴 비석이 있다. 아직도 정몽주의 혈흔이 남아 있다고 전해지는 다리 옆 시내에서 아낙들이 빨래를 하고 있다.

개성 두문동비(杜門洞碑) 경기도 개풍군 광덕산 서쪽 골짜기인 두문동은 고려 멸망 후 신흥 조선왕조에 반대한 충신 72명이 은거하다가 불타 죽었다고 전해지는 곳. 영조대에 이들을 추모하는 비문이 세워졌고, 정조대에 표절사(表節祠)가 세워져 이들의 충절을 기렸다.
고려 태조릉 경기도 개풍군에 있는 고려 태조 왕건과 비 신혜왕후 유씨(神惠王后 柳氏)의 묘. 능호는 현릉(顯陵). 송악산 서쪽 기슭 좌청룡·우백호 지세의 야산 자락에 자리잡았다. 능역 중앙에는 정자각(丁字閣)이, 입구에 홍살문이 있다. 오른쪽에 보이는 것은 비각이다. 현재 홍살문과 비각은 훼손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은진미륵(恩津彌勒) 논산 은진면 관촉사에 있는 고려 초기의 미륵보살상. 보물 제218호. 머리 부분이 커서 전체적으로 균형이 맞지 않는다. 높이가 18.2m나 되는 고려시대 최대의 석불입상으로, 앞에 서 있는 사람과 비교하면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석불 앞에 보물 제232호인 석등이 보인다.

공산성에서 바라본 금강 공주 공산성(公山城) 쌍수정(雙樹亭)에서 금강을 내려다본 풍경. 인조는 이괄(李适)의 난을 피해 이곳에 잠시 머문 적이 있는데, 쌍수정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영조대에 세워졌다는 정자다.

공주 진남루(鎭南樓) 공산성의 남문. 높은 석축기단을 좌우 대칭형태로 조성한 후, 두 석축기단에 걸쳐 누각을 세워 2층과 같은 효과를 냈다.

충주 충렬사(忠烈祠) 임경업어제비(林慶業御製碑) 충주 충렬사에 배향된 충민공(忠愍公) 임경업 장군을 기리는 정조의 어제비. 임경업은 조선 인조 때의 무장으로 친명반청(親明反淸) 활동에 앞장섰던 인물이다. 억울하게 죽었다고 하여 고려 무신 최영(崔瑩)과 함께 무속신앙에서 가장 존숭받고 있다.

충주 약사(藥寺)의 약사전과 삼층석탑 약사는 충주시 단월동에 있는 단호사(丹湖寺)의 옛 이름. 창건 연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조선 숙종 때 중건되었다. 약사전 내에는 고려시대 철불좌상(보물 제512호)이 봉안되어 있다. 앞뜰의 3층석탑과 깊게 휜 소나무가 단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충주 관아 비석 조선시대 관아 근처에는 전임 수령을 기리는 비석이 많았다. 대개는 수령들의 치적과 무관하게 만들어지곤 했다고 한다. 사진 전면의 비석에 새겨진 희미한 글귀로 보아 어느 현감의 ‘불망비(不忘碑)’였음을 알 수 있다.

폭포 충주와 제천 사이의 어느 산속에 있는 폭포인 듯한데, 정확한 위치는 확인할 길이 없다. 바위를 끼고 쏟아져내리는 물줄기가 용의 모습을 닮았다. 여름철 피서지로 인기를 누렸을 법하다.

충주 육각당(六角亭) 연꽃이 만발한 연못 한가운데 있는 육각 정자가 운치를 자아낸다. 현재 육각정과 연못은 없어지고 그 자리에 충주교육청이 들어서 있다.

대구 거리 상점들이 즐비한 대구의 거리. 한복 차림을 한 사람들이 오가고 있다.

대구 달성공원(達成公園) 달성은 본래 삼국시대의 성곽인데, 1906~07년에 성곽을 해체하고 도로를 만들어 공원으로 사용했다. 일본거류민단이 이곳에 신사(神社)를 세웠다고 하는데, 사진에 보이는 것이 그 신사로 추정된다.

부산 일본인 거리 부산의 일본인 거리. 지게로 짐을 나르는 짐꾼은 한국인이다.

부산항 부산은 1876년 병자수호조약 체결로 개항장이 되었다. 일제는 1905년 전후 경부선 철도 개통과 관부연락선(시모노세키와 부산을 오가던 배) 취항, 부산항 축항(築港)공사 등 일련의 사업을 통해 부산을 한국침략의 발판으로 삼았다. 사진은 일본인 공동묘지가 있는 아미산에서 내려다 본 부산항.

부산 초량 부산 용두산 아래 초량은 숙종대부터 왜관(倭館)이 있던 곳. 개항 이후 이곳은 일본인 거류지가 되었다.

부산항 매립지 부산은 연안의 땅이 몹시 좁았기 때문에 새로운 땅을 만들기 위해 1902년 개펄 매립공사를 시작했다. 매립지에 부산역 부지가 만들어지고 부두지역이 확대되어 세관과 제1부두가 완성됐다.

부산항 잔교(棧橋) 1905년 관부연락선이 취항하자 일본에서 한국으로 오는 일본인이 크게 증가했다. 이에 일제는 1906년 항만에 철도잔교를 놓아 통행을 도왔다가 1918년에 철거했다. 사진은 관부연락선에서 내려 잔교를 건너는 일본인들.

부산세관 부산이 무역항이 되면서 관세수입이 증가하자 1882년 해관(海關)이 설치되었다. 부산세관으로 이름이 바뀐 1906년 무렵 일본인들은 세관을 새로 지었다. 사진은 공사에 필요한 목재를 나르는 장면으로 보인다.

부산 일본군수비대 1895년 일본군이 부산에 주둔했지만, 이 무렵 한국군은 본래 있던 군진과 수영마저 폐지되고 진위대(鎭衛隊)도 파견되지 않았다. 일본군수비대는 송현산 북쪽 기슭에 병사를 짓고 주둔하다가 훗날 대신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목포이사청과 우편국 목포는 1897년 개항했다. 1906년 통감부가 설치되면서 일본영사관이 이사청으로 개편되었다. 이 건물을 중심으로 일본 기관들이 들어섰고 일본인 거류지가 형성되었다.

군산 전경 1899년 개항한 군산은 호남평야에서 생산된 쌀을 일본으로 보내는 항구였다. 미곡반출의 관문이었던 것. 사진에 한옥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일본인 거류지임을 알 수 있다.

목포 시가 바다가 보이는 목포 시가지. 일본인 거류지로 보인다.

함흥 남대문 함흥성의 정문으로 남화문(南華門)이라고도 불린 2층 누각. 왼쪽에 보이는 종각의 범종은 현종 때 주조된 것이라고 한다. 오가는 사람이 많고 상점이 보이는 것으로 미루어 함흥의 중심지였음을 알 수 있다.

함흥 북문과 성천강 함경도에서 가장 넓은 평야인 함흥평야를 가로지르는 강이 성천강이다. 함흥 북문은 성천강으로 나가는 관문이었을것이다

함흥 전경 함흥은 함경도의 중심도시로 함경남도 관찰부가 있었고 일제시대에도 도청 소재지였다. 본래 여진이나 거란이 발호하던 지역이라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도시였지만 주변 평야에서 생산되는 산물의 집산지이기도 했다.
형제암 사진에는 복가동(福哥洞) 형제암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두 바위의 모양이 비슷해서 붙여진 이름인 것으로 보인다. 사진 왼쪽 아래 물가에 갓을 쓴 한국인이 앉아 있고 오른쪽에는 일본군 몇 명이 한가롭게 쉬고 있다.

함흥 만세교(萬歲橋) 성천강을 가로지른 나무다리로, 군왕의 만수무강을 기원한다는 뜻에서 조선 태조가 붙인 이름이라 한다. 1905년 러일전쟁 중에 소실된 것을 일본군이 1908년 다시 세웠으나, 1928년 대홍수로 유실되자 1930년 철근콘크리트로 건설했다. 정월대보름에는 이곳에서 다리밟기 놀이를 했다.

함흥 향교 조선 초기에 현유(賢儒) 배향과 지방민의 교육 및 교화를 위해 창건되었다. 유생들이 모여 있는 누각이 제월루(霽月樓)다. 대성전과 명륜당 등 여러 건물이 들어서 있다.

함흥의 한국인 마을 함흥 어딘가에 있었을 한국인 마을. 사내들이 마을을 가로지른 내에서 지게로 져온 무를 씻고 있다. 담뱃대를 든 노인, 물건을 이고 가는 아낙, 아이들, 강아지까지 한가한 마을의 하루를 짐작할 수 있다.

함흥 동문 밖 귀주사(歸州寺) 고려 때 창건된 귀주사는 조선 태조 이성계가 글을 읽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대웅전 앞에서 일본인 가족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함흥 남문 밖 거리 상점들이 즐비한 거리 한가운데 짐을 실은 소달구지가 서 있다. 분위기로 봐서는 장터인 듯하다. 사진 왼편 병원 간판을 내건 가게 옆으로 더벅머리 청년이 지나간다.

회령 시가지 회령은 함경북도 국경지역으로 조선 후기부터 청국과 무역을 하던 곳이다. 두만강 연안의 이 도시는 탄광 덕분에 빠르게 발전했다.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지형의 회령 시가지에 소달구지들이 분주히 오간다. 오른쪽 산 중턱에 성문이 보인다. 전선줄이 하늘을 가른다.

회령 동문 안 거리 회령 동문 어귀의 풍경. 쉬고 있는 소달구지며 한가해 보이는 노인네, 성을 나서는 아낙의 모습이 마냥 평화롭다.

회령우편국 회령에 설치돼 있던 우편국 전경.

회령 현충사비(顯忠祠碑) 회령읍내의 현충사에 있는 비.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8명의 공적을 기려 세운 것으로, 높이 182㎝, 너비 60㎝ 크기의 현무암 석비다. 숙종 때 만들어졌다.

배로 두만강을 건너는 풍경 두만강을 건너면 간도(間島)다. 많은 한국인이 궁핍한 생활을 벗어나기 위해 두만강을 건너 간도지방으로 이주했다. 두만강을 건너는 배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일본 관헌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훈춘(琿春) 시가 훈춘은 중국 지린성(吉林省) 훈춘현의 중심지로, 간도로 이주한 한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던 곳이다. 1920년 이른바 ‘훈춘 사건’이 일어나 많은 한국인이 일본군에게 죽임을 당하기도 한 가슴 시린 고장이다.

옌지(延吉) 국자가(局子街) 중국 지린성의 옌지에도 한국인이 많이 살았다. 지금은 옌볜조선족자치주의 주도(州都)가 되었다. 국자가는 옌지의 중심지인데, 사진은 청나라 사람들이 오가는 모습을 담았다.

안둥현(安東縣) 부두 중국 랴오닝성(遼寧省)의 도시로 지금의 단둥(丹東). 평안북도 신의주와는 철교로 연결돼 있다. 한국인들이 만주나 중국으로 나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했던 관문이었다. 사진은 안둥 부두에 정박한 한국 사람들의 목선이다.


출처 : 그리움은 강물되어
글쓴이 : 오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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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해 먹기가 무섭게 짐을 꾸리고 나섰다. 드디어 우도행!

난생 처음 가는 길이라 그런지 나도 모르게 어린아이처럼 설렌다.

부지런히 차를 몰면서 집사람에게 한마디를 건냈다.

'11시 배탈라면 좀 서둘러야겠지?' ... 잠시 후 뒷자리에서 딸아이의 황당한 질문이 날아든다.

'아빠, 왜 11시에 배탈라?...'

 @.@...

 

차를 가지고 승선을 하니 계산이 복잡하다.

승선료 : 대인 2,000원씩, 소인 700원씩. 차량 승선료 11,000원 (모두 편도)

입장료 : 차량 4,000원 어른 1,000원

터미널 이용료 : 어른 500원씩

이렇게 계산된 금액이 38,800원... 퇴장료 안 받는 것은 감사했다.

참 우도해양공원의 복잡한 입장료에 관광하러 왔던 사람 김 다샌다.

그렇게 기분 좋게(?) 승선을 하고 우도를 향하다 보니 어제 놓쳤던 성산 일출봉이 한 앵글에 잡힌다.

 배에서 내리기가 무섭게 차를 몰아 당도한 곳은 그 유명한 산호사 해수욕장!

비취빛 바다에 눈이 부시도록 아픈 흰 산호사장...(모래가 아닌 산호조각으로 이루어졌다 하여 유명함)

근데 왜 이리 작냐? 발도 아프고... 역시 기대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ㅎ.ㅎ...

예전엔 하루 민박하며 구석구석을 둘러보는 맛이 있었다는데, 요즘은 반나절 코스로

섬을 한바퀴 일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란다. 우리도 일정상 후자를 택해 구석구석을 차로 누비기 시작했다.

바닷가에서 등대를 놓친다면 초장없이 회를 먹는 것이니... 부지런히 찰칵찰칵... 날은 어찌 이리 좋은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날이었다.

자연이 만든 풍광은 참으로 경이롭다. 우도에서 선착장 반대편으로 가면 이렇게 멋진 풍경을 마주치게 되는데, 이곳은 저 경사면으로 그리고 그 뒤편으로 오르는 등산코스도 있어 꼭대기에 보이는 등대까지

등반을 할 수도 있단다. 올라가고 싶었지만 다음을 기약했다.

그리고 이 곳에서 출출한 배를 채우기 위해 고구마를 사 먹었는데, 그 맛이 일품이었다.

직접 농사를 지은 것이라고 했다. 제주산 고구마 꼭 드셔보시라...ㅎ.ㅎ...

아이들과 부지런히 한 바퀴를 돌다가 어느 바닷가에서 잠시 차를 멈춰세웠다.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아이들은 그 파도를 피해 뛰어 달아난다. 그 재미에 푹 빠져서 한동안 열중하고 있었다.

 

그래 너희들이 살아가는 동안, 때로 힘든 시련이 닥쳐오더라도 좌절하거나 힘들어 말고

바로 지금의 그 모습처럼, 그 순간을 당당히 맞서 기다리며 마음껏 즐기길...

너희들이 내 딛는 그 걸음 걸음이, 너희들의 달음박질이 그러하듯...

 

아이들의 저 해맑은 웃음을 내가 지켜주리라 다짐해 본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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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노래  

                        박목월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
멀리 떠나와 이름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목련꽃 그늘 아래서
긴 사연의 편질 쓰노라

클로버 피는
언덕에서 휘파람 부노라

아 !
멀리 떠나와 깊은 산골
나무 아래서 별을 보노라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
....................................................................

 

가곡으로 너무나 유명한 박목월 님의 '4월의 노래'.....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드는

빛나고,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아!!!

어느새 보내고 나니 너무 아쉽기만 하다.  

그래서인지 오늘은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린다.

 

 

 

<반세기 동안 플라시도 도밍고,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함께 ‘세기의 테너’ ‘세계 제 3대 테너’로 불리우며 정상의 자리를 지켜왔던 금세기 최고의 리릭 테너 호세 카레라스가 2009년 5월 8일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에서 내한 콘서트를 갖습니다.
이번 공연에서는 유라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반주를 맡아 수준 높은 연주를 들려줄 예정이며, 지휘는 호세 카레라스의 전속 지휘자이며 성악 전문 지휘자 데이비드 히메네스가 함께합니다.

● 공연개요

* 공연개요
1) 공  연 명 : 테너 호세카레라스 내한공연 서울 2009
2) 공연일시 : 2009년 5월 8일 오후 8시
3) 공연장소 :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
4) 주      최 : 경희대학교 60주년 위원회
5) 후      원 : 경희대학교, 하나은행, 현대자동차, 자생한방병원
6) 출      연 : 호세 카레라스(테너), 데이비드 히메네스(지휘) ,피오나 캠밸(메조소프라노),
                   오미선(소프라노), 유라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연주)

● 프로그램

Overture – La forza del Destino  ‘운명의 힘’ 서곡
“Lamento di Federico” – L’Arlesiana  오페라 <아룰르의 여인>중 ‘페데리코의 탄식’
“The Flower Duet” – Lakmé  오페라 <라크메>중 ‘꽃의 이중창’
“Avi Castellet” – Cancó d’amor i de Guerra
Intermezzo – La boda de Luis Alonso  간주곡 ‘알론소의 결혼’
“Dúo y Jota” - El Dúo de la Africana
“Mis horas felices” – La del Soto del Parral  오페라<파랄의 여인>중 ‘행복했던 시간이여’
한국가곡 ‘목련화’, ‘신 아리랑’
Overture – Candide  ‘캔디드’ 서곡
“Summertime” – Porgy & Bess 뮤지컬 <포기와 베스>중 ‘Summertime’
“Somewhere” – West Side Story 뮤지컬 <웨스트사이드스토리>중 ‘Somewhere’
“All I ask of you” – Phantom of the Opera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중 ‘All I ask of you’
“The impossible dream” - Mano of La Mancha 뮤지컬 <맨오브라만차>중 ‘이룰 수 없는 꿈’
외 총 20여 곡 예정


● 출연진 소개

 - 호세 카레라스
 
영혼에서 울려 나오는 황금의 목소리,  호세 카레라스!
스페인 바르셀로나 태생
6세 때 마리오 란자 주연의 영화 <위대한 카루소>를 보고 성악가가 되기로 결심
28세까지 24개 오페라 작품 주연하고, 세계 4대 오페라 하우스 모두 정복
1976년 카라얀이 지휘하는 베르디 <레퀴엠>에 출연해 명성 높임.
음반 역사상 판매량 천만 장 이상을 기록한 단 두 장의 클래식 음반
<'90 로마 월드컵 3테너 콘서트>, <'94 LA 월드컵 3테너 콘서트>의 주인공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개, 폐회식 음악감독  
빈 국립 오페라의 종신 명예 회원

지난 2005년 체육관이나 운동장 공연이 아닌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공연으로
한국 관중에게 수준 높은 클래식 공연을 선보인 호세 카레라스는 희끗희끗
눈에 띄는 백발만큼 더욱 깊어진 음악성과 여전히 윤기있는 목소리로 청중들을
사로잡으며, ‘20세기 가장 아름다운 미성(美聲)’이라는 찬사에 걸맞는 감미롭고
로맨틱한 선율을 선사하였습니다.
백혈병에서 완쾌된 이후로는 ‘두 번의 인생을 산다’는 그의 말처럼
더욱 완숙해진 음악적 테크닉과 세련된 무대 매너를 선보이고 있으며,
평화와 화합의 메신저로서 전 세계를 누비는 세계적 테너의 자리를 확고히 지키고 있습니다.


- 지휘 : 데이비드 히메네스
 
몽세라 카바예, 플라시도 도밍고, 아그네스 발차, 호세 카레라스, 후안 폰스, 브린 터펠, 안젤라 게오르규, 로베르토 알라냐, 어맨더 루크로프트, 데니스 오닐 등 세계적인 성악가들의 콘서트에서 지휘를 맡은 지휘자.

1999년 포트워스 오페라와 <토스카>를 공연해 성공적인 미국 데뷔
1999/2000 시즌에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바비칸 센터에 데뷔
베를린 도이치 오페라에서는 <아이다>, 라스팔마스에서는 <메리 위도우> 지휘
후쿠오카에서는 도밍고, 카레라스 및 다이애나 로스가 함께 하는 갈라 콘서트를 지휘


-메조소프라노 : 피오나 캠밸

메조 소프라노 피오나 캠밸은 호주출신으로 현재 Western Australia 대학에서 성악 강의를 하고 있으며, 2008년 도쿄에서 열린 공연에서 호세카레라스(José Carreras), 바바라 보니(Barbara Bonney)와 함께 Mozart Requiem을 공연했고, 2009년 2월 호세카레라스(José Carreras) 의 호주 투어공연에 초대되어 함께 공연했다.

1994년 그녀는 올해의 ABC Young Performer(성악부문)로 선정
1995년 Australian Singing Competition에서 Opera Awards 수상
영국의 로열 오페라 하우스 오케스트라, 프라하 챔버 오케스트라, 웨스트 오스트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 멜버른 심포니, 홍콩 필하모니,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맨체스터 카메라타 등 과의 협연을 통해 세계적인 음악가로서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소프라노 : 오미선 교수

소프라노 오미선 교수는 경희대학교 성악과 출신으로 1999년 이태리 Pescara 국립음악원 석사과정을 마리아 루이자 까르보니의 지도아래 마쳤으며, 산타체칠리아 국립아카데미를 수료하였다. 국내에서는 국립오페라단에서 활동을 하였으며, 현재는 성신여자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5년 국립오페라단 “투란도트-류역”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2006년 프리마돈나 앙상블 미국 캠블시 헤리테지극장
2007년 국립오페라단 “라트라비아타-비올렛타역”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2008년 한국오페라60주년기념음악회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 오케스트라 : 유라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금난새의 창의력 넘치는 아이디어와 연주자간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바탕으로 한 조화 있는 연주는 매 공연 청중을 클래식의 매력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97 서울 국제음악제' 데뷔
1999년부터 매년 포스코 센터 로비에서 심포니 페스티발을 진행
2000년부터 본격적인 연주활동
2003년 포스코의 후원으로 중국 연주 투어를 진행
2004년부터는 국내 대학을 찾아가 '캠퍼스 심포니 페스티벌'을 펼침
2005년 40개 지역 136회 연주를 성공적으로 마침
2006년에는 파리 베르사유 궁 연주와 류블리아나 섬머페스티벌에서의 초청 연주
지난 2005년 체육관이나 운동장 공연이 아닌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공연으로
한국 관중에게 수준 높은 클래식 공연을 선보인 호세 카레라스는 희끗희끗
눈에 띄는 백발만큼 더욱 깊어진 음악성과 여전히 윤기있는 목소리로 청중들을
사로잡으며, ‘20세기 가장 아름다운 미성(美聲)’이라는 찬사에 걸맞는 감미롭고
로맨틱한 선율을 선사하였습니다.
백혈병에서 완쾌된 이후로는 ‘두 번의 인생을 산다’는 그의 말처럼
더욱 완숙해진 음악적 테크닉과 세련된 무대 매너를 선보이고 있으며,
평화와 화합의 메신저로서 전 세계를 누비는 세계적 테너의 자리를 확고히 지키고 있습니다.

거꾸로 가는 생

 

                                      김선우


거꾸로 가는 생은 즐거워라
나이 서른에 나는 이미 너무 늙었고 혹은 그렇게 느끼고
나이 마흔의 누이는 가을 낙엽 바스락대는 소리만 들어도
갈래머리 여고생처럼 후르륵 가슴을 쓸어 내리고
예순 넘은 엄마는 병들어 누웠어도
춘삼월만 오면 꽃 질라 아까워라
꽃구경 가자 꽃구경 가자 일곱 살배기 아이처럼 졸라대고
여든에 죽은 할머니는 기저귀 차고
아들 등에 업혀 침 흘리며 잠 들곤 했네 말 배우는 아기처럼
배냇니도 없이 옹알이를 하였네


거꾸로 가는 생은 즐거워라
머리를 거꾸로 처박으며 아기들은 자꾸 태어나고
골목길 걷다 우연히 넘본 키작은 담장 안에선
머리가 하얀 부부가 소꿉을 놀 듯
이렇게 고운 동백을 마당에 심었으니 저 영감 평생 여색이 분분하


구기자 덩굴 만지작거리며 영감님 흠흠, 웃기만 하고
애증이랄지 하는 것도 다 걷혀
마치 이즈음이 그러기로 했다는 듯
붉은 동백 기진하여 땅으로 곤두박질 칠 때
그들도 즐거이 그러하리라는 듯


즐거워라 거꾸로 가는 생은
예기치 않게 거꾸로 흐르는 스위치백 철로
객차와 객차 사이에서 느닷없이 눈물이 터저 나오는
강릉 가는 기차가 미끄러지며 고갯마루를 한순간 밀어 올리네
세상의 아름다운 빛들은 거꾸로 떨어지네

..................................................................................

 

포구의 밤


                          김선우

 

생리통의 밤이면
지글지글 방바닥에 살 붙이고 싶더라
침대에서 내려와 가까이 더,
소라냄새 나는 베개에 코박고 있노라면


푸른 연어처럼...


나는 어린 생것이 되어
무릎 모으고 어깨 곱송그려
앞가슴으론 말랑말랑한 거북알 하나쯤
더 안을 만하게 둥글어져
파도의 젖을 빨다가 내 젖을 물리다가
포구에 떠오르는 해를 보았으면
이제 막 생겨난 흰 엉덩이를 까불며
물장구를 쳤으면 모래성을 쌓았으면 싶더라


미열이야 시시로 즐길 만하게 되었다고
큰소리 쳐놓고도 마음이 도질 때면
비릿해진 살이 먼저 포구로 간다


석가도 레닌도 고흐의 감자먹는 아낙들도
아픈 날은 이렇게 혁명도 잠시
낫도 붓도 잠시 놓고 온종일 방바닥과 놀다 가려니
처녀 하나 뜨거워져 파도와 여물게 살 좀 섞어도
흉 되지 않으려니 싶어지더라
.................................................................

 

난 그녀의 시가 좋다.


살짝 살짝 드러내는 속살의 투명한 빛깔도 그렇고,

감각적이다 못해 다소 자극적인 표현들도 거침없이 뱉어내는 말투도 그렇고.

아득한 시간 너머의 부옇게 바랜 기억들을 머리채 잡듯 홱 잡아채서 끄집어내는 말솜씨도 그렇다.

그리고 어디엔가 아프고 지친 마음 달래주는 따스한 말 한마디를 숨겨두는 재치 또한 그렇다. 

 

그녀의 말은 차갑고, 예리하며, 감각적이고, 둔탁하며, 신랄하고, 노골적이며, 솔직하고, 담백하다.

그래서 매력적이며,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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