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도 화석이 된다


                           이외수


저녁비가 내리면
시간의 지층이 허물어진다


허물어지는 시간의 지층을
한 겹씩 파내려가면
먼 중생대 어디쯤
화석으로 남아있는
내 전생을 만날 수 있을까


그 때도 나는
한 줌의 고사리풀
바람이 불지 않아도
저무는 바다 쪽으로 흔들리면서
눈물보다 투명한 서정시를
꿈꾸고 있었을까


저녁비가 내리면
시간의 지층이 허물어진다
허물어지는 시간의 지층
멀리 있어 그리운 이름일수록
더욱 선명한 화석이 된다
...........................................................


작은 돌멩이 하나 손가락으로 툭툭 튕겨
땅위에 짙게 금을 그어가며
광활한 대지의 지배자를 꿈꾸던...


먼 하늘을 향해 끝없이 날아오르던 연이

실이 끊겨 언덕 너머 저편 하늘로 사라져가던 모습을 멍하니 서서 지켜보며
언젠가는 저 먼 곳으로 꼭 내 연을 찾으러 가리라 다짐하던...


반으로 쪼개져버린 팽이를 붙여보겠다고 촛농을 떨어뜨리며
닭똥같은 눈물도 뚝뚝 섞어 떨구던 ...


순수함만으로도 행복하던 그때가
문득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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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팍한 인생 하악하악 팔팔하게 살아보세" 이 문장에서 책에 담겨진 내용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외수의 생존법 <하악하악>은 1장 털썩, 2장 쩐다, 3장 대략난감 4장 캐안습, 5장 즐!

각 장의 엉뚱하고도 당혹스런 주제에 따라 나누어져 총 260개의 짧은 산문으로 이루어져있다.

이 글을 읽으면서 나조차도 낯선 인터넷 용어가 심심치 않게 나와 한번 놀라고,

우리의 생각과 일상들이 고스란히 몇 줄의 글로 압축되어 옮겨져 있어서 놀라고,

이외수 작가의 상식을 깨는 기발하고 발랄한 글에 다시 한 번 놀라고,

정태련 님의 신비로운 민물고기 그림에 또 한 번 놀란다.


늘 깨어있는 지성이지만 잘난 척 하지 않으며, 고고해지려고도 하지 않고, 오히려 평범해지거나 부족해 보이려는 지성이 있다면...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렇게 춘천에서 산다.


<들개>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던 그의 글은, <사부님 싸부님>, <벽오금학도>, <외뿔>, <괴물>, <이외수의 사색상자>, <바보바보>, <장외인간> 등 무수한 작품들로 이어지면서 어느새 무르익어, 친숙하고 편안하면서도 천박하지 않은 촌철살인의 아름다움으로 더 빛을 발하고 있다.


이 책은 저자의 세상을 향한 거침없는 날숨이 여기저기 뱉어져 있다. '하악하악' 하고픈 말을 속 시원히 다 늘어놓은 저자의 생각 주머니가 풀어 헤쳐진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 단락을 읽으면 두 세번씩 생각하거나 고민하며 볼 필요가 없다.

그냥 한 번 읽고 잠시 생각하거나 잠깐 피식 웃으면 되는 글이다.

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런 게 이외수의 글이 아닌가 싶다. 


지성을 초월한 대화

모기가 스님에게 물었다. 파리가 가까이 가면 손을 휘저어 쫓으시면서 우리가 가까이 가면 무조건 때려 죽이시는 이유가 뭡니까.

스님이 대답했다. 얌마, 파리는 죽어라 하고 비는 시늉이라도 하잖아.

모기가 다시 스님에게 물었다. 그래도 불자가 어찌 살생을 한단 말입니까.

그러자 스님이 태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쨔샤, 남의 피 빨아 먹는 놈 죽이는 건 살생이 아니라 천도야. 철썩!


뱁새가 황새를 쫓아가면 가랑이가 찢어진다 - 인간

조까, 명색이 새인데 날아서 쫓아가지 미쳤다고 걸어서 쫓아가냐 - 뱁새

비는 소리없이 내린다


                                이외수


흐린 세월 속으로 시간이 매몰된다.
매몰되는 시간 속에서 누군가 나지막히 울고 있다
잠결에도 들린다


비가 내리면 불면증이 재발한다
오래도록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었던 이름일수록
종국에는 더욱 선명한 상처로 남게 된다
비는 서랍 속의 해묵은 일기장을 적신다.


지나간 시간들을 적신다.
지나간 시간들은
아무리 간절한 그리움으로 되돌아 보아도 소급되지 않는다.
시간의 맹점이다
일체의 교신이 두절되고 재회는 무산된다
나는 일기장을 태운다. 그러나
일기장을 태워도 그리움까지 소각되지는 않는다


비는 뼈 속을 적신다.
뼈저린 그리움 때문에 죽어간 영혼들은 새가 된다
비가 내리는 날은 새들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날 새들은 어디에서 날개를 접고
뼈저린 그리움을 달래고 있을까...


비 속에서는 시간이 정체된다.
나는 도시를 방황한다.
어디에도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도시는 범람하는 통곡 속에서 해체된다.
폐점시간이 임박한 목로주점
홀로 마시는 술은 독약처럼 내 영혼을 질식시킨다.


집으로 돌아와 바하의 우울한 첼로를 듣는다.
몇 번을 반복해서 들어도 날이 새지 않는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목이 메인다.


우리가 못다한 말들이 비가 되어 내린다.
결별 끝에는 언제나 침묵이 남는다
아무리 간절하게 소망해도 돌아갈 수 없는 전생
나는 누구를 사랑했던가
유배당한 영혼으로 떠도는 세속의 거리에는
예술이 암장되고 신화가 은폐된다.


물안개 자욱한 윤회의 강변 어디쯤에서 아직도
그대는 나를 기다리고 있는가
나는 쓰라린 기억의 편린들을 간직한 채
그대로부터 더욱 멀리 떠나야 한다
세속의 시간은 언제나 사랑의
반대방향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에

...............................................................

 

'세속의 시간이 언제나 사랑의 반대방향으로 흐른다' 는
가슴이 서늘해 지는 말...
이외수 님의 냉철한 사고가 묻어납니다....


윤회의 강변 어디쯤에선가는 다시 만나겠지요.
우리가 못다한 말들이 아직 남아서...

그토록 매운탕이 먹고 싶으냐

  

                                          이외수
  

낚시의 달인처럼 행세하던 놈이

막상 강에 나가니까

베스와 쏘가리도 구분하지 못한다

그 사실을 확인하고도

어떤  멍청이들은

그 놈이 월척을 낚아 올릴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저버리지 못한 채

매운탕을 끓일 준비를 한다

아놔, 매운탕은 뭐

자갈에 고추장 풀어서 끓이는 거냐

냄비에 물 끓는 소리가 공허하면서도 시끄럽다

 

 

그토록 매운탕이 먹고 싶으냐 2

 

                                          이외수

 

시끄러운 냄비 물 끓는 소리에,

자꾸 반복되는 헛물질에,

이제는 낚시 바늘로 엉뚱한 사람 잡아채려하니,

화가 안날수가 없겠지요.

그런데 자꾸만

[내가 뭘 잡으려 하는지 너희들이 몰라서 그런다.]

[나는 소시적 1미터짜리 미꾸라지도 잡은 사람이다.]


이러니 그만 낚시터에서 나가라는 소리가 안나올리 있나요.

...........................................................................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에는 늘상 노코멘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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