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잊어

                  김소월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 세상 지내시구료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다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못 잊어도 더러는 잊히오리다


그러나 또 한껏 이렇지요
"그리워 살뜰히 못 잊는데
어떠면 생각이 떠지나요?"
...................................................

울 엄마도 좋아하던 소월의 시...
나도 좋아하던 그의 노래...


처음으로 시를 쓰고 싶었다.
노래 하고 싶었다.


지금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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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거리는 자주 정전이 된다

 

                                                         최승헌

 
이 거리는 자주 정전이 된다 언제부터인가 낯선 인기척이 들리기 시작할 때부터 이 거리에 꽃이 피자 근심을 피우는 사람들이 늘어간다 꽃이 피어도 꽃향기와 함께 행방불명되는 것들이 더 많아진다 아무 것도 잉태할 수 없는 불임의 하루가 저물면 종일 컴퓨터 속에서 신속하고 튼튼한 정보를 사냥하는 셀러리맨이나, 두 바퀴에 매달려 방부제 뿌려진 세상을 질주하는 퀵서비스맨이나, 개업한지 며칠이 지나도 손님 구경 힘들어 애꿎은 담배만 피워대는 닭발집 주인남자나, 발광하던 네온사인이 현란한 춤을 멈출 때쯤이면 어김없이 나타나 서성거리는 대리운전기사들이나, 그들은 지금까지 자신들을 길들여 왔던 허약한 언어로는 한 끼의 밥도 얻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늘 밥은 너무 멀리 있기 때문이다.


비열한 언어들이 자라 숲을 이룬 이 거리에 빌붙기 위해 허겁지겁 살아온 세월만큼 숙성되어진 시간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이 바닥을 닦고 다닌 삶의 걸레가 채 마르기 전 익숙했던 생업의 자리에서 나가떨어져 졸지에 그놈의 밥통을 잃어버린다한들 요동도 안칠 심장 하나쯤은 갖고 있어야 한다 무엇이던 재빨리 체감하지 못하면 그대로 끝장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생존은 비대해지고 몸은 축나는 것이 이 거리의 기본수칙이다.

..............................................................................

한 젊은 극작가의 안타까운 죽음이 세간의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
사실 더 안타까운 것은 화제의 촛점이 그녀의 극적인(?) 비참한 죽음이었다는 것.
이제는 어느 정도 그 사건에 대한 생각의 정리가 돼, 더이상 가십거리가 되지 않으니 조용히 덮혀버리고 말았지만...


인류가 지구상에 태어난 후, 가장 많은 활자를 소비하는 이 시대,
책을 읽는 사람은 점점 줄고, 정보의 홍수 속에, 좀 되먹은 정보를 찾기란 오히려 만만치않다.
목적은 오로지 소비(消費) - <경제>욕망을 충족하기 위하여 재화를 소모하는 일 -
감히 그 속에서 창작이라니... 흠...


촛점이 흐려진 정치가들, 지식인들 그리고, 우리들...
오늘 하루를 왜, 살고 있는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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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하루종일 비가 내리더니.. 오늘은 잔뜩 흐린 날씨다.

다소 쌀쌀해지긴 했얻 이제 봄기운이 완연하다.

이른 새벽 창문을 열어도 한기가 매섭지 않다.

어김없이 계절은 다시 돌아오고, 갈 길은 멀게만 보여도

우리의 시간은 지금까지처럼 그렇게 또 유수히 흘러갈 것이다.

 

서둘것 없다.

요즘엔 무에 그리 바쁜지 가끔 가서 함께 노래 부르던 가례헌도 가보질 못한다.

책장을 정리하다 나온 책자에 만화가 박재동 선생님의 캐리커쳐가 눈에 띄어 사진을 찍어봤다.

'언제 그리신거지...'

암튼 기타 치고 노래하는 내 모습이 그럴싸하게 그려졌다.

친절하게 선생님의 글 몇 줄도 눈에 띈다...

첨이다... 기타 들고 있는 모습의 사진도 거의 없는데...ㅋ.ㅋ...

선생님 고맙습니다....ㅎ.ㅎ...

겨울 풍경 2

 

                   천양희


헐벗은 나무
둥지튼 새들은 떠나갔다
허둥대는 바람같이
떠도는 마음 하나 못 붙들고
삶은 종종 살얼음판이었다
나는 알 수 없었다
사람들은 어째서
같이 살면서 혼자 일어서야 하고
사람들은 어째서
낯선 거리 떠돌며
돌아가려 하는지
봄은 아직 멀었는데
기다렸다 기다렸다 기다렸다
눈보라 헤치며 어느 날
..............................................................

돌이켜 생각해 보면,
우리 사는 동안
단 한순간도 허투루 흐른 시간이 있었던가?
단 한 사람도 허튼 만남이 있었던가?


그리 만든 건
사실...
 
고스란히
내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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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김선우


골목길 돌아 나오다 누가 나를 불러
잠시 눈길 준 폐타이어 쌓인 창고 앞
조붓한 담장 아래 아기 어금니처럼 돋아 있는
귤싹 하나 만난다 지난 겨울 어느 늦은 밤
소주를 사러 점방 가는 길에 아무 생각 없이 뱉어낸
귤씨 하나가, 아니겠지 설마 그 귤씨 하나가


큰맘 먹고 사놓은 백개들이 귤 한상자
한겨울 밤 야금야금 까먹던 그 귤들이
더러는 맑은 오줌으로 몸 밖을 흘러나가고
사는 일이 서리 앉은 빨랫줄 같아,
푸념하면서도 하루를 견디게 한 어떤 열량이 되고
잔주름 생기기 시작한 눈가
지친 세포의 자살을 지연시키는 비타민이 되고
어두운 상자 속에 얼마 남지 않은 귤 몇알이
그래도 천연스럽게 댕글댕글 빛나던 힘!


귤껍질에 빼곡히 열린 구멍이란 게 실은
저의 중심을 향해 세상의 향기를 흐르게 한 통로는 아니었을까
보이지 않는 중심을 향해 몸을 맞대고
껍질을 벗겨내도 흩어지지 않던 귤조각
시고 달고 아린 저마다 다른 맛들이
열어둔 통로를 지나 중심으로 모이듯
귤 한상자 놓여 있던 겨울의 귀퉁이가 문득 밝아지고
알전구같이 흐릿한 창밖의 그늘이
외로운 귤알들로 빚어지곤 했던 것이다

........................................................................................

처음 제주도를 다녀왔다고
쑥스러운 웃음과 더불어
불쑥 내게 내밀던
오렌지빛 귤향수


그 고운 빛깔의 향수보다
그 달콤한 향보다
먼저 눈에 띈 건
사실...
누나의 낡은 손이었지.


한순간도 어긋남이 없이 찾아오는 계절이
40여년을 늘 어색하기만 했는데,


오늘 누나의 잔주름 가득한
세월의 눅은 때가 골골이 낀 손에
들려진 귤 향수 병이 어찌나 어색하던지...
어찌나 시리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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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게임이라는 당근이 걸려있긴 했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두꺼운 책을 - 트로이아 전쟁과 목마, 오뒤세우스의 방랑과 모험 (국민서관) - 읽기 시작했다. 꽤 오래 걸리긴 했지만 대견하게도 읽어낸다.

아이들이 책 읽는 모습은 언제 봐도 너무 예쁘다.

 

반올림

 

                        박철


아빠는 마음이 가난하여 평생 가난하였다
눈이 맑은 아이들아
너희는 마음이 부자니 부자다
엄마도 마음이 따뜻하니 부자다
넷 중에 셋이 부자니
우린 부자다
.......................................................

먹고 사는 게... 참, 만만치 않다.


연평도 포격 후, 곧 북한과 전쟁이라도 할 것처럼,
연일 군사관련 보도가 몇 달내내 뉴스 첫머리를 장식했다.
구제역으로 수백만 마리의 소, 돼지를 죽여 파묻었다.,


대기업은 연일 사상 최고실적 발표를 쏟아내고,
주식시장은 최고치를 경신하는데,
물가는 끝없이 올라, 서민의 주머니 사정은 점점 나빠지고,
전세대란으로 편히 살 집조차 얻기가 어렵다.


아이가 묻는다.
왜 이사를 가야하냐고...


전셋돈을 너무 많이 올려달래서 그렇다고 했더니,
뒤로 감추었던 손을 펴보인다.
만원짜리 한장과 동전 한움큼...


이거 말고도 좀 더 있으니 보태서 이사 안가면 안되냐고...
울컥 무엇인가가 치밀어 올라, 대답을 못하고 얼른 돌아섰다.


그런 거 아니라고...
아빠 회사가 너무 멀어서 그런거라고...
아빠가 얼마나 부잔지 모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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