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걱정
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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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왕산에 기도 다녀오셨던 이야기를 들려주시느라 전화기를 붙들고 쉴 틈이 없다.
이제 자식들이 모두 중년이 됐건만, 여전히 물가에 나앉은 토끼 새끼같은 자식들...
그들을 위한 기도를 열심히 하셨을테니, 당신 말씀 한마디 한마디에 뿌듯함이 그리고 자부심이 묻어난다.
한참만에 얘기 보따리를 다 풀어놓고서야 스스로도 매우 만족스러우신지 목소리에 한껏 여유로움과 보람이 느껴진다.
당신이 자식을 잘 두긴 했다고......
주변 이웃들도 당신 속이 제일 편하지 않느냐고 부러워들 하신단다.
기가 막히게 맛있는 사과 한 박스와 이제껏 이처럼 빛깔 좋은 것을 본 적이 없는 고춧가루 한포대까지 추석에 다 들고 오시겠단다.
어느새 고희가 가까운 노인네가 다 된 어머니의 때아닌 힘자랑과 자식자랑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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