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이은상


탈대로 다 타시오
타다말진 부디마오
타고 다시 타서
재될법은 하거니와
타다가 남은 동강은
쓸 곳이 없소이다.
반타고 꺼질진댄
아예 타지 말으시오
차라리 아니타고
생나무로 있으시오
탈진댄 재 그것 초차
마저 탐이 옳소이다
........................................................

사랑만으로 영원히 함께할 수 있다면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언젠가는 너도 나도 각자의 길을 가겠지만
그때까지만이라도
아니 단 한 순간만이라도
함께 있었음을 후회하지 않기를...


어느 순간,
사랑이 온전히 사람의 몫이 아님을 알았을 때,
우리 삶에 영원한 것이 없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내 가슴에 이 사랑 하나는 남겨지길 바랐다.


사랑만으로 영원히 함께할 수 있다면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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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절초


                            오인태


사연 없이 피는 꽃이 어디 있겠냐만
하필 마음 여린 이 시절에 어쩌자고
구구절절 피어서 사람의 발목을 붙드느냐.
여름내 얼마나 속끓이며
이불자락을 흥건히 적셨을 길래
마른 자국마다 눈물 꽃이 피어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치대느냐.
꽃이나 사람이나 사는 일은
이렇듯 다 구구절절 소금 같은 일인 걸
아, 구절초 흩뿌려져 쓰라린 날


독한 술 한잔 가슴에 붓고 싶은 날
............................................................

땀과 눈물
흙과 바람
열정과 정염
인내와 고독
그리고 기다림, 또 기다림


어느 꽃이라고 그냥 뜻 없이 피겠는가?
어느 누구의 사랑이 그냥 이루어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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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 랑

 

                김초혜


소리를 내면 깊은 강이 될 수 없다

..........................................................................................................

1964년 등단한 후로 연작시 '사랑굿' '어머니' 등으로 너무나 유명한 시인이다.

 

'사랑굿' 이라는 연작시는 총 183편으로 일단락이 된다.

'감정의 수많은 단층으로 쌓인 체험을 한 편의 시로 끝낼 수 없어... ' 라는 시인의 말처럼

그녀의 수십년의 삶에 대한 말이 켜켜히 쌓여 길이길이 남을 연작시를 이루어냈다.

 

물론 시인의 노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진행중이다.

소설가 조정래씨의 아내이기도 한 그녀의 시는
사람과 삶과 사랑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로 샘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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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공광규

         
새를 사랑하기 위하여
조롱에 가두지만
새는 하늘을 빼앗긴다 


꽃을 사랑하기 위하여
꺾어 화병에 꽂지만
꽃은 이내 시든다 


그대를 사랑하기 위하여
그대 마음에 그물 쳤지만
그 그물 안에 내가 걸렸다 


사랑은 빼앗기기
시들기
투망 속에 갇히기.
....................................................

가둬놓고 사랑하려니까 힘이 들다.
소유하려 하니까 사랑이 쉽지 않은게다.
누군가를 위해 사랑한다는 건
말짱 거짓말이다.


자신의 욕심만을 채우려 하는 것은 아닌지.
내가 이 만큼 주었으니 하면서
상대에게 적어도 이 만큼을 요구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이켜 생각해 볼 일이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곰곰히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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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을 닦으며 

 

                         문정희 

 

누군가 그리운 날은
창을 닦는다

 

창에는 하늘 아래
가장 눈부신 유리가 끼워 있어

 

천 도의 불로 꿈을 태우고
만 도의 뜨거움으로 영혼을 살라 만든
유리가 끼워 있어

 

솔바람보다도 창창하고
종소리보다도 은은한
노래가 떠오른다

 

온몸으로 받아들이되
자신은 그림자조차 드러내지 않는


오래도록 못 잊을
사랑 하나 살고 있다.

 

누군가 그리운 날은 
창을 닦아서

 

맑고 투명한 햇살에
그리움을 말린다.

........................................................

 

유리창을 닦는 일은... 마음을 닦는 일...

하루도 닦는 일을 게을리하면

어느새 이끼가 끼고 먼지가 앉습니다.

 

지워져서, 멀어져서...

아주 잊혀져버린 줄만 알았던...

 

맑고 투명한 햇살에 비춰볼 수 있는

눈부신 그 하나...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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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있음에

                                    김남조

 

그대의 근심 있는 곳에
나를 불러 손잡게 하라  
큰 기쁨과 조용한  갈망이
그대 있음에
내 맘에 자라거늘
오- 그리움이여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
나를 불러 손잡게 해

그대의 사랑 문을 열 때
내가 있어 그 빛에 살게 해
사는 것의 외롭고 고단함
그대 있음에
사람의 뜻을 배우니
오- 그리움이여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
나를 불러 그 빛에 살게 해

.....................................................
너를 위하여

                        김남조

 

나의 밤기도는
길고
한 가지 말만 되풀이한다.


가만히 눈을 뜨는 건
믿을 수 없을 만치의
축원(祝願).


갓 피어난 빛으로만
속속들이 채워 넘친 환한 영혼의
내 사람아.


쓸쓸히
검은 머리 풀고 누워도
이적지 못 가져 본
너그러운 사랑.


너를 위하여
나 살거니
소중한 건 무엇이나 너에게 주마.
이미 준 것은
잊어버리고
못다 준 사랑만을 기억하리라.
나의 사람아.


눈이 내리는
먼 하늘에
달무리 보듯 너를 본다.


오직
너를 위하여
모든 것에 이름이 있고
기쁨이 있단다.
나의 사람아.

....................................................................................

이보다 더 감동적이고 극적인 사랑의 노래가 있을까 싶다가도
혼자서 웅얼거리며 뒤돌아 고개를 떨군 모습을 떠올리게 되는...
화려하면서도 쓸쓸하고 열정적이면서도 싸늘한
시인의 사랑고백...

 

눈이 펑펑 쏟아지는 겨울밤...
밤이 새도록 눈물로 편지를 쓰고 또 지우고 했던
그 아픈 시간을 위로해 주던 시인의 한마디...

 

'너를 위하여 나 살거니...나의 사람아... '

 

'그대가 있어  내가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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