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변영로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졸음 잔뜩 실은 듯한 젖빛 구름만이
무척이나 가쁜 듯이
............................................................

눈이 시도록 빛나던 봄 빛이
오늘은 구름 뒤로 자취를 감추다.


몹시 서두른 기미가 역력한 하늘
마음만 바삐 어설피 꽃잔치 구경왔다가
손은 얼얼하도록 시리고
등짝이 오싹하도록 바람 맞다.


꽃망울 부리나케 피워대던
가지마저 축축 늘어져
오늘은 좀 쉬거라 쉬거라 한다.


봄처럼 바쁘거들랑
오늘 하루쯤 쉬어가거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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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물 한 잔


                                 박철


우리가 기쁜 일이 한두 가지이겠냐마는
그 중의 제일은
맑은 물 한 잔 마시는 일
맑은 물 한 잔 따라주는 일
그리고
당신 얼굴을 바라보는 일
............................................................

누군가가 내게 물었다.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이냐고
잘못된 길을 가고 있지 않다면
그 길이 맞다고 믿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항상 기도하라고 했다.
내가 옳게 가고 있는 것인지 확인해야 하니...


기도는 어떻게 해야하냐고 물었다.
내게 허락된 모든 것이 다 감사이니
감사기도가 전부라고...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이냐고 물었다.
게으름과 무지는 죄인 것 같아서
그렇게 살지만 않으면 될 거라고...


그렇게만 하면 되느냐고 물었다.
온 힘을 다 해서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마음자리 닦는 일이 제일 중요하다고.


마음자리 닦는 일은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물었다.
사랑하는 거라고
진심을 다 해서 온 마음으로
먼저 자신을 그리고 다른 사람을
정성스럽게 하는 거라고...


누구나 다 사랑하면 되는 거냐고 물었다.
물론 구별해야 한다고
지혜를 구하고 분별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늘 감사하다고 기도하고
제 몸과 마음자리 닦는 일에 정성을 다하고
지혜를 구하고, 잘 구별하여
허락된 삶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잘 사는 길이다.


더구나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하는 길이니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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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김춘경


엄마라고 부르는 소리가
무딘 감동으로 들리는
나이 사십 줄에 시를 읽는 여자


따뜻한 국물 같은 시가 그리워
목마와 숙녀를 읊고는
귓전에 찰랑이는 방울소리에
그렁한 눈망울 맺히는


사랑한다는 말보다
고맙다는 한마디에 더 뭉클해
정성스런 다림질로 정을 데우고
학위처럼 딴 세월의 증서
가슴에 품고 애닳아 하는


비가 오면
콧날 아리는 음악에 취하고
바람불면 어딘가 떠나고 싶고
아직도 꽃바람에 첫사랑을 추억하며
밥 대신 시를 짓고 싶은
감수성 많은 그녀는


두 열매의 맑은 영혼 가꾸면서
꽃이 피고 낙엽이 질 때를 알아
오늘도 속절없이
속살보다 더 뽀얀 북어국을 끓인다


아...
손톱 밑에 가둬 둔 스무 살 심정이
불혹에 마주친 내 얼굴을 바라본다
..........................................................

내가 사랑하는 여인은,

내 다정한 한마디의 말로 위안을 얻고
내 한 번의 따스한 손 길에서 평안을 찾는다.


한 편의 시로 위안을 얻고
한 권의 책으로 평안을 구하는 그녀는
여전히 소녀처럼 청순하고 아름답다.


내가 사랑하는 여인은
세월따라 나이는 들어도
순수한 감성은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여전히 처녀처럼 청순하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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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렛 대처(Margaret Thatcher | Margaret Hilda Thatcher)
영국의 정치인, 전 영국 총리
1925년 10월 13일 - 2013년 4월 8일

 

영국의 전 수상(1979~1990)으로 영국의 부활을 이끌었던 마가렛 대처 여사가 오늘 별세했다는 소식이 전세계의 탑뉴스로 올랐다.

보수당 출신으로 철의 여인(The Iron Lady)로 불리며 12년동안 영국을 이끌었다.
정치적 과실이 어찌 없겠는가만, 그녀의 집권기 동안 영국은 여러면에서 확실히 부활했다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난 정치인으로써의 그녀를 존중한다.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갖고, 자신과 당의 자존감과 명예를 위한 그녀의 굳건한 행보는 정치인으로써의 본보기임에 분명하다.

하찮은 개인의 영달과 제 주위 모리배들의 이익만을 위해 철새처럼 이리 저리 옮겨다니는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그녀를 보고 부끄러워할 줄 안다면 좋겠다.

우리에게도 정치인의 'Honor'를 가슴에 지닌 사람들이

정치를 했으면 좋겠다는 헛된 바람을 한 번 가져본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이동순
 

가슴속에 무슨 슬픔
그리도 많아
섬이여
너는 온종일 눈물에 젖어 있는가
전설은 몽돌처럼
수만 년 물결에 쓸리고 쓸려
다 닳은 얼굴로 덜그럭덜그럭 중얼거리며 뒹굴고
그대의 가슴뼈는
해풍에 시달려고 시달려
하얀 촛대처럼 빛 바래졌는데
등대는 무슨 기막힌 사연 전해 주려고
긴 밤 꼬박 지새우며
불 깜빡이는가
...................................................................

쓸데 없는 생각, 부질없는 잡념, 갈등, 아집이나 미련 등
모든 잡다한 상념들을 통틀어 번뇌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번뇌는 내가 불러 일으키지 않으면
저절로 생기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번뇌가 혼자 저절로 생겼는지를...


마치 연못 바닥의 진흙과 같아서
내가 헤집어 놓지만 않으면 마음을 흐리는 일이 없답니다.


살다 보면 켜켜히 쌓이는 바닥의 진흙이야 어쩔수 없겠지만
굳이 내 손으로 휘저어 자꾸만
내 맑은 영혼을 흐리게 만들지는 마세요.
그리고 날을 잡아서 한 번쯤 바닥청소를 하는 것도
꼭 필요한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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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김정한


소식이 없이도
만나지 않아도

함께한 사람


많은 생각으로 괴로워도
다시 일어서게 하는 사람


오늘도 그대오시는 길목에 서서
그대를 기다립니다.
.......................................................................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고 하는 아프리카 속담,
삶의 진리에 가까운 말이다.


같이 길을 가는 것의 의미는
함께 한다는 것이다.


같은 곳을 향하고
같은 곳을 바라보고
보조를 맞추고
생각을 공유하며
서로의 손을 맞잡고 체온을 느끼고
서로를 의지하며
서로에게 믿음을 갖는 것


같이 길을 간다는 것은
한가지로 함께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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